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마이크 May 25. 2023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

솜리치킨 본점의 이야기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청년이 고향에 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리고 그 가게가 솜리치킨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돌아올 만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역마다 유명한 가게가 하나쯤 있지 않은가. 잊을만하면 생각나고 다시 가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줏대감 같은 가게. 바로 그런 곳이었기 때문이다. 솜리치킨은 50년 전통의 가마솥 치킨을 파는 곳으로 식어도 그 맛이 변치 않고 맛이 좋아 이미 익산에서 명성이 자자했다. 


가마솥에 기름을 가득 부어 밀가루 옷을 입힌 닭을 한 번에 넣어 튀겨낸 닭이 특징이다. 가마솥 온도가 높기에 치킨을 하나씩 떼어 넣다가는 앞에 넣은 건 타고 뒤에 넣은 건 안 익는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한 번에 넣은 반죽을 떼고 잘라내는 과정에서 ‘부스러기’가 등장하는데 과자처럼 고소하고 담백해 자꾸 손이 가는 맛이다. 당일 도축된 닭을 받아 양파, 마늘, 생각, 감초, 카레 등 여러 가지 숙성된 천연 양념으로 염지를 하고 주문과 동시에 양념하고 반죽해 튀기므로 신선한 닭고기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전통 있는 가게를 이어받기 위해 당차게 익산으로 돌아온 이의 이름은 윤지호다. 그는 스스로 ‘로컬 수저’로 소개했다. 금수저 은수저를 넘어 지역에서 자리 잡는 데 큰 도움을 줬다던 로컬 수저. 이제는 치킨집 딸이 아니라 윤지호로 살고 싶다는 당찬 모습을 보니 윤지호 버전의 솜리치킨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그가 익산에서 어떤 일을 벌일지 궁금해지는 하루였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요. 


 - 보통 10시 전에 출근해요. 보통 닭을 버무리거나 튀기는 건 저를 제외한 가족이 보통 하고요. 저는 포스기를 지켜요. 손님이 오면 응대하는 하루를 보내죠. 제 주된 업무는 점심시간 챙기는 거에요. 11시부터 점심 메뉴를 고르고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이라 철저하게 지키는 편이에요(웃음). 나머지 시간엔 닭 나오는 시간이랑 손님 픽업 시간을 체크하면서 응대를 해요. 그리고 마감 때 영수증 처리해서 모아서 아버지께 드리죠. “오늘의 매출입니다.” 하고요. 퇴근하고는 주로 운동하고 하루를 마감하는 편이에요. 


가업을 물려받기 위해 왔다는 대외적인 포부도 있지만 지호 님만의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 실은 몸이 안 좋아서 내려왔어요. 요양하러 온 거죠. 제가 서울에서 연예인 매니저를 했었는데 생활을 함께해야 했어서 불규칙적인 일이기 때문에 몸이 힘들었나 봐요. 이상 반응이 생길 정도라 조금 쉬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엔 부모님도 아프셔서 솜리치킨도 물려받야겠다고 생각했죠. 


고향에 다시 온다고 했을 때 가족분들 반응은 어땠나요.


 - 어쨌든 아파서 내려온것도 있기 때문에 당시 부모님의 마음은 제가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잘했다고 하셨어요. 언젠가 아버지가 ‘잘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원래 표현을 잘 안하는 분인데. 예전에는 아버지가 솜리치킨을 지켜야한다는 책임감이 컸나봐요. 그래서 제가 뭔가를 바꾸려고 할 때 거절을 많이 당했는데 익산에 온 뒤로는 포용력이 늘으셨죠. 


지호 님이 스스로를 ‘로컬 수저’라고 소개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금수저 은수저와 다르게 로컬 수저는 지역에 깊은 뿌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로컬 수저로 살아가는 지역의 삶은 어떤가요. 


- 일단은 익산에서는 누구나 들으면 다 알만한 곳 딸이라는 점이죠. 이건 장점이자 단점인데  ‘솜리치킨 딸’이라 어느 순간 가게를 대변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거 같아요. 치킨집 딸이 아니라 윤지호로 하루를 보내고 싶을 때도 있으니까요. 금전적인 부분은 정말 부족함 없이 자랐어요. 가마솥 앞에서 닭을 튀기니까 저희는 하고싶은 거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셨어요. 요즘엔 익산에서 다양한 커뮤니티 모임을 만들고 있는데 이런 공간이 있다는 자체도 활동을 도모하는데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솜리치킨이 원래는 남부시장 안에 있었잖아요. 가게를 시장 골목으로 이사한지 15년 정도 됐네요. 학창시절에는 시장에 자주 있었겠어요. 


