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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화래진 Feb 07. 2022

나를 고립시키는 일

한겨울쯤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오오, 눈부신 고립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나는 종종 나 이외의 것들을 잊곤 한다. 나를 사회와 단절하고 나만의 우주를 즐긴다. 나를 고립시키는 데에는 다 계기가 있었다. 인간은 항상 다른 인간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나 또한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 좋든 싫든 마주쳐왔다. 근데 나는 사회화가 덜 된 인간인지 기회만 생기면 혼자 있고 싶어 진다. 학교 다닐 때는 방학만 되면 핸드폰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퇴사하고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원에 온 지금은 한층 더 심해졌다. 원래의 나라면 학기 중에 열심히 관계를 맺다가도 방학만 시작하면 핸드폰을 꺼야 하는데 방학 때 조교일을 하다 보니 나만의 세계를 즐기지 못했다. 이럴 거면 왜 대학원생에게 방학을 주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1년 반을 핸드폰을 쥐고 살았더니 이제 꼴도 보기 싫다. 대화의 욕구도 잃었고 남들이 뭐하고 사는지 하나도 안 궁금하다. 그냥 나처럼 바쁘게 잘 지내고 있겠지. 괜히 연락해서 방해되고 싶지도 않고 지금 내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도 않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맘에 내키지 않아도 한 번 더 연락을 했었다. 그렇게 유지한 관계들이 점차 금 가는 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나답게 관계를 유지했어야 했는데 답지 않게 열심히 했더니 나는 나대로 힘들고 상대는 상대대로 답답하고 서운해한다. 죽었냐는 연락을 몇 번 받았다. 나는 사실 보다시피 잘 살아있다. 너무 살아있어서 문제라면 문제일 정도.


세르비아, 드리나 강(Drina River)의 고립된 집 (1968)


 나는 나만의 시간이 너무나도 필요한 사람이다. 나랑 노는 게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나 역시 사람이기에 다 같이 놀 때의 쾌감도 잘 안다. 예전엔 집 근처에 친구들이 살아서 가끔씩 외딴섬에 있는 날 꺼내어주곤 했는데, 지금 다른 지역에 있는 나를 꺼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차피 이제 나갈 생각도 없다. 가끔씩 반가운 사람들이 나를 찾아 깨운다. 그럼 또 마지못해 나가서 신나게 놀다 올 거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나는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하다. 남들과 있으면 즐겁고 그렇지 않으면 의미 없다. 같이 놀면 신이 나지만 편하진 않았다. 편하다고 착각은 했다. 일정 시간 이상 있으면 집에 와서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녹초가 되곤 했다. 그러니까 여행도 쇼핑도 밥도 다 혼자 했다. 이제는 왜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나를 너무 고립시키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차피 약속이 자의던 타의던 잡히니까 괜찮겠지 하며 나를 놓고 있다. 망망대해에 떠다니는 작은 섬처럼 그렇게 큰 세상을 혼자 부유하고 있다. 이렇게 단절되면 지금껏 키워놨던 사회성을 잃고 말 텐데... 노력했던 관계들이 다 멀어지겠지... 나중에 후회하려나... 그때 또 새 친구를 사귀면 되지 않을까... 친구가 필요한가... 지금도 충분히 많은데... 남은 친구들이랑 잘 놀면 되지 않나... 사람은 금방 사귀긴 하는데... 내가 필요하면 어떻게든 하겠지... 할 일이 너무 많다... 일어나면 뭐부터 해야 하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하다가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렇게 그날 할 일을 하면 그날도 나는 남들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거다.


 현재 상황 탓인지 이제 본성이 드러나는 건지 아니면 그 사이쯤인지 잘 모르겠다. 과거 나의 10대 시절처럼 친구에 울고 웃을 때가 지났다는 건 여실히 잘 느꼈다. 20대 초반까지도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힘들어하다가 어느 순간 부질없다고 느꼈을 때, 사람에 대한 모든 기대를 놓았다. 어차피 남이고 필요할 때만 찾는 게 친구인 거 같아서 굳이 노력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체력과 시간이 있을 때가 아니면 나도 누군가가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남들과 보냈던 시간 그대로 나와의 시간이 되어버린 것 같다. 에너지가 딸리는 요즘,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정말이지 큰 각오와 많은 다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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