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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커 Jun 05. 2023

회사 회식 (만취가 기본)

후회 막심 (알레그레토)

 올해 건강검진 결과가 유난하다. 대사증후군을 나타내는 수치들이 위험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 그동안 쌓인 직장 회식의 결과라고 강하게 의심하고 있다. 요 몇 년, 건강검진 결과지 첫 페이지에 ‘추적관찰’이라는 코멘트보다 ‘진료 요망’과 같은 글이 늘어난다.      


어제는 건강검진 ‘소화기 내과 진료 요망’ 진료 의뢰서를 받아 진료받았다. 붐비는 진료실 앞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기다렸다. 혼자 온 사람은 드물었다. 첫 진료에는 간단한 문진과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 등의 뻔한 절차라는 걸 안다. 그래도 불안한 것은 더 이상 젊지 않은 40대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특별한 추가 검사나 주의 사항도 없이 의사는 지켜보자는 이야기로 진료를 끝냈다. 다행이지만 올해는 유난히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30대까지는 건강검진에서 불안한 신호를 보내더라도 내 몸의 상태를 애써 무시하고 살았다. 원인 모를 통증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나는 40대는 ‘건강했던’ 기억으로 버텼다. 문득, 술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붉어지는 내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버텼던 회사 회식이 생각났다. 불행이 닥치면, 불행의 원인을 향해 던지는 방어기제로 ‘회사 회식’을 탓하고 싶다.     



만취가 기본 – 회사 회식     


회사 회식을 즐겼거나, 어쩔 수 없이 참석했더라도 20세기의 선배가 가르쳐준 대결처럼 회식을 계속했다. 나 자신과 대결했고, 술자리의 사람들과 경쟁했다.


- 네가 마시면 나도 마셔!

- 내가 마시면 너도 마셔!

- 아파도 소독이라 생각하고 마셔!

업무처럼 꼬박꼬박 술잔을 비웠다.


‘왜 거절하지 못했을까?’

회사 회식을 개인적인 이유로 거부하는 좀생이가 되기 싫어서였을까? 다들 참석하는 업무에 연장이라고 강조하는 회식에 함께하지 않는 것은 그땐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걱정했었다. 술자리에는 ‘끝까지 남아서’ 선배들 택시 태워 보내고, 편한 사람들끼리 마무리 소주 한잔하는 것이 낭만이었던 밤들이 많았다. 가끔 뇌가 버티지 못해 기억을 끊어버린 밤도 잦았다. 회식은 도시괴담처럼 '회사 생활 잘하는 법’을 만들어 내고, 회식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게 예의가 되며, 다음 날 아침 정시 출근하는 게 훌륭한 태도가 되었다. 



필자의 경험과 과거 상황을 냉소적으로 과장해 재구성해본다.


만취가 기본인 시절의 20세기 올바른 회식 문화 (예고 없는 부서 회식 & ‘결혼기념일’)


퇴근 무렵 부장이 사전 예고 없던 회식을 제안한다. 부서원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약속을 취소하고서라도 상사의 회식 요구에 응해야 했다. 개인 약속은 취소해야 한다. 그런(?) 사소한 이유로 회식 참가 거부는 뒷담화의 대상이 된다. 친구와의 약속, 가족과의 약속도 취소한다. 종종 약간의 ‘생색’을 더하며 취소하기도 한다. 개인의 생활을 희생하며 상사에 대한 로얄티를 표한다. 


-오늘 결혼기념일인데요.... 회식엔 가야죠! 대신 1차만 참석하겠습니다. 하하하

  

술자리가 시작되면, 상사 혹은 선배가 ‘너 결혼기념일이라며 빨리 가야지?’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 자리를 지켜야 하며, ‘너 결혼기념일인데, 이렇게 마셔도 되나?’ 물어볼 정도로 취한다. 예의상 던지는 상사와 선배의 말에 장난기가 잔뜩 묻어 있다. 그럴 땐 난 ‘혼 좀 나겠는데요?’ 하며 가볍게 웃어넘겨야 한다. 1차에서 2차로 움직일 때 유일하게 일찍 갈 수 있으나, 부장이 2차를 제안할 땐 조기 귀가는 허사가 된다.      


부장이 ‘결혼기념일인데, 먼저 가봐야지?’의 말에 여운이 남았다면, ‘그럼, 2차 자리만 잡고 가겠습니다.’라고 응당 함께한다. 혹시 부장이 먼저 가는 상황에는 선배와 동료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집으로 향할 수 있다. 부장이 갔는데, 선배와 동료가 붙잡는다면... 난감한 상황인데, ‘저 정말 죽어요’ 죽는 시늉을 해야만 벗어날 수 있다. 1차에서 2차로 이동하는 중간에 일부 비정규직은 집으로 향하지만, 조직 올가미 속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으로 이끌려 간다. 


2차 자리만 잡겠다던 나는 한참을 부장의 ‘업무’ 관련 이야기를 듣다가 ‘이제 정말 가야 할 것 같은데요?’ 볼멘소리가 나오는 늦은 저녁이 되면, ‘우리도 이제 갈 거야’하며 자리 이탈을 막아버린다. ‘그러면 그때 같이 일어나지요’하는 결론으로 1시간 귀가 불가 상황이 발생한다. 딱 한 잔만 더 먹고 가자’에 3000cc 피처 맥주에 소주 1병을 부어 나눠 마셔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20세기 회식의 기본! 노래방 타임이다.. 2차가 끝날 무렵 슬슬 누군가가 노래방 미끼를 던질 타이밍이다.

(3차 노래방에서 일어나는 '막장’으로 치닫는 회사 회식&노래방 사건/사고는 나중에 해보자.)


노래방이 끝나면 부장은 기분에 만취해 택시를 탄다. 부장이 귀가하면 팀원들은 누구든 집에 갈 수 있는 분위기다.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일부는 먼저 귀가 인사를 한다. 막내는 선배들이 떠나는 택시를 지켜본다. 그리고, 남은 잔당들은 마무리 회식을 위해 어둡고 눅눅한 소파의 맥주 가게나 형광등이 엄청 밝은  해장국집으로 향한다. 마지막 술자리는 보통 회사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회사 소식, 업무 비판, 보고 불만, 임원 뒷담화로 시간이 길게 드러눕는다. 막바지 회식에선 벽에 기대어 자는 동료도 있고, 우는 친구도 있고, 민망할 정도로 목소리 톤이 높아진 선배도 있다. 혀가 꼬여 알아듣지 못하기도 하고, 아무 말이 쏟아지기도 한다. 때론 진심 어린 충고가 오가기도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되었지만, 회식 3~4차에서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점심 먹고, ‘차’ 한잔하면서 나눌 수도 있는 이야기였다. 상대방과 만취하면서 정서적 교감을 느꼈을 뿐, 대화 내용은 흔하고, 흔하다.     

결혼기념일 혹은 가족 행사까지 희생하며 회식에 참석한 이야기는, 결국 가정과 회사 생활을 바꿨다고 합리화하며, 회사에서 '훈장'처럼 여기는 꼴사나운 '회사 충성심 미담'이 된다. 

  

p.s. 그래도 건강 걱정 없는 그때, 다음 날 아침에 먹던 해장라면은 참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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