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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마이크 May 19. 2023

캔모아 세대의 참새방앗간, 경양식당 인터뷰

익산 <페이스> 사장님 인터뷰

<페이스>는 중앙동 젊음의 거리에 위치한 경양식 레스토랑이다. 도시마다 그런 곳이 있지 않은가. 같은 지역에서 동시대를 살아간 학생들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아는 추억의 장소 말이다. 페이스는 익산의 8090세대들에게 그런 존재다. 가게에 들어서면 누군가의 사랑과 우정과 건강을 기원하는 낙서가 벽면 가득 반겨 준다.


페이스에서는 돈까스, 볶음밥, 그라탕 등 익숙하지만 집에서 해 먹기 귀찮은 메뉴를 판다. 후식으로 체리 에이드, 아이스티, 아이스크림까지 취향대로 달콤한 여유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이제 와 하는 말이지만 페이스는 그 시절 소위 잘나가는 학생들의 집합소였다. 당시 나는 모범생도 일진도 아닌 모호한 경계에 있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운이 나쁘면 선배의 눈칫밥을 먹으며 밥을 먹기도 했다. 그래도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이 방과 후만 되면 다시 페이스를 찾았다.


생각해 보니 학생 때는 한 번도 사장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저 후식으로 체리 에이드를 먹을 것인지 아이스티를 먹을 것인지 치열하게 고민하기 바빴다. 10년도 더 지나 훌쩍 어른이 되어 보니 사장님이 궁금해졌다. 인생의 소용돌이를 정면으로 맞은 청소년들을 손님으로 맞이하는 어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는 말한다. 손님이었을 뿐이라고. 그는 인터뷰하는 내내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고 자주 웃었고,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무뚝뚝할 줄 알았던 예상과 달리 그는 이례적일 만큼 투명하고 진솔했다. 아내와 함께 가게를 운영하며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따뜻함도 얼핏 보였다.


메뉴판에 1995년. 이렇게 적혀 있어요. 그때 가게를 오픈하신 거죠? 


- 95년 12월에요. 


페이스가 개업한 지 벌써 27년째 됐더라고요. 제 예상보다 젊은 나이에 창업을 시작하셨네요. 


- 모자만 좀 쓰면 젊어 보여요. (웃음) 빡빡이 머리 한 지가 거의 창업과 동시에 3년 후부터 했으니까 거의 25년째 유지하고 있네요. 


사장님은 가게도 오래 운영해 오시고, 헤어스타일도 오래 유지해 오고 계시는군요. 외람되지만 그럼 더 편한가요? 없어서….


- 안 좋은 조건의 머리칼을 닮았는데, 곱슬이고 머리가 굉장히 가늘어요. 숱도 없고. 20대 후반부터 탈모가 시작돼서 어설프게 기르면 물에 빠진 생쥐같이 이상해져 버려요. 그래서 그냥 밀어 버렸어요. 


지금은 요리를 사모님이 담당해서 하시죠. 처음부터 두 분이 함께하셨나요?


- 아휴, 어머니가 했어요. 원래는 혼자서 맞은편 건물 지하에서 커피숍으로 시작했어요. 그때 여기 중앙동 거리에 사람이 진짜 바글바글했거든요. 차가 못 다닐 정도로. 돈을 정말 많이 벌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2층을 못 따라가겠는 거예요. 한 1년 있다가 인테리어를 새로 싹 했어요. 1억 가까이 투자했었죠. 


그때 당시 1억이면 굉장히 큰돈이었겠어요. 


- 그때는 젊은 나이니까 도전했지. 지금 하라면 무서워서 못 해요. 


인테리어를 새로 해서 매출이 더 나아졌나요?


그때 97년도 말에 IMF가 터졌어요. 하필 우리 오픈이 또 11월이야. 오픈과 동시에 전국적으로 소비가 줄어드는 시대가 와 버린 거죠. 창업하기 전에 외항사라고 배를 4년 탔어요. 결혼까지 한 상태였는데 가게를 접고 다시 배 타러 가려고 했어요. 빚을 그대로 떠안고 나가려고 했죠. 


대답을 이어가던 박성준 사장님의 눈가가 벌게졌다. 고이는 눈물에 스스로도 당황했는지 마른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때 이후로 레스토랑으로 업종을 변경하신 건가요? 

어머니가 커피 말고 요리를 한번 팔아 보자며 나서서 도와주셨죠. 원래 식당을 하던 분이셨거든요. 근데 커피숍을 하려고 했던 터라 주방 시설이 없어서 가정집 가스레인지 놓고 했어요. 돈까스 위주로. 했는데 대박 쳤어요. 99년부터 2001년까지. 거의 3년간 어마어마했어요. 근데 그게 얼마 못 가더라고. 


호황기가 3년을 갔군요. 


- 예, 한 10년만 갔으면 건물 하나 올리겠더라고. 3년째 되니까 떨어지더라고요. 경쟁 업체도 생기고, 또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며) 이런 얘기하면 그렇지만, 몇 년 전에 어떤 손님이 그러더라고요. “이 집이 옛날에 일찐들만 다녔어.”


(웃음) 맞아요. 그런 학생들이 많이 왔었죠. 


- 학생들도 담배 피우러 오고. 2000년대 여기서까지 자녀들 데리고 왔던 부모들은 실망하고 가는 거예요. 연기가 꽉꽉 차니까. 환풍기에 공기청정기까지 돌려도 안 돼요. 여기서 한 3명만 펴도 연기가 꽉 차 버려요. 


아무래도 학생 손님이 많고, 그리고 불량 청소년도 많이 왔던 거 같아요.


- 거의 대부분이었죠.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엔 정말 대부분이었어요. 


