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미겔 시장'의 맛,붉은'마요르 광장'

미식을 맛보고, 역사속 올드 타운을 걷다

by 이팝

알무데나 대성당을 뒤로하고 마요르 거리 끝자락으로 접어드는 순간, 풍경은 바뀌어 육중한 회색 석조 건물 대신 점차 따뜻한 황토색과 파스텔 톤의 벽돌 건물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거리를 지나다 현지인들이 스탠딩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풍경은 마드리드 특유의 여유로운 일상을 보여주는 풍경화 같다.


'La Mayor Cervecería'라는 유명한 맥주집이 1층에 자리 잡고 있고 건물 앞 광장에는 1906년 국왕 알폰소 13세의 결혼식 행렬 도중 발생한 폭탄 테러 희생자들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Monument to the Victims of the Attack against Alfonso XIII' - 오른쪽 동상


이 건물 옆에는 17세기 후반에 지어진 바로크 양식의 '사크라멘토 성당(Iglesia del Sacramento)' 군종 대성당이 있는데, 스페인 국가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사크라멘토 성당(Iglesia del Sacramento) - 스페인 군종 대성당


높지 않은 건물들이 제각각 특색을 뽐내며 자리 잡고 있다. 건물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붉은 벽돌과 석재를 혼합한 외관과 모서리에 세워진 뾰족한 탑이 마드리드 (구) 시청 건물이다. 1644년에 착공하여 1692년에 완공된 바로크 양식의 건물이다. 2007년 시청이 시벨레스 광장의 통신궁전(Palacio de Cibeles)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마드리드 시청사로 사용되었다.


'카사 데 라 비야 (Casa de la Villa, 구 시청사)'와 레판토 해전의 영웅 알바로 데 바잔(Álvaro de Bazán) 제독의 동상


여행에서 '현지의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면 로컬 시장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바르셀로나의 '보케리아 시장(Mercado de La Boqueria)'이 있다면, 마드리드에는 '산미겔 시장(Mercado de San Miguel)'이 있다. 골목의 끝에서 마주하게 되는 산미겔 시장은 내가 생각하는 전통시장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다. 활기찬 재래시장인 줄 알았는데, 스페인의 음식 문화가 집약된 세련된 미식 테마 공간 같았다.



1916년에 세워진 이 시장은 마드리드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철제 구조의 시장으로 마치 온실 속 식물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유리를 얼마나 깨끗하게 닦았는지 높은 층고와 전면 유리창을 통해 쏟아지는 채광은 내부의 활기를 더욱 투명하게 비추고 있었다. 과거에는 동네 주민들의 식재료를 유통하던 곳이었는데, 현재는 전 세계 여행가들이 모여드는 '타파스의 성지'로 탈바꿈했다.


유리로 둘러싸인 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인파와 함께 100년 된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뿜어내는 아우라에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시장 내부는 생각보다 크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맛의 전시는 섬세하고 다양하고 화려했다.



투명한 유리 케이스 너머로 보이는 탐스럽고 다양한 타파스들과 베르무트, 상그리아, 오징어, 새우튀김, 굴, 하몽, 빠에야, 올리브, 장인의 자부심이 깃든 핀초스, 치즈등의 음식들과,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정말 많다.


도착한 시간이 점심시간즈음이어서 그런지 어떤 가게 앞은 그야말로 문전성시였다. 앉을자리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 손에는 와인 잔을 들고, 다른 손에는 '핀초스'를 든 채 사람들 사이를 유영하듯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 서서도 여유 있게 와인잔을 기울이고, 타파스를 먹으며, 소소한 스탠딩 파티를 즐기는 느긋한 모습에 여유와 활력이 넘친다.



산미겔 시장의 가장 매력은 ‘조금씩 다양하게 즐기는 방식’인 것 같다. 사람들은 한 곳에 앉아 조용히 식사를 하기보다는 여러 가게를 돌며 다양한 음식을 맛본다. 신선한 해산물과 감각적으로 플레이팅 된 작은 요리들이 여행자의 눈과 입을 동시에 사로잡는다.




파이와 쿠키 다디단 마카롱까지...



우리도 이것저것 몇 가지의 타파스들을 주문해서 먹어 보았다. 좀 짠맛을 제외하면 대체적으로 맛있는 것 같다.



산미겔 시장은 마요르 광장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어 여행 중간에 잠시 들러 간단한 요기를 하거나, 하루 일정을 마무리하며 타파스 미식투어로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은 곳 같다. 매우 붐비지만 않으면 좋겠지만 미식이 있는 공간이 어찌 한가하기를 바라랴.


