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릴 만큼 들어 익숙하지만 이처럼 친해지기도 힘든 게 있을까 싶다. 실체가 모호하다. 필요성은 잘 알지만 제일 먼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만다.
주위를 둘러보면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를 대상으로 한 '창의'라는 말이 붙은 각종 프로그램이 참 많다. 창의 수학, 창의 발명, 창의 글쓰기, 창의 미술, 창의 큐브 등. 그러나 고학년으로 넘어가는 순간 신기하게도 이런 수업들은 싹 사라지고 교과 위주 학습으로 채워진다. 본격적으로 공부, 즉 문제집과 함께하는 교과 학습 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더 이상 창의성은 필요 없는 것일까?
이게 현실이라며 시험과 점수에 모든 걸 쏟아붓는 게 정말 현실일까?
궁금했다.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상상해 보고 거꾸로 시간을 거슬러와 지금 유년기 시절, 어떤 능력을 길러주고 교육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내린 결론, '창의성'은 미래에 잘 살아가기 위한 핵심 키워드라는 것이다.
창의성은 이제 예술가나 발명가에게만 필요한 특별한 능력이 아니다. 인류 역사상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한 때는 없었다. 매뉴얼 대로 흘러가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고 늘 도전받고 시험에 들게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를 요구받는다. 이제 특수한 몇 명만을 위한 개성 있는 속성이 아닌 모두에게 필요한 소프트 스킬이 바로 창의성인 것이다.
정량적으로 측정되지 않는 이 능력은 안타깝게도 암기나 벼락치기로 높일 수 없다. 그렇기에 유년기의 쌓아온 경험이 더욱 중요하고, 창의성을 발휘했던 경험들이 평생 삶의 질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어떤 학원을 다니거나 프로그램을 수강해서 단기적으로 완성시킬 수 없다. 그렇기에 유년기의 창의적인 생각 스펙트럼을 넓히는 경험은 굉장히 중요하다. 삶에 스며들어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야 한다. 먼 훗날 큰 자산으로 톡톡히 한몫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창의성을 키우기 위해서 가정에서, 부모가, 어떤 환경을 세팅해 주어야 할까?
지금부터라도 이 질문을 가슴에 새기고 나만의 비법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딱 떨어지는 방법은 없다. 아이의 성향, 기질, 가정환경, 부모의 교육관, 관심사 등 개별적 상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아이를 위한 환경 세팅에는 부모도 공부가 반드시 필요하다. 남들 따라가는 것이 아닌 맞춤형 교육 환경을 고민해야 한다.
나 역시 늘 최적의 환경 세팅을 위해 고민한다.
실패도 많고 그 와중 간간이 성공도 한다. 그렇게 삐거덕대며 하나씩 맞춰가고 있다.
그중 우리 집 아이들에게 먹혀든 방법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꾸준하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 집 문화에 뿌리내린 몇 가지 환경 세팅이 있다. 거창하지 않다. 아마 너무나도 간단해서 마음만 먹으면 지금부터라도 당장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상황에 맞게 시도해 보며 조금씩 변주해 나가면 좋을 방법이라 생각된다.
먼저, '질문'이다.
질문은 나의 교육관 깊이 중요하게 차지하고 있어서 수업 시에도 발문 하나에 신경을 많이 쓰는 타입이다. 질문 하나가 새로운 세계로 데려다주기도 하고 잠들어 있던 뇌의 한 부분을 자극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일상에서의 아이들 가정교육에도 녹여 내려한다.
질문은 창의성의 씨앗이다.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각을 열어두는 것이 중요한데 그 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서는 두 가지의 질문 열쇠를 모두 사용한다. 하나는 아이들질문이고 또 하나는 엄마의 질문이다. 양쪽에서 자유자재로 주고받으며 생각의 문을 계속 열어 놓는다.
아이들의 타고난 본성은 궁금증이 많은 상태이다. 끊임없이 묻고 또 묻는다. 가끔씩은 질문 폭격에 인내심이 폭발하는 경우도 생기지만 말이다. 그만큼 아이들은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나도 많다.
나는 그 질문들을 소중히 다루려고 싶다. 흘려듣지 않고 담아 두려 한다. 툭 내뱉은 말속에서 아이의 관심사는 물론,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무렵부터, 틈틈이 아이 질문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메모장에 저장해 놓는다. 기록이 쌓이다 보면 자주 하는 질문 유형과 관심 분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쓰는 어휘와 생각의 구조를 파악해 볼 수도 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아이가 빛, 색깔, 시간, 존재론적 고찰 등에 깊이 있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최근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지도 유추가 가능해서 비슷한 시리즈로 독서 활동을 자연스레 확장해 주기도 편리하다.
