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년의 염원 '알무데나 대성당'

성벽 속에 숨겨졌던 8세기의 약속, '알무데나 성모상'

by 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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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왕궁 맞은편에는 '알무데나 대성당(Catedral de Santa María la Real de la Almudena)'이 있다.

'알무데나'는 아랍어로 '성벽'이라는 뜻이다. 왕궁만 보고 가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이 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 외부는 마드리드 왕궁과의 조화를 위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내부는 현대의 양식이 많이 가미되어 있다는데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왠지 들어가기 전까지는 왕궁의 느낌과 많이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현재 알무데나 대성당은 마드리드의 종교적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며, 왕궁 공식 행사가 종종 열린다. 2004년에는 국왕인 펠리페 6세의 결혼식이 치러진 곳이기도 하다.



알무데나 대성당 앞 광장에는 큰 고릴라와 팬더곰 대형 인형들이 오가는 관광객들과 어린 여행자들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마드리드 이전의 수도였던 도시 톨레도(Toledo)의 종교적 권위가 워낙 막강했던 탓이었을까. 마드리드는 스페인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오랫동안 그들만의 대성당을 갖지 못했다. 1883년이 되어서야 첫 삽을 떴지만, 스페인 내전과 재정난이라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공사는 멈추기를 반복했다. 결국 19세기 후반에 착공해, 1993년이 되어서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봉헌되었으니, 완공까지 꼬박 110년이 걸린 셈이다.



알무데나 대성당의 봉헌을 기념하는 청동 현판에는 '1993년 6월 1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거룩한 알무데나 성모 대성당을 엄숙히 봉헌하였으며, 당시 마드리드 대주교는 앙헬 수키아 추기경이었고, 스페인 국왕은 후안 카를로스 1세였다'라고 당시의 역사적 순간을 기록하고 있다.



경건한 마음으로 옷매무새를 다듬고, 육중한 문안으로 들어서니 내부는 조용하고 엄숙하지만, 밝고 환하다. 정면 제단에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이고, 그 위로 밝고 높은 천장이 펼쳐져 있다. 보통의 성당들이 성서의 내용을 담은 고전적인 벽화로 가득 차 있다면, 알무데나의 천장은 마치 현대의 미술관 돔 같은 느낌이다.


호세 루이스 갈리시아의 천장화


천장의 기하학적 문양은 전통적인 프레스코 천장화 대신 강렬한 원색과 직선이 교차하는 기하학적 문양이다. 이슬람 문화의 '무데하르' 느낌도 조금 있는 것 같다. 금색선 사이로 보이는 다채로운 문양과 색채들이 밝고 화려하다.


'선한 죽음의 그리스도' - 후안 데 메 작품


성당 이름의 기원이 된 '알무데나 성모상(Virgen de la Almudena)'은 마드리드의 수호성인이다. 전설에 따르면 8세기 이슬람교도의 침공 당시 성벽 속에 숨겨두었던 성모상이 수백 년 뒤 알폰소 6세 때 기적적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화려하고 섬세한 금빛 제단 위에 정성스럽게 안치된 성모상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드리드 시민들이 오랜 세월 이 공간에 쏟은 염원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18개의 배경 장식에는 성경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알무데나 대성당 중심에 모셔진 성모상이 있는 제단에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성모께 기도를 올리려 줄지어 서있다. 그 대열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제단을 꼼꼼히 살펴본다. 신앙과 종교와 예술의 힘은 진정으로 위대하다.



이곳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밝고 환하다. 중간이 없는 과감한 원색들의 조화는 기도의 무게를 깃털처럼 가볍게 하늘까지 이어 줄 듯하다. 무겁고 엄숙한 공간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것 같다. 창을 통과해 바닥에 내려앉은 빛의 프리즘 조각들은 신성하면서도 하늘이 주는 기도에 대한 무언의 응답 같기도 하다.



알무데나 성당의 천장을 받치고 있는 이런 기둥들이 400여 개 정도가 된다고 한다. 언뜻 보면 이해가 안 가는 수치지만, 자세히 보니 기둥 여러 개가 합쳐져 모둠을 이루며 천정을 지지하고 있다. 높은 돌천장과 사이사이 기둥들 속에 예배의 울림도 그윽하게 메아리가 되어 공간을 채울 것만 같다.



여느 대성당보다 내부 분위기가 훨씬 밝고, 현대적인 모습을 한 알무데나 대성당은 고전과 현대가 자연스럽게 잘 연결되어 있다.





대성당 내부 관람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조그마한 정원 같은 곳이 있다. 이곳에 두 팔을 벌려 축복하는 요한 바오로 2세의 기념 동상이 보인다. 1998년에 설치된 스페인 조각가 후안 데 아발로스(Juan de Ávalos)의 작품이다.



누군가 벤치 위에 담요를 뒤집어쓰고 안쓰럽게 누워 있어 다가가 보았다. 노숙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캐나다 출신 조각가 티모시 슈말츠(Timothy Schmalz)의 작품이었다.

얼굴과 손은 담요에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밖으로 나온 발등의 못 자국을 통해 이 노숙자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소외된 이웃 안에 예수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한다. 찬찬히 바라보니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었다. 다가가 그 차디찬 발의 상흔을 쓰담 쓰담했다. 마음이 아리다.



이름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비석도 있고, 수령이 오래된 올리브 나무인지 범상치 않은 연리지(?)라고 해야 할지... 하여튼 그런 나무도 있다.



잠시 정원을 배회하며 휴식한 뒤 성당 밖으로 나왔다. 이제 어디로 방향을 잡을까? 일단 길을 건너가는 걸로... 우리 두 사람은 아침부터 상당히 많이 걸었고, 약간의 시장함도 느꼈다.



길을 건넌 후, 잠시 뒤돌아 본 알무데나 대성당!

건물 위에 우뚝 선 동상들이 마치 대성당을 지키는 수호 전사같다. 잘가라고 또 오라고 손을 흔드는 것 같기도 하다.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자꾸 변신에 변신을 거듭한다. 나도 힘껏 손을 흔들며, 안녕을 고한다.

알무데나 대성당!

신앙과 예술이 혼연일체 된 아름다운 대성당이었다.




다시 마드리드의 거리로 나왔다. 쭉 뻗은 길 끝, 저 멀리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한다. 남편과 나도 그곳을 향해 걸음을 서둘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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