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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윤 May 26. 2023

요즘은 사랑이랑 우울이 유행인가봐

나는 오늘도 친구의 사랑을 목격했다. 그리고 우울도 목격했다.

요즘은 사랑이랑 우울이 유행인가봐.  

나는 오늘도 친구의 사랑을 목격했다. 그리고 우울도 목격했다.



친구가 연애를 시작했다. 이번달에만 3번째 커플이다.

당연히 축하해줬다. 이왕이면 오래오래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래, 봄이기는 하지. 만남의 3월, 썸의 4월, 그리고 연애의 5월이다. 대학가의 봄은 정신차려보면 모두가 사랑을 하고 있는 시간이다.


근데 사실, 이 중에서 나중에 '연애를 했었다'라고 말할정도의 만남을 가지는 커플은 많지가 않다.


물론 이건 그냥 일반적인 사실일 뿐이다. 하지만 매번, 사랑도 유행을 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봄이 되면 공격적인 미팅과 술자리 그리고 만남, 썸, 연애가 무슨 할리우드 영화처럼 흘러간다. 그 사이에 끼면 나도 그렇게 누군가를 만나야만 할 것 같다는, 아니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연애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 그러면 된다. 하지만 언젠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하고 싶다는 생각은 벚꽃잎이 날리는 순간, 그것과 같이 가벼운 결심으로 변하게 된다.


내가 가벼운 건지, 생각이 가벼운 건지, 아님 사람들이 가벼운 건지. 6월이 되어서 해가 길어지는 달이 돌아오면 올해도 연애는 글렀다는 패배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나는 연애를 위한 연애는 싫다는 묘한 고집이 있어서, 매번 이 시기만 되면 묘한 허탈감에 시달리곤 한다.


과연, 사랑은 유행하고 있다. 다음에는 뭐가 유행하려나.



오늘 할 것이 없어서 블로그를 들어갔다. 요즘에는 친구들이 글을 많이 올려서, 들어가면 며칠에 한 번씩은 읽을거리가 생기고는 한다.


N은 성경 구절과 함께 힘든 일을 외면하지 않는 힘을 달라고 했다. 그 애의 전 글은 뭐였는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아마 무기력증에 대한 고찰이었던 것 같다.


D는 아나운서 준비를 하며 다이어트를 하다 폭식증이 왔다고 한다. 그리고 애인과 문제가 많은 것 같다. 그 애의 전 글은 아마 자신이 왜 나르시스트만 만나게 되는지에 대한 고찰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Y는 요즘 전공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 삶이 무료하다고 했다. 내가 기억하기로 그 애는 언제나 미래를 기대하던 친구였다.


글은 모두 서로이웃 공개였다. 이런 고민을 인터넷에다 뿌릴 때는, 적어도 '서로이웃'의 관계에는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지. 물론 그런 고민을 보여줄 수 있을만큼 괜찮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나도 언제나 시간이 허락하는 한 정성들인 댓글을 달아주고는 한다. 그리고 늘 누군가를 위로하는 건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한다. 어설픈 위로는 상처만 줄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과거보다 우울을 드러내는 것이 흔해진 것 같다. 보통 긍정적이라고들 말한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이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다. 내가 어릴 적 우울증에 시달렸을 때만 해도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울증이었던거지, 그 때는 알지도 못했다. 그냥 좀 몸이 안 좋아서 무기력한가, 하며 아침에 세수를 할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 세상에는 우울이 유행하고 있다. 감정은 전염된다. 심리학을 공부한 내 친구의 말을 들어보면 감정 전염이라는 학술적인 어려운 말도 있는 모양이지만, 그게 아니어도 알 법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이제까지 사회가 이렇게 우울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서야 진실이 밝혀진 셈이니 좋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또 생각해보면 어린 사람들의 우울이 가득 찬 사회가 그다지 유쾌해보이지는 않는다.


가장 위험한 것은 우울에 대한 자아도취이다. 어딘가에서는 패션 우울증이라는 게 존재한다. 물론 모두가 우울로 치장을 하고 다닌다는 건 아니다. 이렇게 되었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자신이 우울하다고 말하고 다닌다면, 그건 위로와 관심에 대한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또 있다. 우리가 과연 서로에게 우울을 드러내고 다닌다면, 다시 말해서 밑천을 드러내고 다닌다면, 그건 어떤 결과로 우리를 마주할까. 그런 밑천을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사이라는 것일까. 말해두지만 인터넷의 폭력 중 하나는 관계를 정의지어준다는 것이다.


블로그는 우리가 '서로이웃'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사실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갖고 있을까? 얼굴을 본 지가 오래되어 잘 모르겠다.


과연 우울은 유행하고 있다.



그럼 다음에는 뭐가 유행할까? 슬픔? 좌절? 패배? 포기? 이왕이면 행복이 유행하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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