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야구가 뭐라고. 요 며칠 얼굴이 막 붉으락푸르락 난리도 아니었다. 응당 애들한테도 보여줘서는 안 될 못난 아비의 모습이었고. 다시 야구를 보기 시작한 건 아마도 올 7월쯤이었을 거다. 개막 초기에 8연패 기사를 분명 본 것 같은데, 느닷없이 왜 잘하고 있는 거지? 주축 투수들의 불법도박 스캔들로 인해 삼성 라이온즈 왕조가 무너진 때로부터 어언 10년 만이었다.
“10구, 높게 떠올랐습니다. 삼성 라이온즈가 우승을 준비합니다! 우익수 박한이, 잡아냅니다! 2000년대 최강팀을 소개합니다! 2014년 프로야구 챔피언! 통합 우승 4연패의 삼성 라이온즈!! 이것은 단순한 우승, 챔피언, 왕조가 아닙니다. 지난 4년간 4번째 우승, 삼성의 역사입니다.” - MBC 한명재 캐스터의 2014년 우승콜. 그리고 이 우승은 현재까지 삼성의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있다.
하필이면 통합 우승 4연패 모두를 직관할 수 있었던 탓일까? 그놈의 추억이 뭐라고. 나는 어느덧 또다시 과몰입을 하고 있었고, 정신건강 또한 여지없이 나빠지고 있었다. 나는 어째서 이토록 중간이 없는 걸까? 좀처럼 편안히 즐기지를 못하는 나 자신이 미웠다. 그럴수록 결말은 더욱 슬퍼지는 것 같은데, 대개는 극에서 극으로 치닫기만 할 뿐이다. 추억할 어제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낭만을 오롯이 즐길 수 있었을까? 이 못난 자신에 대해 며칠간은 자책하며 또 괴로웠다.
아내에겐 많이 미안하고 또 영 모르지는 않았을 테지만, 나는 역시나 사랑하기에 좋은 남자는 아닌 것 같다. 귀한 내 딸들이 앞으로 데려올 남자들은 이왕이면 우승 경험이 많지는 않은 팀의 팬이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세기말에 한 번, 혹은 1984년이랑 1992년까지 도합 두 번 정도만 우승한 팀들. 좀 애석하긴 하지만 그 정도 순애보라면 비교적 마음이 놓일 것도 같다. 야구가 뭐라고, 꼭 이럴 때만 과한 애착을 갖는 나 같은 놈이 아니라. 왕조가 뭐라고, 영광의 재현만을 바라는 나 같은 놈이 아니라.
그 시절 애즈원은 비록 “원하고 원망하죠”라고 했었지만, 원한다 해서 모두가 원망을 허락받는 것은 아니다. 거저 되길 바라는 마음을 희망이라 부르지는 않듯이, 여한을 품을 수 있는 자 또한 오랫동안 바라왔던 사람들뿐일 거다. 신이 되고 싶어서 된 경우도 없다지만 그토록 되길 바랐으나 꿈꾸던 신이 된 자는 더욱이 없듯이, 그 정도의 행운은, 그저 그런 희망사항이 아닌, 사력을 다한 이들에게조차 쉬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제는 섣불리 뭘 좋아하기가 두렵다. 숙고 끝에 결과마저 제어가 가능할 성싶은 것들만 몰입을 허용해야 될 정도니까. 그보다 더 허망한 게 뭐냐 하면 제아무리 읽고 쓰며 애를 써봐도 여전히 제자리 같다는 점이다. 야구 하나에도 이토록 가볍게 와르르 무너져 내릴 줄이야. 간밤 5차전을 끝으로 길었던 우리의 가을야구는 막을 내렸지만, 섭섭한 이 내 마음은 채 가시질 않는다.
어른이 된다는 건 도무지 녹록지가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정신 승리의 세계로 무작정 도피해 버리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그게 가능하다면 마음이야 편해지겠지만, 나를 속이면서까지 무고한 척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설령 어른까진 못되더라도 행여 누구를 탓하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원하면 여지없이 원망하게 될 테고, 덜 원한다면 그보다 원만할 테니까.
쉽지 않다는 걸 모르지는 않으면서도 쉬이 단념할 수가 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늙는 것만은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두렵다. 이렇게나 부조리한 세상 속에서도 그것만은 언제나 공평한 공짜였으니까. 또 다른 십 년이 지난 오늘엔 과연 지나간 밤을 기꺼이 추억할 수 있는 내가 될 수 있을까? 결과와는 아무런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