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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Oct 09. 2024

양념통닭

지금까지 이야기를 보면 하늘이는 아빠가 없나 싶을 수 있지만 하늘이도 아빠가 있어. 그렇지만 아빠는 너무 바쁘거나 멀리 떨어져 살았거든. 그래서 가끔 집에 오셨고 심지어는 그렇게 자주 이사를 해도 아빠는 거의 도움이 안 됐어. 엄마랑 하늘이가 함께 부동산을 다니고 용달차를 수배하고 짐을 싸서 이사를 하고 나면 이사한 집 주소를 들고 새 동네로 찾아오는 게 순서였지. 그렇지만 하늘이는 가끔 보는 아빠를 좋아했어. 아빠를 기억하는 첫 번째 냄새는 통닭이야. 오랜만에 집에 오실 때면 그 커다란 손에 검은 종이봉지가 달랑달랑 들려있었는데, 그 봉지를 열면 갈색 종이봉투에 싸인 튀긴 닭이 들어있고는 했어. 외식이란 걸 거의 해본 적이 없는 하늘이에게 따뜻하고 묵직한 검은 봉지를 건네는 아버지는 멋있었어.


언제가부터 TV에서 양념통닭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어. 진한 빨간색의 양념이 치덕치덕 발린 양념통닭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워 보였어. 그렇지만 그 맛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지. 하늘이는 아버지에게 '감사합니다' 인사를 꾸벅하면서 혹시 이 봉투를 열면 빨간 양념이 발라져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역시나 그건 그냥 닭튀김이었어. 심지어는 그 양념통닭을 파는 브랜드의 후라이드도 아닌 게 분명했어. TV에서 보면 그런 통닭은 네모난 상자에 담겨있었거든. 하늘이는 사실 몇 번이나 속으로 이렇게 연습을 했어. "아빠 다음에 오실 때는 TV에 나오는 양념통닭을 사 오시면 안 돼요?" 그렇지만 한 번도 그 말을 진짜로 뱉은 적은 없었어. 혹시라도 그 말을 꺼냈다가 아버지가 속상해하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거든. 그 후에도 하늘이는 무얼 사달라거나 먹고 싶다고 조르는 일은 없었어. 그래도 이 말은 정말 정말 하고 싶었어. "아빠 저도 TV에 나오는 양념통닭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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