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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Nov 05. 2023

엄마를 보는 양가감정

직면하는 엄마와 외면하는 딸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엄마를 보고 있자면 양가감정이 올라온다. 하나는 생사의 현장에서 부단히 다정하려는 이에 대한 존경이고, 다른 하나는 ‘그만두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1. 존경하는 마음 : 직면하는 엄마


 단순히 병원 근무의 물리적 난이도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량을 소화하는 모습이나, 사람의 생을 다루는 분야에서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근로자에 대한 경외감도 있다. 내 엄마지만 일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하니까. 하지만 존경심의 마음이 드는 건 업무의 난이도나 능숙함이 아닌, 삶의 마지막에 서 있는 이들의 하루에 웃음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영향력이다.


 “엄마, 그래도 밥 한 숟갈이라도 먹어야죠. 응? 그래야 자식들도 와서 안심하지.” 바쁜 와중에 한 입이라도 밥을 먹이려고 할머니의 늘어지고 쭈글쭈글해진 손을 꼭 잡아, 끼니의 따뜻함을 남기는 일.

 “어휴, 엄마! 화장실 갈 땐 꼬옥 나 불러요? 응? 그러다 넘어지면 진짜 큰일 난다니까. 엄마, 또 안 듣지!” 엄마, 엄마 하며 타박해서, 할머니가 진저리 난다는 듯 고개를 저으면서도 웃게 만드는 일.

 “어? 돌아왔네요! 그동안 엄마가 없어서 얼마나 허전했는데. 어서 와요. 어서 와.” 퇴원했던 할머니가 자식들의 등쌀에 밀려 멋쩍게 다시 병원에 돌아왔을 때, 아무렇지 않게 환대해서 안도의 웃음을 주는 일.

     

 물론 화를 내고, 짜증을 내고, 힘들어할 때 역시 많다. 그럼에도 삶의 막바지에 이른 요양병원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에게 한 번의 웃음이라도 더 생에 남겨주는 모습을 보면, 나는 부끄러워지면서도 한없이 그녀를 존경하게 된다. 엄마는 곧 떠날지도 모르는 삶들이라고 해서 외면하지 않는다. 그녀는 늘 한 명 한 명을 뚜렷이 직면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엄마처럼 일하진 못할 것 같기 때문이다.


          




#2. 그만두길 바라는 마음 : 외면하는 딸

 

 모든 병원이 그러겠지만, 특히 요양병원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이 있다. 바로 ‘죽음’이다. 그것도 큰 사고로 인한 죽음이 아닌, ‘자연스러운 죽음’.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더 두렵고 슬픈 죽음의 그림자가 요양병원에서는 하루가 멀게 드리운다.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라면, 노화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걸 직접 옆에서 매일 보는 이는 당연히 더 무섭고, 그 무서움이 걱정으로 변하는 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엄마는 조금만 아파도 “이거 혹시 암일까?”라고 죽음에 가까운 질병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나중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돼도 절대 콧줄은 끼우지 마”와 같이 “나중에 죽게 생기면, 나중에 움직이지 못하면, 나중에 죽으면…”이라는 상황을 가정하는 언어를 내뱉는 횟수가 늘어갔다.


 엄마도 곧 60을 바라보는 데다, 노화와 죽음의 한복판에서 근무하니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언어들이 자식인 나에게는 폭력임을 몰라주는 엄마가 한없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와중에 힘이 빠진 슬픈 솜방망이 주먹이라 차마 제대로 반격을 할 수도 없다. 나는 타박하며 어떻게든 화제를 돌려 버리지만, 돌려진 화제 속에서도 엄마의 말이 자꾸 목구멍에 얹힌다. 이렇게 외면하고 싶은 딸의 비겁한 마음으로, 나는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그만 일하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만다. 



         




 이 두 가지 감정은 매일 널뛰기하며 번갈아 마음에 착지한다. 어느 하나가 가슴을 콱 밟고 허공으로 높이 솟구쳤다가, 이내 다른 감정이 불쑥 들어온다.

 하지만 어떤 감정이 들든, 마지막은 같다. 엄마가 오래도록 이렇게 내게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길. 함께 소파에 앉아 과자를 바스락 거리거나, 같이 드라이브를 하면서, 빨래를 개면서 건강한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 있길. 나와 오래오래 같이 놀 수 있기를 감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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