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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리 Aug 17. 2024

<사과와 오렌지>

어지러운 것들 속에 균형과 아름다움

어지러운 곳. 내가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을 정리했을 때 나온 결과였다. 그만큼 전반적으로 어지러운 느낌이 가득한 작품이다. 사과와 오렌지는 지나치게 많고, 하얀 수건들은 개벼지지도 않은 채 널브러져 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사과와 오렌지 뒤에 쌓여 있었다. 한마디로 정리되지 않은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출처: 샤론스통 블로그



폴 세잔이 그린 유명한 작품 <사과와 오렌지>는 후기인상주의라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세잔의 작품이다. 후기인상주의, 인상주의와 비슷한 단어 같아 보이지만 정확히는 탈인상주의라고 하는 게 맞다고 한다. 인상주의에게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지. 인상주의와 같은 것은 아니다. 또 탈인상주의도 대표 작가들 사이의 공통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인상주의의 다음 세대라고 인식하면 될 것 같다.


<사과와 오렌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세잔만의 느낌도 잘 살아있다. 세잔의 작품 <카드놀이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가 대체로 붓 터치를 자주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둘의 분위기가 조금 다른데도, 그 작품의 분위기가 둘 다 비슷한 걸 봐서는 세잔이 이 스타일을 좋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앞서 말했듯 이곳은 어지러운 공간이다. 청소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공간, 관심도 없을 것 같은 공간. 그런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세잔은 붓을 들었고, 우리는 이 작품에 왠지 모를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다. 왜 그럴까?


물론 세잔의 능력과 색감들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하지만 난 균형에도 있다고 생각한다. 자세히 잘 보면, 잘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은 균형이 담겨 있다. 사과와 오렌지 몇 개가 밖으로 나와 있지만 접시는 사과와 오렌지로 가지런히 꽉 차 있고 흰색 수건은 바닥으로 떨어질 듯 안 떨어질 듯 떨어지지 않았고, 접시에 들어가지 못한 사과와 오렌지는 그런 수건에 빈 공백을 채우고 있다.


우리의 삶을 대입해 보면, 인생은 골치 아플 일이 너무나도 많다. 이런 세상에서, 힘듦, 짜증. 쓸데없이 종류만 다양한 것들이 우리의 삶으로 온다. 그것들은 분명 인생에서 없었으면 좋겠고 차라리 사라졌으면 좋을 듯한 그런 것들이 정말로 많다. 하지만 이 힘든 것들이 점점 모이고 모여서 균형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이 작품에 나오는 방이 누구도 손대지 않고, 청소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스스로가 균형을 맞추고, 이루어서 세잔만이 선물하는 묘한 아름다움을 줄 수 있었다.


우리는 어떨까? 우리도 힘든 일 하나를 잘 해내면 뿌듯한 것과 같이 좋은 것이 오는 것처럼 골치 아픈 일들이 잘 해결되면 우리의 매력이 되고, 우리의 인생에 한 부분이 된다고 난 생각한다. 그러니 절대 그 일들을 사라졌으면 좋을 것 같은 일들로 만들어내지 말아라. 균형으로 매력을 만들어낸 이 작품처럼 하나하나씩 처리해 가면 어느새 그 골치 아플 일들이 나의 인생과 나의 한 부분이 되어 찾아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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