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디의 '용의 전설을 품은 카사바트요'
마드리드행 비행기 안에서, 선뜻 잠이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했다. 스페인은 한국보다 8시간이 늦다. 그래서, 밤에는 잠이 안 올 줄 알았는데, 또, 잠이 왔다. 시차적응이 웬 말인가. 낯선 곳으로의 이동은 이토록 피곤한 것인가 보다!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보니, 세면대가 투명하다. 바닥이 휑한 것이 왠지 낯설다.
'포인트 인테리어인가....' 생각하며, 벽 쪽을 보니 물 한 방울 한 방울이 소중하다는 '물절약 캠페인 문구'가 딱 붙어 있다. 스페인은 비가 적게 오고, 건조한 기후다 보니, 물부족 국가인 것이다. 흠... 물 쓰듯 쓰면 안 될 듯하다.
오늘은 바르셀로나로 떠난다. 간단한 아침 조식을 먹기로 했다. 아들은 어제저녁 우리의 체크인을 확인하고, 자신의 숙소로 돌아갔다. 아침도 본인의 숙소에서 해결하고 오겠다고 했다. 그동안 장 봐 놓은 게 있어서, 여행 가기 전 비워야 한다고.
남편이랑 둘이서 1층 라운지로 내려갔다. 사람은 별로 없는데 좀 시끌벅적하다. 세 명의 아저씨들이 모닝커피를 앞에 놓고, 신나는 수다 삼매경이다.
라운지는 깨끗하고, 나름 독특한 인테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이쯤 되면 자전거는 타는 용도보다는 전시 작품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메뉴의 대부분은 빵과 음료, 치즈, 하몽, 스크램블, 요거트 과일 등이다.
스페인은 빵과, 특히, 요거트, 과일이 맛있는 거 같다. 입맛 없다면서도 요거트를 두 개나 먹는 내 모습이 어이없다. 오렌지 주스도 다 즉석에서 착즙 해서 마실 수 있어 신선했다. 서양배는 완전 내 입맛이었다.
아침을 먹고 올라 와 창문을 여니, 저 멀리 아침해가 밝아 오고 있다.
동터오는 하늘과, 도로 중간에 주차해 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숙소 앞 식자재마트인데, 어제저녁 구경하러 나왔다가, 안내원의 마감 알림에 다시 돌아와야 했다. 어떤 것들을 파는지 궁금하다.
체크아웃즈음 아들이 왔다. 함께 볼트택시를 타고 아토차 역으로 향했다. 남편이 우버앱을 깔아서 갔는데, 아들은 볼트가 편하다고 했다. 이제 이동은 아들 담당이 되었다. 집에서는 항상 어린아이 같기만 했는데, 나오니 또 자기 몫을 한다. 부모랑 여행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바쁜 시간을 내어 준 것도 고맙다. 도란도란 걸어가는 부자를 보며, 한결같기를 바래어 본다
바르셀로나 산츠역은 마드리드 아토차역에서 620~630km 정도 떨어진 거리다. 고속열차로는 2시 30분 정도 소요된다. 서울에서 부산보다도 더 먼 거리다.
처음부터 인천에서 바르셀로나편을 끊었어야 했는데, 당시만 해도 스페인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었다. 그 때문에, 우리는 어젯밤 택시로 왔던 길을 다시 돌아, 아토차역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토차역에서 iryo기차를 타기 위해선, 출발 30여 분전에 도착해서 보안 검색을 마쳐야 한다. 기차역에서 하는 보안 검색이라고 하찮게 여길 일이 아니다. 정말 혼이 쏙 빠지는 순간들이었다. 수많은 여행객들이 S자로 빽빽이 줄 서 있고, 가방, 겉옷, 휴대폰, 시계, 허리 벨트까지 다 풀어야 한다. 한국사람들이 많이 가는 듯, 보안 요원은 우리를 보자, 녹음기 같은 한국말로 "시계, 지갑, 벨트"라고 외친다. 검색대를 통과하고, 짧은 순간, 다시 짐 챙기고, 소지품, 옷 챙기느라, 멘털이 탈탈 털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건 시작일 뿐, 기차역은 당연하고, 박물관, 관광명소등은 대부분 보안 검색이 필수였다.
