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위한 노력.
어릴 적 우리 집 저녁 식탁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생선반찬이 올라있었다. 심지어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는 아침 식사 때도 생선반찬을 볼 수 있었고, 냉동고에는 항상 한 마리씩 소분해 둔 고등어나 삼치, 갈치 따위가 가득했다. 경북 울진이 고향이신 아버지의 입맛을 고려한 어머니의 노력 덕분에 나는 어릴 때부터 생선의 깊은 맛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의 고향이자 나의 시골인 울진은 동해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는 곳이라 사시사철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을 맞아 울진에 가면 시골집에 들르기도 전에 가장 먼저 우리 가족이 향한 곳은 읍내에 있는 시장이었다. 시장에서 도라지를 파시던 할머니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 바로 어물전으로 가서 그날 저녁 친척들과 함께 먹을 오징어 횟감을 잔뜩 사서 들어가곤 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 오징어 가격이 못해도 지금의 1/3 수준밖에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이십 년도 더 지난 지금이지만, 아직까지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여동생과 함께 수조 앞에 쪼그려 앉아 유유히 헤엄치던 오징어를 한참 동안 구경하다가도 어물전 사장님이 체망으로 오징어를 건져 올리시면 재빨리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서서 마치 신기한 서커스라도 보는 것처럼 회 뜨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늦은 저녁이 되면 큰아버지와 아버지, 그리고 아랫동네 삼촌들까지 모두 모이셔서 네모진 교자상 위에 동산처럼 쌓인 오징어회를 안주 삼아 술을 드시곤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아버지 옆자리에 끼어 앉아 오징어회를 얻어먹다 잠들곤 했다. 다음날 아침이면 할머니께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우리를 위해 반건조 오징어를 넣은 도라지무침과 가자미식해, 갖가지의 생선들을 굽거나 쪄서 한상 가득 차려주시곤 했다. 물론 전날 다 먹지 못한 오징어회도 함께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레 육고기보다는 해산물을 더 좋아하게 됐고, 나에게 오징어를 비롯한 다양한 생선 요리들은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게 해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골집 밥상 위에 오르던 오징어는 날이 갈수록 그 양이 줄어갔다. 2000년대 이전에 비해 동해의 오징어 어획량이 크게 감소했고, 그로 인해 오징어 가격도 가파른 상승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이제는 눈앞에 쌓아두고 마음껏, 배불리 먹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동해의 수온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들 하지만, 남획과 불법 조업도 오징어 개체수 감소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끄럽게도 나 또한 그러한 일에 동참했던 적이 있다. 불과 3-4년 전까지만 해도 한창 식당가에서 총알오징어 메뉴가 유행을 탔었는데, 내장까지 같이 먹을 수 있어 진한 맛이 일품이었던 그 작고 귀여운 오징어들이 새로운 종이 아닌 그냥 새끼 오징어였다는 사실도 모른 채 눈에 보일 때마다 먹어치워 버렸다. 내가 스스로 불법 어획을 장려해 버린 셈이었다.
점점 그 모습을 감추고 있는 오징어를 보면 내 어린 시절 추억도 함께 사라져 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프고 공허해진다. 내가 느껴왔던 추억의 맛들을 나의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못할 수도 있다니..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아주 단순하다. 내가 지속가능한 수산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유는 내가 바다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바다에서 얻을 수 있는 다양한 맛과 추억을 내 자식들도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어제저녁, 아워플래닛에서 준비해 주신 아주 멋진 행사에 다녀왔다. 바다음식을 사랑하는 소비자들과, 바다와 공존하며 지속가능한 수산물을 생산하기 위해 지대한 노력을 쏟고 있는 생산자들이 한 공간에 모여 우리 바다의 미래를 위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굽이굽이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아워플래닛을 찾아갈 때까지만 해도 사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부담 없이 생산자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오랜만에 뵙는 김태윤 셰프님의(서로 아는 사이는 아니고, 나만 아는 사이다.) 음식도 먹으며 그 시간을 즐기다 오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포럼의 막바지에 이르러서는 도저히 가벼운 마음으로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행사에 참석하신 생산자분들 모두가 그들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그리고 지속가능한 수산업을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문제에 가로막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셨다.
몇몇 생산자분들을 통해 공통적으로 거론된 문제로는 ‘비교적 폐쇄적인 어촌계 1세대 어르신분들과의 소통 불능’, ‘어민들의 의견 반영과 실용적인 제도 및 법률 제정을 위한 공무원 및 시스템의 부재‘ 등이 있었다. 첫 번째 문제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고 쳐도, 두 번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될지 몰랐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간절히 원하고 있는데.. 수산업의 지속가능성은 정말 이뤄내기 힘든 과제인 걸까..??
그 순간, 구세주처럼 나의 고민을 깔끔하게 해결해 주실 분이 나타났다. 일명 물고기 박사로 통하는 해양수산과학자 황선도 선생님이셨는데, 생산자와 소비자(시민)가 함께 지속가능한 수산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쁜 마음으로 오셨다고 한다. 그런데 쭉 얘기를 듣다 보니 우리 모두가 너무 큰 고민거리만 안고 집으로 돌아갈까 걱정이 되어 우리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씀을 내가 듣고 이해한 대로 적어본다.
우리 바다에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 다른 나라의 어장에 비하면 아직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수산물들의 개체수는 많이 남아있는 편이고, 이미 많은 생산자분들이 우리 바다를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그 노력이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우리 소비자(시민)들의 관심과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 육지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법은 결국 시민들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처럼 바다에서 일어나는 문제 또한 다르지 않다. 우리가 더 많이 알고, 관심을 갖고,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알리고,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수산업은 가능해진다.
마지막으로, 아워플래닛의 김태윤 셰프님이 하신 말씀 중 나에게 깊은 깨달음을 얻게 해 준 문장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에게는 하루 세 번, 세상을 바꿀 기회가 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