장엄한 역사 뒤에 숨겨진 골목길의 소소한 아름다움, 그리고 그 끝에 있는 산미겔 시장에서 맛보는 달콤한 타파스 한 입과 간단한 요기로 허기를 채운 우리는 근처의 마요르 광장으로 향했다.






사방이 거대한 붉은 건물로 둘러싸인 광장, 9개의 아치형 문 중 하나를 통과해 광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17세기에 멈춰버린 듯한 '펠리페 3세'의 기마상과 그를 에워싼 237개의 테라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스페인의 심장이라 불리는 곳, 바로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이다.


'펠리페 3세' 명으로 1616년 이탈리아의 조각가 '잠볼로냐(Giambologna)'가 제작을 시작해 그의 제자 '피에트로 타카(Pietro Tacca)'가 완성했다. 원래는 '카사 데 캄포' 공원에 있었으나, 1848년 '이사벨 2세' 여왕의 지시로 현재의 위치인 마요르 광장 중앙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한때 이곳은 국왕의 혼례식이 열리던 축제의 장이었고, 때로는 투우 경기장이나 종교 재판의 광장이 되기도 했다. 역사의 비극과 희열이 층층이 쌓인 벽돌들은 이제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고 여행객들을 맞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건물의 붉은색과 푸른 하늘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두 개의 뾰족한 첨탑과 건물 외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인상적이다. 현재의 벽화는 1992년에 마드리드의 역사와 관련된 신화 속 인물들을 묘사하여 다시 그려진 것이다.


'카사 데 라 파나 데리아 (Casa de la Panadería)', '제빵소의 집'이라는 뜻으로, 과거 광장 건설 초기에는 마드리드 시의 주요 빵 공급을 담당하던 제빵사 조합의 본부였다고 한다.


마요르 광장에서 구경을 잘하고, 아치문을 나오다 발견한 재미있는 레스토랑 안내판이다.

이 식당의 이름인 '루이스 칸델라스(Luis Candelas, 1804–1837)'는 스페인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의적'이었다고 한다. 매우 신사적이고 잘생긴 외모로도 유명했으며, 마요르 광장의 복잡한 지하 통로와 동굴 같은 공간을 은신처로 사용하며 추적을 피했다고 한다. 그가 처형된 이후, 숨어 지내던 이 공간은 식당으로 개조되어 중세풍의 인테리어와 웨이터들이 당시의 전통 의상을 입고 서빙하는 마드리드의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시간이 좀 넉넉했으면 한 번쯤 들러 식사하고 가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다.



또다시 시작하는 골목길 투어... 아치의 끝에 열리는 하늘이며, 가지런히 튀어나온 발코니들이 매력적이다.



화려한 발코니 조각 장식이 아름다운 숙박시설부터 꽃으로 장식된 길가 노상 카페들도 한참씩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런 곳에서는 걸음을 빨리 걸으면 안 될 것 같다. 천천히 천천히...



창틀마다 걸린 철제 발코니와 작은 화분들이 그려내는 마드리드 정겨운 골목길이다.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인데, 작은 광장과 더불어 역사적인 건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대부분 현대에 지어진 것이 아닌, 17세기에 지어진 유서 깊은 건축물들이다.


스페인 외무부 청사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산타 크루스 광장의 스페인 외무부 청사, 펄럭이는 국기아래의 대천사 미카엘 조각상은 정의를 수호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현재도 외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곳이다.


그 앞의 회전목마가 있어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처럼 어린 꼬마가 즐겁게 타고 있다. 어릴 적 아이들 회전목마 태워주러 다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산타 크루스 교구 성당(Parroquia de Santa Cruz)'




마드리드 올드 타운의 역사적인 산책로 투어를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Alcampo'에 들러 스페인 마트구경도 하며 먹을 것도 조금 샀다.





숙소에 도착해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한 번 해서 널어놓은 후, 발코니창 앞에 앉아 아토차역 근처 퇴근 풍경을 바라다본다. 오늘도 정말 많이 걸었구나.



창 너머로 저녁을 부르는 푸른 어둠이 조용히 내려앉고 있다.

낯선 곳에서의 하루는 늘 긴장의 연속이었지만, 이렇게 가만히 발코니 밖을 내다보며 이름 모를 행인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다보는 시간만큼은 오롯이 평온한 시간이다.


아토차 거리의 저녁 풍경



여행이란 어쩌면 창가에 앉아 타국의 밤이 깊어가는 것을 묵묵히 지켜보는 이 평온의 마음 틈새를 찾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