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순간이 있어. 그런 순간은 흔치 않아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되지.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훅-하고 밀려오는 감동. 벅차오름. 울먹거림. 그 벅참을 숨기기 위해서 고개를 위로 치켜올리게 되는 그런 순간들. 2주 만에 간 교회였어. 가자마자 오후 예배 찬양팀 싱어로 서게 된 거야. 뭐 찬양팀 싱어는 항상 서는 거니까. 약간의 피곤함과 약간의 어쩔 수 없음을 갖고 성도님들 앞에 섰어. 나의 역할은 그렇게 크지 않아. 리더의 지시에만 잘 귀 기울이면 돼.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익숙한 반주에 맞춰 익숙한 찬양을 부르면 돼.
교회에서 찬양을 부를 때 자주 쓰는 방법이 있어. 한 곡이 끝나면 그 곡을 완전히 다 끝낸 다음에 다음 곡으로 넘어가도 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메들리처럼 두 찬양을 이어버리는 거야. 코드가 똑같은 찬양은 이 찬양에서 저 찬양으로 바로 넘어갈 수 있어. 한 찬양이 끝날 듯하면서도 아예 끝나지 않고 끝나는지도 모르게 다음 찬양으로 넘어가는 거야. 물론 이어서 다음 찬양을 부르는 건 쉬운 일은 아니야. 우리가 중간에 쉴 틈이 없으니까.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바로 다음 찬양을 불러야 하니까. 하지만 그만큼 감동이 더 크게 다가와. 이전의 여운이 그대로 이어져 다음 곡으로 전해지거든. 이번에도 그랬어. 이번에는 짧은 두 곡을 이어서 불렀어.
사랑의 예수님 나를 찾아오셔서
십자가로 대속 하사 내 마음 두드리네
오 사랑의 예수님 지금 내 맘을 엽니다
내 안에 거하셔서 나의 생명 되소서….
가사는 이게 다야. 이 네 줄이 다야. 너무 짧잖아. 짧으면 어떡하겠어? 그만큼 반복해서 계속 부르는 수밖에 없는 거야. 부르고 부르고 또 부르고. 음을 높여서 부르기도 하고 반주 없이 우리 목소리로만 부르기도 하고. 그러다 조금 지겨워질 때쯤, 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하는 의문이 들 때쯤 다음 곡으로 넘어가. 미묘하게 달라진 간주와 드럼의 박자. 나는 그 짧은 간주를 들으며 마음이 두근거려. 이다음 곡이 너무 좋을 걸 알거든. 이 짧은 간주가 너무 좋아서 한 번 더 반복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얼른 다음 곡을 맞이하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져 와.
우리 모두 예배하는 자 되어
온전히 영과 진리로 주를 예배하자
주가 우리와 함께
영원히 함께하시고
마르지 않는 샘물로
우릴 채우시리라
간주의 설렘과 떨림을 뒤로하고 다음 곡이 시작돼. 나는 첫 소절을 입 밖으로 내뱉자마자 조금 울고 싶어졌어. 너무 아름다웠거든. 내가 예상했던 좋음보다 훨씬 더 좋았거든. 나는 눈을 꼭 감고, 고개를 조금 위로 치켜들고, 주먹을 꽉 쥐고서 찬양을 불러. 너무 아름다운 순간을 맞이하면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 내가 경험한 넘어감 중에 가장 아름다운 넘어감이었어. 넘어간다는 게 이렇게 벅차오르는 일이라면 뭐든 넘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어.
뭐든 넘어간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 무언가를 넘어가기 위해서는 수많은 반복과 노력이 필요하잖아. 여기에서 저기로, 아이에서 어른으로, 자녀에서 부모로. 우리는 평생 무언가를 넘으며 살아가잖아.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넘어갈 때도 많고 말이야. 예상했던 넘어감이든 예상치 못했던 넘어감이든 모든 넘어감의 앞에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다음 곡을 기다리고 있을 나의 친구들을 떠올렸어. 그리고 마음 다해 그들을 응원했어. 두렵고 떨리는 마음.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그 마음이 너무 소중하고 애틋해서.
우리는 넘어가는 동시에 이어지기도 한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 완전한 넘어감도 완전한 이어짐도 없다는 걸 나는 눈을 꼭 감고서, 고개를 위로 들고서, 주먹을 꽉 쥐고서 깨달아. 잘 넘어가는 일은 잘 이어지는 일이기도 하다는 걸. 찬양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다음 찬양이 시작되고. 그렇게 맞이한 다음 곡은 언제나 눈물 나게 아름다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