첫째 아이가 곧 5학년을 앞두고 있는데 질문의 형태가 변화하는 것도 느껴진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어나지 않을 법한 상상의 질문, 어른 입장에서는 귀엽기도 하고 엉뚱하기도 한 질문들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질문, 원리가 궁금하고 실제적인 해결 방법이 궁금한 경우가 훨씬 많아지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의 질문을 경청하고 생각의 흐름이 이어나갈 수 있는 적절한 리액션을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이 질문할 때 엄마로서 내가 할 일은 질문이 마음껏 표출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귀 기울여 들어주고 적절한 반응을 해주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 말로만 들으면 굉장히 쉬울 것 같지만 막상 일회성이 아니라 매번 그렇게 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든지 바쁘게 나가봐야 한다든지 아이들 말에만 모든 초점을 맞춰 반응해 줄 수 없는 상황이 즐비하게 일어나곤 한다. 그럴 때 건성으로 답하기 딱 좋다. "인터넷에 찾아봐" 같은 말도 매우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이런 경험의 축적은 아이와의 심리적 거리를 멀어지게 할 뿐이다.
당장 오랜 시간 얘기를 나눌 수 없어도 어떻게 그런 질문을 생각하게 되었는지, 엄마도 너무 궁금한 부분이었다든지 꼭 피드백을 해주려 한다. 처음엔 모든 것을 의식해야 가능했지만 하다 보면 습관이 되어 아이 생각을 존중해 주는 피드백이 자연스레 나오게 되었다. 그러니 당장 나와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와도 아이는 섭섭해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다. 기억해 두었다가 먼저 "00아, 아까 말한 것 같이 찾아볼까?"라고 해주면 아이는 엄마가 내 말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있구나 느끼고 아이와 더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릴 적 왜 사람 얼굴은 다르게 생겼는지, 우주는 끝이 있는지 없는지 부모님께 질문했던 장면이 기억난다. 아는 것은 친절히 답해주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모른다"라는 대답이 많아진 기억이 있다.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정말 난해한 질문들이었을 거다. 돌아오는 반응은 뻔하니, 부모님을 통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조금씩 느꼈던 것 같다. 점차 질문하지 않게 되었다. 그때 당시 부모님은 '답'을 모르니 그냥 모른다고 하셨을 텐데, 나는 그때의 아쉬움이 커서 아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몰라도 같이 고민해 본다.
부모가 정답을 제시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는 부모가 답을 모른다 해서 절대로 실망하지 않는다. 함께 고민해 보고 방법을 찾아보고,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적절한 디딤돌을 놓아주면 된다. 이때 정말 유용한 것이 '엄마의 질문'인 것이다.
"넌 어떻게 생각해?" 하나면 된다.
아이가 궁금해서 꺼낸 말을 적절히 받아 나의 질문으로 포장해서 다시 아이에게 토스해 넘겨주는 거다. 좀 치사한 방법같이 보이지만 의외로 잘 먹힌다.
몰라서 물어본 건데 다시 물어보면 어떡하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수년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써먹었던 방법이기도 하고, 의외로 기가 막힌 창의적인 대답이 많이 나온다. 아이들은 척하면 척하고 내놓는 답만을 원하는 게 아니다. 하나씩 매듭을 풀어가면서 다양한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만으로도 생각의 영역은 무한하게 넓어질 수 있다.
"오 좋은 생각인데!" , "그런 생각도 할 수 있구나!"와 같은 적절한 추임새와 함께 다시 넘겨주는 엄마의 질문은 아이들의 아이디어가 뻗어나갈 수 있게 해주는 다리 역할을 해준다. 그 발판을 적절히 대주는 작은 노력들이 아이의 호기심 불꽃을 오래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창의성을 높이는 것과 동시에 학습적인 부분도 등한시할 수 없다. 배움은 빠를 필요는 없지만 발달 시기에 맞는 교과 교육도 필수이다. 이 과정에서 문제집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데 이왕이면 아이들이 너무 이른 시기 객관식 유형에 노출되는 것보다는 서술형 문제로 생각을 펼칠 수 있게 세팅한다. 서점에서 여러 문제집을 비교해 보고 선택하면 된다.
다섯 개의 보기 중에 고르는 학습에 오래 노출된 아이들은 확실히 생각하는 힘이 약하다. 보기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그러나 앞으로의 우리 삶은 점점 더 보기가 없어지는 형태로 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해답이 가능한 문제를 다루는 것에 익숙해지는 것이 좋다. 생각의 흐름을 나만의 언어로 정리하여 표현하는 것도 그냥 한순간에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앞으로 자신의 생각과 논리를 나만의 언어, 창작물로 표현할 일이 점점 더 많아진다. 이것은 단기 속성으로 해낼 수 없다. 그렇기에 어린 시절부터 틀 안에서 무언가를 고르는 데 익숙해지기보다는 나만의 그릇에 내 아이디어를 담는 연습을 하는 것이 백 배 천 배 유용할 것이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나의 생각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노하우와 도구들, 논리 구조를 자연스레 알게 된다. 어릴 때부터 자신에게 맞는 표현법을 잘 찾아 놓은 아이는 창의적인 생각도 거리낌 없이 농축시켜 담아낼 수 있다.
집은 아이의 창의성을 길러줄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특별한 때나 도구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나는 아이의 질문을 경청하고, 반대로 아이에게 질문하고, 서술형 학습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보내며 매일 생각 연결고리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창의성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작은 노력과 변화로 얼마든지 키워나갈 수 있다.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 최고 가치 있는 능력을 쥐여주는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가정에서의 작은 변화로 아이들의 생각이 무한히 뻗어가는 것을 함께 즐기는 것은 참으로 흐뭇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