(웃음) 네, 그런 분들을 손님으로 상대하기 조금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떠셨나요?


- 지하에 있을 땐 “형님, 형님” 하는 애들도 많았어요. 다 고등학생들이죠. 제 눈엔 어린 철부지들이죠 뭐. 그래서 의욕이 좀 꺾인 것도 사실이에요. 아, 여기는 그냥 놀러 오는 분위기구나. 사실 13년 쯤에 가게를 접으려도 했어요. 월급쟁이를 해 보려고요. 와이프도 요양간호사도 알아보고, 나도 인터넷 구인구직 같은 거 알아보고 그랬는데. 47살에 들어갈 데가 아무데도 없었어요. 진짜 허드렛일 말고는. 그때 와이프가 그럼 사람을 줄이고 둘이 한번 해 보자 해서 2013년부터 둘이 한 거예요.


그때부터 페이스 시즌 3 버전이 탄생한 거네요. 


- 예, 메뉴판도 수정하고 양념 배합도 다시 했어요. 전에는 학생들 위주라 음식이 전체적으로 달았는데 많이 줄였죠. 그러니까 약간 패밀리 레스토랑식으로. 완전히는 아니지만 가족 단위로 오는 분들도 많이 늘었어요.


그래서인지, 메뉴판을 보니까 재밌는 부분이 있어요. ‘저희 업소는 친절과 미소는 판매하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 


- 제가 원래 과묵해요. 친화력이 없어서 손님들한테 살갑게 대하는 편도 아니에요. 장사를 30년 해 보니까 너무 친절해도 알고 지내도 불편한 관계가 돼요. 그래서 미리 알려주는 거예요. 친절과 미소는 판매하지 않는다고. 


페이스하면 떠오른 이미지가 몇 개 있어요. 여기가 낙서가 진짜 많잖아요. 


- 하, 낙서도 할 얘기 많아요. 


낙서 얘기 너무 궁금해요. (웃음) 일부러 안 바꾸시는 건가요?


- 아이, 뭐. 우리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고. 한 번 하기 시작하니까 다 따라서 한 건데. 워낙 젊은 손님이 많았었으니까. 한 번은 애들이랑 같이 온 가족 손님이었는데 낙서하게 싸인펜 좀 달라고 하더라고요. (창틀을 바라보며) 이런 데는 좀 괜찮은데…. 근데 이게 덕 볼 줄은 몰랐어요. 굉장히 독특하게 보더라고요.


맞아요. 페이스의 문화로 자리 잡은 거 같아요. 지금은 이렇게 낙서에 관대한 집이 많지 않거든요. 


- 그래요? 나는 다 그런 줄 알았네. 


그러면 기억에 남는 흔적도 있나요? 아니면 어후, 이건 왜 썼지 이런 것들. 


그거야 뭐. 누구야 너만 평생 사랑…. 이거 우리 알바야, 알바. 알바했던 친구들이 하트 모양 낙서를 하고 가는데 다 헤어졌어요. 끝까지 사귀는 애들이 없어. 낙서하고 가면 애들한테 그랬어요. 여기 낙서하고 가면 다 헤어진다고.


**


이 질문은 제가 제일 궁금했던 부분이기도 하거든요. 


학교를 다녔던 학생들은 지금도 ‘페이스’라고 하면 다 알아요. 졸업식, 밸런타인데이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도 정말 북적이는 곳이었죠. 지금도 물론 손님이 많지만, 그 시절 페이스는 전설같은 존재였어요. 우리가 사랑했던 공간. 학생들이 왜 이렇게 좋아했을까요? 


- 음식점이 잘되는 이유는 가격과 맛이에요. 요즘 오픈하는 가게들은 대부분 서비스가 좋아요. 손님들이 후기를 보고 오는 시스템이니까. 근데도 1년을 못 버티고 문 닫는 가게가 많아요. 가격과 맛의 균형이 맞아야 해요. 우리 집은 싸요. 6,000원부터 메뉴가 시작하죠. 10년 만에 전 메뉴를 500원씩 올렸죠. 초창기엔 4,500원이었어요. 우리랑 비슷한 음식을 파는 옆집 가게가 7,000원 받을 때였어요. 가격이 싸니까 자연스레 학생들이 많이 왔죠.


학생들이 많이 와서 일부러 가격을 천천히 올리신 건가요?


- 와이프랑 같이 운영하는데 자꾸 더 올리자고 해요. 저는 계속 안 된다고 하는 중이죠. 가격을 올려서 메리트 있는 집이 있고, 가격이 저렴해서 인기 있는 집이 있어요. 사람들이 인식하는 페이스는 저렴한 가격으로 음식을 파는 곳인데 가격을 확 올려 버리면 황당하잖아요. 오래 유지하는 가게니까 사람들이 인식하는 이미지를 유지하는 게 유리하다고 생각했어요.


오랜만에 다시 찾아오는 손님도 종종 있을 것 같아요. 


- 오래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신기해서 오시는 분들도 종종 있어요. 우린 일부러 와 주니까 고마운 거죠. 


그럼 고마운 손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있을까요? 


- 허허. 글쎄요. 살갑고 친화력 있게 다가가야 하는데 성격상 잘 안 돼요. 몸이 피곤하면 초심을 잃어요. 가끔 오래 지켜 줘서 고맙다고 장문의 글을 남기고 가는 손님도 있어요. 내색은 안 하지만 힘이 되죠. 나는 계속 이 일을 해야 하니까. 이 나이 먹고 할 게 없어요. 


인터뷰 내내 학창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낙서를 보며 한탄할 땐 같이 웃었고 사장님의 아픈 과거를 공유할 땐 같이 울었다. 페이스 사장님이 아닌 박성준의 삶을 알아 가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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