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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방계 소녀 Nov 07. 2024

다자이를 아시나요

딱지 붙은 불량은커녕


이봐, 다자이. 짐짓 근엄한 척, 무게만 잔뜩 잡고 있나 본데, 난 당신이 얼마나 귀염뽀짝한 인간인지 이미 다 눈치를 채 버렸다고. 근자에는 당신이 남기고 간 잡다한 글까지 모조리 섭렵하다 보니 더욱이 그렇다네. 우리가 동시대에 살았더라면 한 번쯤은 분명 어떻게든 만나봤을 텐데 말이지. 물론 피차 유별나게 예민한 사람들인지라 너무 가까이 다가서는 건 나부터가 삼갔을 테지만 말이야. 언젠가는 우리도 만나겠지만, 그때도 난 먼발치에서 그저 우리끼리만 알 수 있을 정도로 가벼운 눈인사만 보낼 작정이야. 내가 좋아하는 그만큼 타인도 나를 좋아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쯤은 자네도 잘 알 테니, 못난 나를 부디 이해해 주시게.


선의는 믿기지만, 선의로 가득 찬 사람은 좀처럼 신뢰하지 못하는 고약한 나인지라, 되레 다자이 오사무 같은 인간에게만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아아, 이런 남자라니 심상치가 않아. 어쩌면 모르고 살아도 좋았겠지만, 그의 여인들 또한 나처럼 알게 된 이상은 속절없이 빠져들었을 테지. 지금은 애달픈 각자도생의 시대인지라, 그럴수록 더욱이 제 손 하나로 기울일 수 없는 노력이라면 도통 믿음이 잘 가질 않는다. 심지어는 빈칸이 제아무리 공짜라 한들, 지속가능성을 말하기에는 여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니 말이다. 타의라는 곁을 모두 우고 나서야 우리는 비소로 아무런 조건 없이, 거울에 비친 나만을 바라보며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믿을 거라곤 세상이 아닌 나 하나뿐이다. 실은 그마저도 나를 믿는 게 아닌, 딱 내가 기울일 수 있는 노력만큼 믿어볼 따름이다. 다자이가 짙게 드리우고 간 사뭇 짠 내 나는 고뇌의 흔적도 쓰려고 발버둥 쳤다기보다는 다만 그로서는 적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건 아닐까. MBTI로 말할 것 같으면 아마도 세상의 소금형이자 청렴결백한 논리주의자인 ISTJ가 아니었겠냐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부기능인 감각과 직관만 제외하면 어쩐지 읽을수록 동질감만 더해가는 걸 보더라도 말이다. 그게 아니었더라면 살아있는 동안 최다 출판 부수가 이천오백 부에 불과하진 않았을 거다. 그마저도 판매된 부수는 아니라는 점이, 그저 남 일 같지만은 않아서, 나로서는 영 구슬프기만 하다.


참으로 뼈아프고 억울하긴 하지만, 자각과 의심을 무한히 반복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삶인 듯싶다. 읽기와 쓰기가 실로 그러한 것처럼. 그래서 나는 오늘도 도리없이 읽고, 가급적 참지 못할 때에만 이따금 쓰고자 한다. 어떠한가? 여기까지가 오늘 아침 사무실에 나오기까지, 요즘 심취한 다자이를 생각하며, 갓길에 수차례 정차해 가면서 가까스로 받아 적은 생각들이다. 때마침 일요일인데도 애들을 데리고 앞산으로 놀러 가준 아내에게 새삼 고맙다. 이것으로 내게 남아있는 시간은 세 시간 남짓. 오는 길에 혹시나 싶어 편의점에 들러 비상식량도 좀 사 왔다. 나는 왜 아직도 삼립 빵이 좋은 걸까. 추억의 도나스는 덤이다. 역시나 지나간 추억 앞에서는 누구나 관대해지는 걸까? 들여다보니 유통기한마저도 가히 넉넉하니 말이다.



다자이 오사무
“내가 조숙한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조숙하다고, 내가 게으름뱅이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게으름뱅이라고, 내가 소설을 못 쓰는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글 못 쓴다고, 내가 거짓말쟁이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 내가 부자인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부자라고, 내가 냉담한 척하면 사람들은 나를 냉담한 녀석이라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괴로워 나도 모르게 신음 소리를 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괴로운 척한다고 수군거렸다. 자꾸만, 빗나간다. 결국 도리 없지 않은가.”
67p – 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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