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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h Kim Oct 23. 2023

행복의 파랑새는 결국 내 집 문 앞에 걸려 있는 것!

샤르댕의 그림을 보며...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이 맛. 그것은 콩브레 시절의 주일날 아침, 내가 레오니 고모의 방으로 아침인사를 하러 갈 때 고모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 꽃을 달인 물에 담근 후 내게 주던 그 마들렌의 작은 조각의 맛이었다. By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중에서
차 마시는 여인, 장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S1.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에는 프루스트의 한 꼭지를 읽는다. 마르셀에게 잃어버린 시간의 문을 열어준 따듯한 차와 어울려진 감미로운 그 맛.


살아가는 즐거움은 굳이 거창한 그 무엇이 될 필요는 없다. 오늘의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면 족하다. 어쩌면 그런 사소하고 작은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굳건히 살게 해 주기도 하니까. '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에 추억이 되살아나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갈 수 있다는 설정은 진부하지만, 꽤 멋지다!


그렇게 시간의 힘을 빌린 여행은 손바닥만 한 지혜를 가진 우리들에게 때로 '삶의 황홀함'을 선사해 준다. 그게 바로 이야기가 주는 매력이 아닐까 싶다. 당신만의 스토리. '현재를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 가'에 대한 질문을 그런 식으로 답 해보는 것도 좋다. 스타벅스에서 호두 당근케이크를 먹으면서...

파이프와 물주전자, 장 바티스트 시메몽 샤르댕 c.1737
파이프와 물주전자, 장 바티스트 시메몽 샤르댕 c.1737, 루브르 박물관

#S2. 18세기 프랑스 회화는 궁정 미술이 지배하던 때였다. 당시 대다수의 화가들은 우아한 정원이나 귀족들의 침실을 주로 그렸다. 파리출신의 화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은 그런 인싸템과는 상관없이 플랑드르와 네덜란드의 풍속화에 관심이 많았다. 시대의 유행과는 다소 동떨어졌지만 소신 있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을 난 항상 존중해 왔다.


그림을 찬찬히 보자. 조촐한 식탁. 일상의 소소한 풍경에서 화가의 시적인 면모를 읽을 수 있다. 평범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사물들을 부드러우면서 절제된 감정으로 훌륭하게 표현했다. 좋은 그림이란 화가가 설정한 장면이 보는 이의 마음속에 아로새겨지도록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래전부터 내가 그의 그림들을 사랑한 이유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사방팔방 미로 같은 길 끝에 샤르댕의 공간이 있다. 루브르의 기나 긴 미술 탐험을 하려면 강체력이 필요하다. 신발은 편하게, 짐은 가볍게. 그렇게 나는 샤르댕의 그림 앞에 한참 서있었다. 내가 굳이 28인치 캐리어를 바리바리 싸들고 다른 나라를 여행한 이유는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였다. 


틸틸과 미틸. 어릴 때 너무나 인상적으로 봤던 파랑새의 마지막 장면. 파랑새를 찾아 집을 나서 긴 여행을 떠난 남매가 그토록 헤매고 찾고 또 찾던 파랑새가 결국엔 자신의 집 새장에 있던 비둘기 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는 너무 허무했던 그 결말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Carpe Diem! 어린시절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삶의 정수같은 엔딩이었던 것이다!  결국 행복의 파랑새는 자신의 집 문 앞에 걸려 있다라는 교훈처럼, 행복의 본질은 결국 내 안에 있다. 행복이란, 즉, 내 매일의 일상 속에, 또 그것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 태도에 달려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주 잘 안다. 꼭 거대한 서사가 아니어도, 뛰어난 성공 스토리가 아니어도, 작지만 진성성이 있는 것들이 결국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니까!


정물은 이제 살아서 생명을 띠게 된다. 정물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당신에게 전할 이야기들, 빛을 발하게 될 영광, 베일이 벗겨질 비밀로 가득하다.. 그것들의 형태는 보는 이의 시선을 자극하는 재치를 띄게 되고 영혼을 흔드는
의미를 내포하게 된다.

긴 잠에서 깨어난 공주처럼 각각의 물체는 새롭게 부여된 생명에 의해 색조를 띠고, 당신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며, 숨을 쉬고 삶을 이어간다.
마르셀 프루스트, 독서에 관하여 중에서
식전의 감사 기도,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S3. 어릴 때는 나도 화가가 되고 싶었다. 미술학원 원탁 위에 널브러진 흔하고 익숙한 물건들. 그런 일상의 사물들을 그리는 걸 특히 좋아했다. 사는 게 바빠 때때로 희미해진 나의 감수성은 샤르댕의 그림을 보면 생생하게 소환되곤 한다.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먹을 때 레오니 고모를 떠올렸듯 말이다. 18세기 화가 샤르댕은 주변의 평범한 사물들을 늘 그렇게 애정이 깃든 눈으로 관찰했다.행복의 파랑새는 바로 네 옆에 있어라고! 그래서일까. 그의 정물화는 우리들의 보통적인 소박한 일상도 곧 장 아름다운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이야기해 주는 거 같다. 화가의 시적인 감성이 긴 잠에서 깨어난 공주처럼, 모노톤의 물체는 어느새 총천연색의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렇게 우리는 숨을 쉬고 삶을 이어간다. 나는 또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샤르댕이 그랬던 것처럼 이 지극히 평범한 일상에 매료되어, 삶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고 싶어 진다. 일요일 아침의 이 작은 여유가 참으로 고맙다. By sar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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