드디어, 기차를 탔다. 깨끗하고 편안했다. 기차표는 한 달 전에 이리요(iryo) 사이트에서 예매했다. 보통 6개월 전부터 예약화면이 열리니, 자유여행을 준비하시는 분이라면 일찍 하면 할수록 득이다. 출발일이 가까워올수록 더 비싸지니 말이다.
그렇다. 헤세의 말처럼, 나는 각오를 하고, 익숙한 것들을 잠시 떠나 왔다.
창밖을 스치는 풍경부터, 이제껏 보아오던 것과 다르다...
익숙한 풍경,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문화가 없는 낯선 곳!
기차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 역시도, 낯선 이방인들의 언어로 알아들을 수 없다. 우리의 대화를 그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떠나온 것이 서서히 실감 나고 있다.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이 여행을 통해 벗어나고 싶은 속박은 무엇인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산츠역에 도착했다. 고민은 잠시 접어두고, 기차에서 내려 역사를 훑어본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여행객들로 북적북적한 역사는, 사람 구경만 해도 하루종일을 보낼 수 있을 만큼 다양하다. 사람들은 커다란 여행가방에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목적지로 발길을 재촉한다. 나도 그 무리 속에 있다.
출구 가까이 도착했을 즈음,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표지를 찾아갔더니, 자판기에 1유로를 넣어야지만 들어갈 수 있단다. 환전한 금액은 휴대폰 안에만 있을 뿐... 1유로 동전이 없어서, 화장실도 못 가고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이 큰 기차역이 좀 야박하다고 투덜대면서... 우리나라의 깨끗한 화장실 인정이 문득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산츠역밖은 생각보다 소박해 보인다. 볼트로 택시를 검색하니 15분 걸린단다. 그래서, 역 앞에 길게 줄 서 있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맨 앞의 커다란 눈에 상냥한 여자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가격을 물으니 35유로를 내란다. 재빨리, 아들이 "고맙다"는 인사를 마치더니, 그냥 15분 기다리잔다. 8유로면 가는데, 너무 많이 부르는 것 같다고... 뜬금없는 기다림의 시간. 산츠역앞 주변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렇게 높은 건물들이 많지 않아서일까. 이른바, 스페니쉬 선셋이 여기저기 비행운들과 어우러져 멋진 하늘을 만들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5분 거리에 있는 카사바트요 관람을 갔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가우디 건축물 7개 중 하나인 이곳은, 용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한 수호성인 산 조르디의 전설을 모티브로 만든 건축물이다.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고, 큐알을 휴대폰에 저장해 왔다.
작은 건물 한 동이지만, 꼼꼼히 보다 보면 가우디의 작품세계가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일반적인 건축의 직선이나 면들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까사바트요는 모든 선이 곡선이다. 굉장히 힘들고, 어려운 작업이었을 텐데... 드나드는 문, 창문, 의자, 가구는 물론, 심지어 손잡이같이, 작고 세밀한 부분에서 가우디의 신앙과 섬세함, 정체성이 느껴진다.
환기를 담당하는 건물 안 중정이 인상 깊다. 푸른 타일로 위아래 그러데이션을 주어, 빛의 채광량이 고르게 분산되도록 한 구상도 놀랍다. 그리고, 이 공간을 마치 물속처럼 보이도록, 아쿠아 유리 같은 걸로 만들어서, 그 느낌을 구현했다. 건물이 살아 있는 느낌이랄까.. 바닷속이 아닌데, 바닷속 같은 느낌. 가우디의 심오한 작품 세계로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2층에서 내려다본 거리 풍경!
건축 의뢰자였던 바트요도 퇴근하면 이곳에서, 커피잔을 들고 도시 풍경을 내려다보았을까. 멋진 공간이다.
전설을 모티브로, 반짝이는 타일과 유리로 만든 이 아름다운 집은, 100년이란 시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그라시아 거리를 빛내며, 전 세계 여행객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다.
입장 후, 2시간이 빛의 속도로 지나갔다. 밖에 나와서 보니 더욱 아름답게 빛나고 있는 까사바트요.
더 구경하고 싶었지만, 퇴장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고, 배도 고프다.
뭘 먹으러 갈까...
여행 준비를 하면서, 방문지 예약과 예매에 지쳐, 정작 먹을 곳은 하나도 예약을 못했다. 이 낯선 도시에서 뭘 먹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