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들의 고민 상담소, 모드니에 서점문구
학창시절을 보내다 보면 준비물을 사야 할 일이 생기고 어느 동네나 문구점 하나쯤은 있다. 꼬꼬마 시절에는 준비물보다 간식을 사러 더 자주 가는 필연의 장소다. 특히 그 시절 문구점은 단돈 100원이면 마음에 드는 과자를 손에 들었고 어쩌다 500원을 들고 간 날이면 위풍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가 좋았지. 하고 떠올리기 딱 좋은 때. 돌아보니 이 소박한 풍요로움을 당시만 느낄 수 있는 특혜라는 것을 얼핏 알아챘는지 하굣길이면 어김없이 문구점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모드니에 서점문구’는 나의 단골 문구점이다. 정확히는 19년 전 단골 가게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숙제로 동네가게 사장님 인터뷰를 했었다. 그때 내 방학 숙제의 주인공이 바로 서점문구 사장님이다. 그 뒤로 정말 참새 방앗간 들리든 자주 방문했다. 필요한 준비물이 있던 없던 그건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늦은 저녁 집에 가기 아쉬울 때, 학원 가기 전 시간이 남았을 때, 문구점에 들러 사장님과 수다를 떨었다.
“왔어?”하고 자연스럽게 건네는 인사에 여유롭게 “네, 저 잠깐 있다가 갈게요.” 하고는 문구점에 머무는 사이 나의 몸과 마음은 튼튼해졌다.
올해로 23년째 같은 자리에서 문구점을 운영해오고 계신다. 어릴 적 나의 소박한 풍요로움을 준 사장님의 성함은 김현준, 이귀례 사장님이다. 원래는 부부가 함께 운영했는데, 5년 전부터 현준 사장님은 다른 사업체를 꾸리고 귀례 사장님이 문구점을 전담해 맡고 계신다.
나는 현준과 귀례의 문구점 역사를 알고 싶어 인터뷰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연락드리네요.”로 갑자기 건 전화에 “아이고, 이게 누구야.” 하고 반갑게 인사하던 현준 사장님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는 가게 오픈 시간에 맞춰 문구점에서 만났다.
진짜 오랜만이네. 10년 만인가? _김현준
그러니까요. 저 고등학교 때 졸업 이후로 안왔으니까 그쯤 된 거 같아요.
내 눈에는 아직도 다 어린애들 같아.
저랑 특별한 인연이 있으시죠. 10년 전 쯤에도 제가 인터뷰하러 찾아왔었는데요. 그 때를 기억하시나요?
물론이지. 그 또래 친구들이 비슷한 과정이 있었어. 해마다 그맘때쯤에 엄마하고 수첩 들고 같이와. 단체로 과제하러 오기도 하고. - 이귀례
그럼 와서 어떤 걸 물어보던가요?
몇시에 열고 몇시에 닫는지, 문구점을 운영하면서 보람이 어떤 게 있는지. 그런거 물어보지. 애들이 질문이 다 비슷비슷해. 단체로 쪼르르와서 질문하면 얼마나 귀여운지. - 이귀례
듣다 보니 저도 문득 궁금해지네요. 문구점을 20년 이상 해오셨는데 어떤 부분에서 보람을 느끼시나요?
애들이 필요한 물건을 찾아주고. 그게 보람이지 뭐. 원하는 물건을 충족시켜주는 거 말이야.
그러면 20년 전 쯤에는 어떤 계기로 문구점을 차리신 건가요?
내가 워낙 애들을 좋아했으니까. 애들 눈높이에 맞춰서 하는 일이 너무 즐거웠던 거지. 원래는 초등학교 앞에서 3년 정도 문구점을 운영했는데 그 뒤로 아파트 단지 사이로 옮긴 거지. 학교 앞은 방학엔 사람이 너무 없어서 변수가 많았어. 여기는 일년 내내 오는 학생 수가 엄청 차이가 나지는 않거든. - 김현준
학교 앞에서 문구점 했으면 애들이 정말 많이 왔었어요. 어떤 이유로 옮기신 건가요?
거의 독점했지. 한 반에 준비물을 다 우리 집에서 했으니까. 근데 방학에 손님이 없어. 경험을 쌓았으니 우리 그럼 아파트 단지 쪽으로 옮겨보자 한 거지. 여기는 꾸준히 손님들이 찾아오지. - 이귀례
경력을 쌓으신 후에 옮기신 거군요. 근데 학교 앞보다 준비물 사러 오는 학생들은 적었을 것 같아요.
그치. 그대신에 연령대가 다양해졌지. 유치원생부터 중고생들까지. 그래서 매출이 훨씬 낫지. - 이귀례
다양한 연령대가 오니까 전보다 물건도 다양하게 가져다 놓으셨겠어요.
그치. 근데 예전에는 매일 아침 도매상에 들러서 물건을 떼왔어. 지금은 영업사원들이 돌아다니니까. - 김현준
그니까 20년 전쯤에는 준비물 사러 애기들이랑 엄마가 엄청 왔어. 근데 정권이 바뀔 때 나라에서 학용품 지원을 다 해줘버린 거야. 그때 이후로 문구점에 손님이 많이 줄었지. 그 전까지는 문구점 도매상에 전성이였지. 예전에는 유행하는 물건, 그때마다 필요한 물건을 직접 떼왔는데 지금은 앉아서 영업사원한테 주문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거지. - 이귀례
그럼 매출에도 영향이 있으신가요?
노동력이 줄긴 했는데, 단가가 많이 올랐으니까. 도화지나 공책, 가격들이 많이 올랐잖아. 그래서 마진폭이 커졌지. 옛날에 100원이었으면 게 500원, 1,000원이니까. - 김현준
실제로 2003년, 초등학교 학습준비물 무상지원 제도를 실시하였다. 이후 10년간 없어진 문구점만 1만여개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뉴스원, 2013). 문구업계 종사자들은 소매점 몰락의 원인으로 ‘학습준비물 없는 학교’제도를 꼽고 있다.
혹시 저처럼 이렇게 다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은가요?
어떤 친구는 거리 로드뷰보고 전화번호 얻어서 연락하는 친구도 있어. 내가 워낙 애들이랑 친구처럼 잘 지냈으니까 시간이 지나도 종종 찾아오더라고. - 김현준
그때마다 뿌듯하시겠어요.
아휴, 좋지. 애기 엄마가 돼서 연락하는 친구들도 있어. 그때마다 실감해. 아, 시간이 많이 지나기는 했구나. 하고. - 김현준
그때 그 시절 학생들이 아저씨를 따랐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내가 아이들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고 눈높이를 맞춰서 얘기했으니까. 삼촌도 아니고 아빠도 아닌 그 사이? 나는 애들이 예뻐. 순수하잖아. 내가 운영하는 문구점이 애들이 편하게 있다가는 곳이면 했거든. - 김현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