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따라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고 싶었습니다. 막 샤워를 끝낸 범이의 얼굴을 보송한 수건으로 눈, 코, 입 구석구석 닦아주고 있었어요. 범이는 가만 서서 기분 좋은 웃음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러다 눈앞에서 수건이 왔다 갔다 하는 틈 사이로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 아니겠어요. 저는 얼굴에 김가루라도 묻어 있나 싶었지요.
엄마 얼굴에 뭐가 묻었냐고 물어보려는 찰나 범이가 이런 말을 했어요.
"엄마, 나이 들면 주름살이 왜 많아지는 거야?"
"음... 왜 그렇지?"
순간 당황했어요. 아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줘야 해서가 아니라 '내 얼굴에 주름이 많나? 그간 너무 관리를 소홀히 했나? 이제 나도 나이를 못 속이나 봐.' 같은 생각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가서요.
거울 속 내 모습을 살피지 못한 지 한참 된 것 같은 나에게 그 한마디는 아차 싶은 순간이었죠. '이제는 피부 관리에 좀 더 신경을 써야겠어, 안되겠어, 팩을 사서 매일 해야지'와 같은 다짐을 하게 했어요.
예고 없이 들어온 씁쓸한 기분은 잠시 접어두고 머리를 털어주며 대화로 돌아왔습니다.
범이는 그저 아주 순수한 의도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일 테니까요.
생각해 보니 막상 대답하기 쉬운 물음은 아니었어요.
나이 들면 왜 주름살이 많아지는지 궁금해하는 범이에게 아이 수준에서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용이 머릿속에 정리도 되지 않고요.
그래서 저는 아이에게 다시 질문했어요.
"범아, 주름살이 뭘까?"라고요.
뜬금없이 이렇게 직업병(?)이 발동되나 봅니다. 학교에서 수업할 때, 특히 과학은 개념을 다루는 과목이라 용어 정리할 일이 많아요. 그래서 단어의 정의부터 살피는 습관이 있는데 아이에게도 주름살을 어떻게 정의하면 좋을지 물음을 던진 것이지요.
아이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고 저도 빠르게 주름이 생기는 이유에 대해 머리를 굴려보기 시작했습니다. '세포의 노화... 콜라겐과 엘라스틴... 범이가 이해하기 쉽게 어떻게 설명해 주면 좋을까?' 열심히 짱구를 굴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범이가 외쳤어요.
"엄마! 알았다! 주름살은 나이테 아니야?"라고요.
"왜 나무도 일 년에 하나씩 나이테가 생기잖아. 그게 나이를 먹는다는 증거지. 사람도 어렸을 때는 없다가 점점 많아지니까 나이테 같은 거 아니야?"
범이가 은유적 표현을 의도한 건지 아니면 정말 나이테가 생기는 원리처럼 주름살이 생긴다고 생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외의 대답이었어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정말 그래요. 주름살은 나이테가 맞아요.
"그렇지. 나이가 들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나이테지. 엄마도 예전엔 없었어~"
이마 가운데 살짝 패인 주름살에는 제 지난 고민과 물음이 가득하고요, 눈 옆의 작은 주름살에는 아이와 함께 보낸 행복한 기억이 들어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