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기까지 엉덩이 한 번 맘 편히 붙여볼 수 없을 정도로 바쁘게 지냈습니다.
우당탕탕, 시끌벅적 매일 정신없는 와중에 아이들은 어느새 초등학교 3학년과 1학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와있더군요. 언제 이렇게 컸나요? 벌써 아쉬움이 한가득입니다.
여유가 없으니 들리지 않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늘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었고, 항상 아이들을 위한다고 생각했는데 기분에 따라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는 저의 모습이 보이더군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죠.
충격을 받은 이후로 요즘에는 스스로 꽉 조였던 마음을 조금 느슨하게 풀었습니다.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려 하지 않아요. 우선순위를 매겨 하루를 심플하게 정리하면서 마음에 빈 공간이 생기는 마법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공간에 아이들의 반짝거리는 소소한 이야기가 들어오더라고요. 덕분에 하루가 따뜻하고 빛나는 순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하였고, 아이들의 말속에서 작은 우주를 경험하는 중입니다.
별 것 아닌 이야기인데 어느 날 문득 곱씹어보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말이 있어요. 아이가 휘갈긴 짧은 한 줄의 글귀로 하루종일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도 합니다. 툭 내뱉은 아이의 말 한마디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고, 콘크리트 같던 생각의 벽이 무너지기도 하지요. 심지어는 몇 달이 지난 후에 뜬금없이 생각나 머릿속을 휘저으며 새로운 상상들이 마구 뻗어나가게 하는 말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작은 이야깃거리들을 그냥 흘려보낼 것이 아니라 기록으로 남겨 우리들의 이야기 보물창고로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이런 반짝이는 속삭임을 지나치지 않고 바지런히 모아둔다면, 훗날 혹은 가까운 미래에 또 다른 이야기로 뻗어나가지 않을까요? 숙성 창고에서 잘 발효된 치즈처럼 무르익은 생각들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아주 소소하지만 반짝이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여기에 모아보려 합니다.
제 필명 에메르트리의 에메르는 창발성을 뜻하는 영어 단어에서 온 것입니다.
창발성이란, 개별적으로 있을 때에는 제한된 기능만 하던 것들이 함께 시스템을 이루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할 수 있다는 뜻을 가져요.
저는 함께의 힘을 믿는 엄마이자 과학교사로서, 생각은 공유할수록 더욱 빛을 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상 속의 작은 이야기들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잊고 있었던 기억을 소환할 수도 있겠지요. 이런 다양한 생각이 손을 잡고 연결되면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풍족한 아이디어가 가득하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이들의 꿈 수집가가 되어 깨끗하고 투명한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모아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림을 그려보려 합니다. 알록달록 무지개 색의 속삭임이 하모니를 이루며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 퍼질지도 몰라요. 하늘에 떠다니며 정처 없이 떠도는 말들을 가지런히 담아 소중히 간직해보려 합니다. 어린 숨결이 먼 훗날 솜사탕처럼 기분 좋은 생각들로 피어오를지도 모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