제가 중학교 때쯤 왔으니까 초등학교까지는 시장 안이 제 놀이터였죠. 제가 한번 본 사람도 바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성격인데 그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어요. 시장에서는 자꾸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르고 제가 부르러 갈 사람들이 항상 있었어요. 지금도 좋은 추억이라고 생각해요. 내의를 파는 사장님이 계셨거든요. 언니랑 제가 가면 항상 장난감을 선물로 줬어요. 그때는 시장에 아는 사람이 진짜 많았어요. 


어릴 적부터 시장에 대한 추억이 많으시군요. 


어머니가 항상 아기 때부터 손잡고 데리고 다니면서 인사를 시켰거든요. 누군가 시장이 더럽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던데 저는 한 번도 더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저한테는 그저 정겨운 공간이에요. 


시장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경험치가 낮아서 생길 수 있는 이질감이라고 생각해요. 


맞아요. 직접 겪어보지 않고 만들어낸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학창 시절엔 주변에 시장을 한 번도 안가본 친구들도 많았어요. 그럼 꼭 그 친구들을 데리고 순대 사 먹고 장보고 그랬어요. 서울 살 때도 시장 도보 2초 거리에 살았거든요. 집 앞에 나가면 제철 과일과 음식이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아마 어렸을 때 시장을 다녔던 경험이 쌓여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솜리치킨으로 돌아가자면 익산 남부시장에 ‘치킨거리’도 있잖아요. 솜리치킨이 깨통닭의 원조로 알고 있어요. 


몰랐는데 저희 할머니가 정말 대단하시더라고요(웃음). 깨통닭을 개발했는데 장사가 잘 되니까 주변분들한테 레시피를 알려줘서 지금 치킨 거리가 형성됐다고 해요. 그래서 가마솥 통닭에 정말 원조가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50년이 넘으니까 익산의 랜드마크처럼 찾아주는 분들도 있어요. 


50년 동안 잘되는 비결이 있을까요. 


저도 고민해봤는데 꾸준함이 아닐까요. 어떤 손님이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적이 있는데 어떻게 10년 전이랑 맛이 똑같을 수 있는지 말하시더라고요. 저희 어머니가 네, 20년 전부터 제가 했으니까ᆞ요. 라고 하더라고요. 맛의 꾸준함이라고 생각해요. 


꾸준함의 비결인 솜리치킨의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어떤 것들을 준비하셨나요? 


 - 준비라기보다 예전부터 수기로 작성하던 것들이 많았거든요. 시장 안에서부터 운영했었으니까. 현대화할 수 있는 부분을 바꾸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사실 요즘은 바꾸면 다 돈이잖아요. 포스기도 설치하고, 점심시간 안내 멘트도 넣어야하고, 제가 고향에 다시 오기 전부터 아버지한테 그런 요청을 많이 드렸죠. 보수적이라 처음엔 싫어하셨어요. 그냥 네가 받아서 끝났다고 하면 되지 뭐하러 돈을 쓰냐. 라고 하셨는데 근데 사실 모든 일을 사람이 하기엔 한계가 있거든요. 지금 또 적응되서 잘 활용하고 있어요. 제일 중요한 건 맛이 바뀌지 않게 신경쓰는 거 같아요. 워낙 오랫동안 가게를 유지하고 있다 보니 단골 손님도 많고 오랜만에 다시 오는 손님도 많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치킨 맛을 유지하려고 신경을 쓰시는군요. 


 - 워낙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도와드려서 이미 손에 익은 상태였어요. 치킨을 오래 보다 보니 튀김 색만 봐도 느낌이 와요. 유독 색이 진하거나 연할 때는 확인하죠. 언니랑 엄마한테도 여러번 물어보고요. 


지호 님과 솜리치킨의 새로운 목표가 있을까요.


 - 원래는 오자마자 가게를 확장하고 싶었어요. 직영점을 차리고 싶었는데 우선은 급하게 생각 말고 천천히 만들어볼 계획이에요. 당장은 영업시간이 짧으니까 못 먹고 돌아가는 손님들이 많아요. 언니랑 저는 솜리치킨이 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요. 자부심 같은 거랄까요. 오는 분들에게 더 자주, 오래 느낄 수 있도록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개인적으로는 커뮤니티 모임을 만들고 있는데 ‘가업을 물려받은 사람들’끼리 수다 떠는 자리를 마련하면 너무 재밌을 거 같아요. 




가업을 물려받는 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수십년의 세월에 손님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어깨 너머로 배워야하는 점이 많다. 그럼에도 망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 자부심 가득한 모습에서 조금 궁금해졌다. 10년 후의 윤지호가 이끄는 솜리치킨은 어떤 모습일지 말이다. 아마 지금보다는 더 효율을 갖추면서 치킨 맛은 변함이 없는 모습일 것이다. 

이전 10화 캔모아 세대의 참새방앗간, 경양식당 인터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