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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Nov 19. 2023

노후 대비

비혼 비출산 1인가구의 노후경제력 고민기

-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58세 엄마의 이야기를 32살 딸이 듣습니다.

- 작품 속 이름은 가명을 사용합니다. 






 멕시멀 라이프를 지나, 극단적 짠테크 시절도 지나, 이제 소비에 관해서는 그럭저럭한 적당히 아끼는 인간이 되었다. 물건에 질려버린 게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100세 시대다, 120세 시대다' 떠들어대는 소리에 지레 겁먹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건 인간 수명 연장이라는 꿈같은 소리가 아닌, '그 나이가 될 때까지 어떻게든 먹고살 돈을 각자 알아서 마련해야 한다'는 경고음으로 들린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모습을 보건대 나는 결혼할 것 같지는 않다. 그 말은 혼자 100세, 120세까지 생존할 수 있는 경제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통장 잔액, 보험, 연금… 한숨이 나온다. 수명 연장은 삶의 난이도를 엄청나게 상승시킨다.



 그렇게 노후 대비로 재산 축적에 대해 생각하며 지내던 중, 엄마에게서 요양병원 어느 할아버지의 재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몇 년째 입원 중인 할아버지는 요양병원에서 자신의 재산을 맡아줄 수는 없냐고 부탁했다. 수십억 자산가야 아니지만, 그래도 한 사람의 재산이 한두 푼은 아닌지라 병원 측에서는 당연히 거절했다고 한다.

 “그 할아버지는 자식들 없으셔?”

 “있어. 근데, 자식들을 못 믿으시겠대.”

 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의 가족사는 모르는 법이다.


 처음에는 재산이야 은행에 맡기면 되지 않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원에 정기적으로 내야 하는 입원비부터, 중간중간 추가적으로 맞는 영양제나 각종 서비스에 부가적으로 나가야 할 돈이 많다. 그뿐인가. 입원해 있는 동안 주전부리부터 생활용품도 사야 한다. 게다가 거동 자체가 불가능한 분들은 은행을 가기도 어렵고, 핸드폰으로 인터넷 뱅킹을 사용하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그러니 요양병원의 공용 입원실에서 현금이나 카드를 지니고 있기 불안해서, 쌈짓돈을 제외하고는 주로 자식들이 관리하는 경우가 많단다. 병원은 자식들에게 병원비를 청구한다. 자식들은 병원비를 송금하고, 이따금 부모님을 찾아오며 각종 생활용품과 간식거리를 사다 준다.  


 사실 이 할아버지는 극단적인 경우이지만, 자식이나 조카가 대신 돈을 관리해 주며 일어나는 사소한 갈등은 가끔 전해 들었다. 병원에서 돈을 청구하기 위해 전화를 하면 점점 안 받는 횟수가 늘어난다든가, 부모는 좋은 걸 맞고 싶은데 자식 입장에서는 웬만하면 비싼 주사는 놓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 말이다. 재산의 소유 주체와 운용 주체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노후 경제력의 ‘보유’의 개념뿐 아닌 ‘관리’의 개념에서도 생각하게 된다. 특히 배우자를 맞지 않고, 자녀가 없는 개인은 더더욱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앞으로 이런 1인 가구의 고령화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다. 지금이야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저출산, 비혼 가구가 늘어나는 지금을 생각하면, 몇십 년 후에는 이와 관련된 문제가 사회면을 장식할 일이 많아지지 않을까? 만약 자식도, 조카도 없는 사람들은 돈을 어떻게 관리하게 될까? 거동이 불편하거나 갑자기 의식을 잃어버린다면? 만약 병원에 일부 금액을 예치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일부 병원에서 과잉 진료로 돈을 낭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혹은 그럴 거라고 의심하는 환자와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다면 전문적으로 1인 노인들의 재산을 관리해 주는 기관이나 기업이 생길까? 그런데 홀로 요양병원에 있고 가족도 없는데 그걸 잘 관리하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할 수 있나. 그러다 내가 의식을 잃으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자식은 낳아야 한다는 엄마와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질 때가 있다.

 “나중에 너 늙으면 돌봐줄 사람은 있어야지”라는 엄마의 말에 “노후 대비로 결혼하고 노후 관리원을 위해 자식을 낳는 건 아니잖아”라고 삐딱하게 답한다.


 사실 엄마의 말이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사회 시스템은 그런 방식으로 유지되었으니까. 지금은 노인들의 자식이 봉양하고 부모의 재산의 일정 부분을 대신 관리한다. 자식이 없어도 조카와 같이 친척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시스템은 아마도 엄마 세대의 노후까지는 어느 정도 지속가능할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노후의 생존을 위한 경제력은 무척 중요한 문제니까 경제 공동체를 위한 방식으로 결혼을 택하는 게 잘못되었다고는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내 세대에는 어떻게 될까? 사실 지금도 늙은 부모의 자산을 둘러싼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은 종종 매체에서도 나온다. 결국 자식이 답은 아니다. 앞으로는 더욱 그렇게 될 것이다. 결국 어떤 시스템이 필요할 텐데, 지금 국민연금 개편으로 시끄러운 만큼, 나중에는 이런 노년층의 재산 관리 문제가 시끄러워질지도 모르겠다. 사회 시스템을 이야기하는 척하지만, 사실 한 소시민 개인으로서 앞으로 먹고사니즘을 생각하는 것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엄마는 늘 요양병원 이야기의 결말 단골 멘트를 더한다. “엄마는 너희한테 줄 돈이 없어서 다행이다. 그니까 엄마는 나중에 늙으면 요양병원 보내지 마. 알았지?”

 나는 한숨을 푹 쉰다. (적어도 큰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아직 오십여 년 정도는 남았을 것 같은 미래보다 자꾸 이십여 년의 미래를 앞당겨 끌고 오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더 크게 다가온다. 원망은 서운함이 되고, 그건 짜증이 되어 더 툴툴거린다.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니까!” 그래, 역시 미래를 끌고 와서 생각하는 건 거의 쓸모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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