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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Oct 29. 2023

100살 할머니가 왔다.



 “오늘 병원에 100세 할머니가 오셨어!”

 엄마는 현관문에서 신발을 다 벗기도 전에, 즐겁다는 듯 말했다.     


 100살. 아무리 요즘이 100세 시대라고 해도, 현실에서 나이가 세 자리 단위인 사람을 마주치면 감탄사가 나온다. 사건을 중심으로 시간을 복기하면 더 놀랍다. 지금이 2023년이니까 백 년 전은 1923년. 10대에 일제강점기를 살고, 20대에 광복을 선명한 기억으로 담았을 나이니까.     



 엄마는 그 할머니에게 치매 검사 매뉴얼대로 질문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거의 일대 백 퀴즈 프로그램을 방불케 하는 퀴즈쇼였다.





 “엄마! 여기가 어디예요?”

 “몰라, 아들이 여따 데려다 놨어.”     


 “엄마! 사탕 백 개에서 일곱 개를 뺐어요. 몇 개야?”

 “뭐라고?”

 엄마는 할머니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외쳤다. “사탕 백 개에서! 일곱 개를! 뺐어! 그럼 사탕 몇 개야?!”

 가만히 있던 할머니는 눈을 반짝이며 답했다. “구십, 삼!”


 “엄마! 오늘이! 몇 월! 며칠이에요?!”

 “아, 그런 걸 뭐더러 알어. 그냥 해 뜨면 인나고 해지면 자는 거시지.”


 “엄마! 이번에는 사탕 구십 세 개에서! 일곱 개 더 먹었어! 그럼 사탕 몇 개?!”

 그녀는 한참을 데굴데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더 생각은 안 나고, 슬슬 계속 물어보는 게 짜증이 나셨는지 버럭 화를 내셨다.

 “내가 올해로 백 살인데!! 그걸 어떻게 알아!”     



 마지막 대답에 나는 웃음이 터지며 감탄했다. 어쨌든 정답이 들어있는 셈이니, 감탄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했다. 사람 나이가 세 자리가 되면 온 우주가 도와 인생의 정답을 맞히는 능력이 생기기라도 하는 걸까. 하긴 공자의 이립, 불혹, 지천명, 이순, 종심소욕 불유구… 따위를 다 거뜬히 넘어오신 나이 아닌가.

     

 그렇게 그저 총명하고 귀여운 백 세 할머니가 오셨구나, 생각했다.          






 며칠이 지났을까. 나는 문득 그 백 세 할머니의 근황이 궁금해져서 엄마에게 “그때 그 백 살 할머니는 잘 계셔?”하고 물었다.

 하지만 듣게 된 이야기는 전혀 뜻밖의 것이었다.     





 어쩌면 작은 변화일지도 모른다. 그냥 할머니는 문득,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인지해 버린 것뿐이니까. 정확히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곳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는 여기가 어디냐며 날카롭게 소리를 지르고, 어서 제 아들을 데려오라며 목소리가 쉬도록 난동을 피웠다. 아들과 함께 온 기억은 잃고, 눈앞의 이곳이 어디인지는 깨달은 것이다. 늦은 밤 계속 소리를 지르시니 같은 방 할머니들이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뼈가 앙상한 삼십몇 킬로그램의 할머니가 너무 격하게 움직여 다칠 위험이 높으니, 어르고 달래던 병원에서는 결국 진정제를 놓았다고 한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주 그렇게 정신이 온전치 않아져.” 엄마는 씁쓸하게 덧붙였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게 뭘까.

 세상을 또렷하게 구별할 줄 아는 인지능력이라면 할머니는 오히려 정신이 온전해지신 것에 가깝다. 하지만 정신이 또렷해진 바람에 마음은 온전치 못하게 되었다. 온전해진 정신에서 할머니가 느꼈을 공포가 떠올라 마음이 아렸다. 문득, 갑자기 나를 둘러싼 세상에 내가 모르는 것들,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하고, 자신은 혼자이고, 내 몸을 온전히 가눌 수는 없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움직임을 저지하고, 결국 내 정신을 온전치 못하게 만드는 약을 투입한다.     


 엄마에게 요양병원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신이 온전하다는 게 무엇일지, 정신이 온전한 게 행복일지 온전치 못한 게 행복일지 생각하게 된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나, 생각하면 그래도 온전한 쪽을 선택하고 싶지만, 뒤따라오는 엄청난 공포감을 모르기에 패기롭게 택하는 걸지도 모른다. 정신이 온전한 분들도 요양병원에 오면 금방 치매가 온다는 이야기를 듣자면 더 그렇다.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연은 그저 자연일 뿐이지 자연스럽다는 게 꼭 옳다거나 슬프지 않다는 건 아니라서, 어쩔 수 없이 슬프고 두려워지고 만다.     


 100세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며, 참 버릇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하긴, 세 자리 단위의 할머니도 어려운 이 문제를 겨우 두 자리 단위의 반도 오지 못한 내가 알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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