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팅힐
예전에 '노팅힐' 영화를 본 적이 있어서 괜히 런던에 여행을 가면 노팅힐엔 꼭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노팅힐 가는 그날은 일요일이었고, 일요일은 영국에서 선데이로스트 라는 음식을 먹는다.(영국인들이 일요일에 교회에 다녀와서 먹는 전통적인 식사로, 채소와 요크셔푸딩, 그레이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음식이 맛없기로 유명한 영국에서 제일 궁금했던 음식이라 식당도 신중하게 선정했다. 다행히 식당이 노팅힐에 있어서 가는 김에 선데이로스트를 먹기로 했다. 그날은 날씨가 정말 맑았고 꽤 더웠다. 흐린 날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맑은 런던을 보고 맑은 날에 또 한 번 반했다. 숙소와 노팅힐은 거리가 꽤 됐지만 날씨가 너무 좋아서 그런가 가는 길이 짧게만 느껴졌다.
아침 겸 점심으로 선데이로스트를 먹고 싶어 10시쯤 식당에 갔는데 선데이로스트는 12시부터 시작이라 그때 다시 오라고 했다. 아침이라도 먹고 올 걸 후회하며 걷던 중 근처 시나몬롤 가게를 찾아둔 게 생각나서 곧장 시나몬롤 가게로 향했다. 가게 안은 달콤한 냄새와 시나몬 향으로 가득 찼다. 그 맛있는 냄새에 나는 홀린 듯 순식간에 시나몬롤 하나를 포장해서 나왔다. 하지만 근처에 앉아서 먹을 곳이 안 보였다. 도로 옆 벤치엔 이미 사람들이 앉아있어서 다른 곳을 찾아봐야 했다. 그렇게 지도도 보지 않고 발이 가는 대로 10분 정도 걸었을까 작은 공원이 보였다. 들어가 보니 벤치도 많이 놓여있고 강아지 산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이름도 모르는 작은 공원으로 들어가 벤치에 앉았다. 웃기게도 시나몬롤은 오는 길에 너무 배고파서 다 먹어버렸다. 그래서 그냥 점심때까지 공원에 앉아서 날씨를 만끽하며 잠깐 쉬기로 했다.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와 강아지들이 뛰는 소리, 조곤조곤 산책하는 사람들의 대화소리로 공원은 너무 평온했다. 그런 시간은 왜 그렇게 빨리 흘러가는지 어느새 식당으로 가야 하는 시간이 되어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발걸음을 옮겼다.
식당에 도착하니 사람들로 가득 차 식당이 시끌벅적했다. 아까 12시에 다시 오라고 했던 점원이 친절하게 자리를 안내해 줬다. 메뉴를 미리 보고 왔지만 괜히 한 번 더 봐주고 선데이로스트를 주문했다. 선데이로스트의 첫인상은 너무 먹음직스럽게 생겨 얼른 사진 찍고 먹고 싶었다. 하지만 비주얼과는 다르게 정말 느끼했다. 콜라가 없었으면 반 이상은 남겼을 정도였다. 하지만 영국의 전통음식이니 여행을 간다면 괜스레 한 번은 먹어보길 바란다.
밥을 먹고 드디어 노팅힐 거리와 ‘노팅힐’ 영화에 나왔던 북샵에 구경을 갔다. 역시나 북샵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탓일까 크게 볼거리가 없어 금방 북샵에서 나왔다. 그리고 다시 노팅힐 거리를 걸었다. 노팅힐은 그냥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맑은 날씨와 파스텔톤의 건물들, 이렇게 훌륭한 여행 타이밍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난 정말 운이 좋은 거 같다는 생각을 하며 노팅힐을 거닐었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나는, 계획이 내 뜻대로 향하지 않으면 화가 났고 나를 자책했다. 그것보다 더 멍청한 시간 낭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틀에 갇혀 살았다. 노팅힐 여행에서 많은 것들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여행의 목적을 찾을 수 있었다. 단지 유명한 관광지를 가는 것이 아닌 그 나라의 날씨, 언어, 문화, 생활, 사람 등.. 사소하지만 쉽게 느껴보지 못하는 것들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그게 내가 원하던 여행이지 않을까 싶었다. 계획에 어긋난 것들은 잠깐 어긋난 대로 그대로 놔두며 나에게, 시간에게, 날씨에게 몸을 맡기고 나의 여행을 방해하지 않는 것.
지금도 가끔은 내 계획이 틀어져 뜻밖의 행복을 발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노팅힐에서의 그날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