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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방계 소녀 Nov 03. 2024

물어볼 만한 사람의 존재

실은 혼잣말


물어볼 만한 사람의 존재란 언제나 소중하기 그지없다. 비록 그럴만한 데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게 좀 서운하긴 하지만, 이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개는 풍요 속의 빈곤에 더 가까우니까. 가장 큰 요인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의견을 쉬이 수용하지 않는 자신에게 있고, 뿐만 아니라 서로 결까지 맞아야 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존재들이 내 곁에도 많았더라면, 독서량도 덩달아 줄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람 간의 대화란 깊게 따지고 보면, 실은 혼잣말에 더 가깝다. 물론 당장은 수긍하기 어렵겠지만, 내가 납득시키려던 대상이 실제로도 타인으로 드러나는 경우는 실로 드물다. 상대는 십중팔구 나였으니까. 내가 내린 결정에도 매번 합당한 근거가 있었던 건 아닌 것처럼, 단지 사람이 없어서는 아니다. 그저 나만이 존재했을 뿐이니까. 


선행을 베푸는 동기가 반드시 선할 필요는 없는 것처럼, 내가 책을 찾는 이유도 사뭇 착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순전히 효율만을 고려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책 한 권으로 얻을 수 있는 지혜를 사람에게서 얻고자 하면, 더구나 퇴고 되지 않는 말로써 책 한 권의 효과를 횡설수설 얻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마 몇 달이고 그 사람과 매일 저녁 자리를 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러한 논리도 요즘엔 무엇이 됐든 숏폼이 주류인 걸 감안한다면 빈약해지기는 마찬가지다. 가만히 앉아서 따분하게 책을 읽는 게 어째서 효율이냐는 반박을 부를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또한 납득이 필요했던 건 아니다. 나는 엄연히 나를 위해서만 읽고, 쓸 수 있는 거니까. 배워서 남 주느냐는 흔한 말이 있긴 하지만 나눠주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을 테고, 나 아닌 타인을 위해서만 힘겹게 버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가정법에 의미를 부여하려면 당연히 결과적으로도 좋아야 가능하겠지만, 책이 아니었더라면 그때 병원에 가야 했을지도 모르는 내가 하물며 쓰게 될 줄이야. 책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마 어여쁜 딸들이랑 아직도 친해지질 못했을 테고, 그랬더라면 나는 지금껏 밤이슬을 맞고 다녔을지도 모른다. 책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아직도 티비 앞에서 소파나 지키는 파수꾼이었을 테고, 그랬더라면 나는 아직도 외로움만 알았지 고독은 알 길이 없었을 거다. 


물어볼 만한 사람의 존재가 흔해지기만 한다면 아마도 독서 인구의 반 이상은 줄어들지도 모르겠지만, 책을 몰랐다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해지는 나는 그럼에도 계속 잘 깎은 연필을 손에 쥐고 꿋꿋이 종이책을 읽어 나갈 작정이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스스로 마음이 동할 때에만 온전히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책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책이 필요 없는 세상은 더 아름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세상에서라면 기실 혼잣말에 가까운 지금 우리의 대화도 조금은 바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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