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의 마지막 1
벌써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마지막 날은 쇼핑하는 데에 시간을 보냈다. 런던의 유명 서점인 던트북스에서 책과 에코백을 사고, 포트넘 앤 메이슨과 위타드에서 티와 핫초코도 구매했다. 이른 저녁으로 어니스트 버거(정말 맛있으니 런던에 가면 꼭 먹어보길 바란다)에서 햄버거를 먹고, 소호 간 김에 런던 기념품들을 쇼핑했다. 일일이 모두 적지는 않았지만 마지막 날인 만큼 여기저기 돌아다녀 체력을 많이 소모했다. 시간은 저녁 8시쯤이었고 해가 아직 떠 있었다. 나는 너무 지쳐버려서 일단 숙소로 돌아갔다.
같은 숙소에 지내는 분들 중 한 분도 일찍 귀가를 하셔서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해가 질 때쯤 프림로즈 힐에(노을 명소로 유명한 언덕) 가서 노을 지는 거 구경하러 갈 건데 같이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셨다. 생각을 해보겠다고 했더니 런던에서의 마지막 날인데 같이 가자고 하셔서 알겠다고 했다. 옷은 최대한 가볍게 입고, 같은 방을 쓰는 두 분과 함께 프림로즈 힐로 출발했다.
튜브(런던 지하철)에서 내리니 이미 해가 지기 시작해서 빠른 발걸음으로 프림로즈 힐 언덕을 올랐다. 그리고 언덕 위에서 앞을 내다보는데 너무 행복했다. 런던의 명소들이 한눈에 들어왔고, 그 뒤론 해가 지고 있었다. 너무나도 짧았던 런던 여행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지만 그때의 춥지도 덥지도 않은 선선한 날씨와 낯설지만 함께인 사람들이 있어서 런던 여행을 잘 마무리하겠구나 생각했다. 우리는 돗자리를 펴고 잠깐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의 선선한 바람과 해가 지는 모습을 보느라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오길 너무 잘했고,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게 너무 아쉽다는 말을 한건 기억이 난다.
20살 이후부터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스스로 금지시켰다. 행복은 늘 잠깐 머무르다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늘 나를 기대해 놓고 언제나 어김없이 순식간에 도망을 가버리는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언젠가부터 행복이라는 말 대신 ‘즐기자’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행복해도, 속상한 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그 일을 즐겨버리면 그 즐거움은 암묵적으로 행복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그럴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프림로즈 힐 언덕 위에 서서 앞을 내다보자마자 스스로 금지시킨 그 말이 자연스럽게 나와버렸다. 그 언덕 위에서 나는 깨달았다. 행복과 즐거움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걸. 그걸 깨닫고, 나는 다시 ‘행복하다’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즐기자’라는 표현을 쓰자고 다짐했을 때, 즐길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행복에 매달리고 싶지 않았기에, 즐길 수 없는 순간에도 그냥 주문처럼 ‘즐기자’라는 말을 되뇌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난 늘 답답했다. 그렇게 주문을 걸어도 어쨌든 즐길 수 없는 것들이었으니깐 말이다. 행복을 받아들이고 스스로에게 행복을 다시 허락을 한 지금은, 행복하다는 말을 주문처럼 쓰고 있다.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쓰면 정말 행복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거 같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다시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쉽다. 그리고 생각보다 좋은 변화를 불러온다. 나는 그걸 20살의 나처럼, 용기가 필요한 이들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