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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끼 Dec 24. 2023

요양병원의 천연기념물 할머니

-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58세 엄마의 이야기를 32살 딸이 듣고 적는 이야기.

- 엄마는 요양병원의 할머니들을 '엄마'라고 부른다

- 작품 속 이름은 가명을 사용합니다






 “완전 천연기념물 할머니가 들어오셨어.”     


 천연기념물. 사람에게 붙일 때는, 주로 남들은 다 한 번쯤은 해봤을 법한 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을 일컬을 때 쓴다. 그렇기에 나이가 들수록 ‘천연기념물’ 타이틀이 붙는 경우는 자연스레 사라질 수밖에 없다. 남들이 다 하는 걸 늦게 하는 경우는 있어도, 평생을 안 하기는 어려운 법이니까. 그래서 엄마가 요양병원에서 근무한 지 8여 년 동안 ‘귀여운 할머니’나 ‘순수한 할머니’까지는 있어도 ‘천연기념물 할머니’라는 존재는 한 번도 없었다.

 “대체 어느 정도길래 기념까지 할 정도야?”



       





 천연기념물 할머니니까 ‘천 할머니’라고 부르겠다.

 아마도 80여 년 평생 좌식 생활을 하셨는지, 천 할머니는 첫날부터 침대를 영 어색해했다. 어쩔 줄 몰라 하시다가 결국 바닥이나 옆 의자에 앉기 위해 몸을 비척비척 움직였다. 식사 시간이 되어 밥이 병실로 올라오면, 침대 아래에서 밥을 먹겠다며 식판을 가지고 바닥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당신 입장에서는 이부자리 위에서 밥 수저를 든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던 거다. 엄마는 그걸 말리려고 진땀을 뺐다.


 요양병원에서 할머니들은 대부분 누워있다가 잠시 일어났다가 다시 누웠다가를 반복하며 하루를 보낸다. 어차피 이불은 몸의 일부와 같기에, 며칠 외출을 하는 경우가 아니고서야 정리를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천 할머니는 하루에 수십 번 다시 눕더라도, 일어날 때마다 정갈하게 이불을 반듯하게 개고 그 옆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그녀는 요즘의 발열내의를 일컫는 ‘히트텍’ 대신 ‘내복’이라고 불려야 할, 짙은 자줏빛의 의복을 상하의 세트로 꼭 속에 갖춰 입었다. 면 소재임에도 세월이 묻은 광택으로 꼭 실크 소재처럼 반들거렸다. 양말은 꼭 덧신 양말을 신었다.


 이뿐이랴. 할머니의 묘한 정갈함과 예스러움은 병실에서만 한정되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한 번도 요즘의 화장실 ‘변기’를 써본 적이 없던 것이다. 엉덩이를 무언가에 닿은 채 볼일을 보다니! 엉덩이 살이 차가운 플라스틱에 닿는 순간, ‘에구머니’가 절로 나왔을 모습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민망해하며 제법 오랜 시간 화장실을 이용하는 걸 불편해하셨다고 한다. 물론, 이따금 엉덩이를 붙이고 볼일 보는 걸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이 변기 위에 올라가 쭈그려 앉거나 기마자세로 엉덩이를 떼고 일을 본다는 말은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여든 세가 넘은 할머니에게 그런 자세는 너무 위험했기에 엄마는 그런 차선책을 알려줄 수도 없었단다.     

 







 “아니… 그러실 수가 있나…? 침대나 변기를 한 번도 안 써보실 수가 있나?”

 “모르겠어, 어디 진짜 산골에 평생 사시다 오셨는지. 여기도 자식들이 데려온 거니까.”

 내가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자 엄마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할머니는 변기와 침대의 존재를 알고는 있었지만, 사용하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 정말 천연기념물이라고 부를만하네.”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과거 시절을 그대로 몸에 간직한, 진정한 자연에 속한 사람 같았다.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뿐인데도 어쩐지 보호해 주고 싶어지는 할머니다.     



 “그런데, 오늘 그 할머니 반전이 있어.”

 엄마는 뛰어난 이야기꾼답게, 비밀스러운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비장하게 말했다.

     

 “오늘 병실 도는데, 천 할머니가 정수기에서 커피를 타 마시는 거야! 그것도 믹스 커피도 아니야. 카누 아메리카노를!”

 “와, 아메리카노는 아시네!”

 “아메리카노라고는 말씀 안 하시고, ‘블랙커피’라고 하시더라니까.”     


 엄마와 나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듯한 신비로움이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커피는 고종 황제도 마셨다는데, 가베-라는 말까지 있는데 여든 넘으신 할머니가 커피 마시는 게 신기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어쩐지 천 할머니와 블랙커피는 묘하게 어긋난 느낌이라 웃음이 났다.

 역시 커피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엄청난 식품이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자연인에게도 도시인에게도, 천연기념물 할머니에게도 속세에 찌든 삼십 대 나에게도 생존필수품인, 진정한 세대 통합의 식품인 셈이다. 천연기념물 할머니조차 그 앞에서는 어쩔 수가 없어지는.

 나는 커피를 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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