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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Nov 26. 2023

화려한 네온사인의 요양병원


 언제부터인가 요양병원이 참 많이 생겼다. 지방 중소도시에 사는데도 그 변화를 쉽게 체감한다. 길을 가다가 “어? 여기도 요양병원 생겼네?”라며 새로운 요양병원을 발견하는 일이 잦아진다. 경험에 기반한 현상을 적자면, 커다란 요양병원은 더욱 크고 화려해졌으며, 작은 요양병원들은 그 수가 많아졌다.



 ‘ㅇㅇ 요양병원’

 어두운 밤, 채도 높은 초록색과 빨간색 네온사인 불빛이 병원의 존재감을 뚜렷이 드러낸다. 사거리 신호등에서 초록 불을 기다리며 맞은편 건물을 올려본다. 꼭대기까지 보기 위해서는 목을 꺾을 정도로 올려야 한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큰 요양병원이다.

 10층 높이에, 바로 건너편 영화관보다 훨씬 큰 너비의 요양병원은 웬만한 백화점보다 그 외관이 화려하게 빛난다. 병원 간판뿐만이 아니다. ‘어떤 상을 수상했다, 어떤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전국 최고의 어떤 의료진이 있다.’ 등등… 전광판에서 커다란 네온사인 글자가 반짝이며 흐르고, 각종 플래카드가 밤바람에 펄럭인다. 몇 년 동안 저 플래카드도 전광판도 늘어나고 있다. 본관뿐이던 그 요양병원은 어느새 별관까지 지었다. 뒤편에 역시 화려한 네온사인의 장례식장도 지었다.



 지방 도시에 좋은 의료진과 좋은 프로그램이 있는 요양병원이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그럼에도 어쩐지, 어두운 밤 ‘화려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요양병원을 바라보면 나는 기분이 어딘가 복잡해진다.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크지 않은 도시이기에, 꼭 엄마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의 사정만이 아니라 어디 요양병원은 어떻다더라, 하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말이다.

 아무리 실버산업이 성장산업이라고 해도 모든 요양병원이 다 잘 될 수는 없는 법이라, 그 안에서도 대기업, 중소기업처럼 나뉘게 된다. 화려한 네온사인의 거대 요양병원이 있는가 하면, 여기에도 요양병원이 있구나 싶게 간신히 찾을 수 있는 허름한 요양병원도 있다. 각종 문화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말 그대로 먹고 자고 아주 기초적인 생존을 위한 돌봄만 제공하는 곳도 있다.


 아직 초록 불은 켜지지 않았다. 언젠가 지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할아버지가 ㅇㅇ 요양병원 입원해 있다가 결국 옮겼어. 일주일 입원했는데 너무 비싸서 감당이 안 되더라고.”     

 사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지 않은 재화가 있을까. 비행기도 일반석과 비즈니스석이 있고, 숙소도 게스트하우스와 오성급 호텔이 있고, 가방도 만 원짜리와 그 뒤에 0을 3개 정도는 더 붙인 브랜드 물건이 있다.     


 그럼에도, 나는 전광판에서 흐르는 병원 홍보문구를 다시 바라본다. 

 알고 있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건 그저 삶의 마지막을 보내는 곳이라는 이유만으로 괜히 혼자 의미 부여를 하기 때문이지, 새삼스러운 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전광판의 흰 글씨가 빨간 글씨로 바뀐다. 글씨에서 경고음이 들리는 것 같다. 노인 빈곤에 관한 뉴스가 떠오른다. 그것들은 노후에 빈곤하면 얼마나 외롭고 비참한지 경고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젊을 때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여러 금융 상품을 소개한다.

 명문 대학교,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달리는 것처럼 이제는 마치 좋은 요양병원에서 노후를 보내기 위해 달리는 기분이다. 자식이 부모를 봉양하는 시대는 지났기에, 우리는 우리의 노후를 위해 착실히 돈을 벌고 모은다.      






 신호등이 빨간 불에서 초록 불로 바뀐다. 나는 화려한 네온사인의 요양병원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치켜들고 있던 고개도, 빛을 바라보던 눈도 아파서 고개를 숙인 채, 횡단보도의 하얀 선-회색 아스팔트-하얀 선-을 바라보며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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