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과 금은보화

결혼 19년 차 일기

by 일로

고스톱과 금은보화 2019년 7월 23일


오늘도 오전에 여은이를 학교에 내려주고 운동을 하고 집으로 와서 점심을 먹고 규은이를 학원에 데려다줬다. 아내는 오전 운동이 피곤했던지 낮잠을 자겠다고 하여, 나는 마루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오후 늦게 윗집 공사 소음으로 인해 깬 아내와 침대에 누워 TV를 보다가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두 시간 넘게 쳤는데 모두 지는 바람에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5시가 넘어 아이들이 학원과 독서실에서 돌아와 피자를 시켜 먹었다. 다시 여은이를 독서실에 바래다주고 아내와 두 번째 고스톱을 치기 시작했다.

겨우 이기고 기뻐하는데 아내가 한 게임을 더 하자고 했다. 나는 싫다고 하다가 그럼 내가 이기면 완전히 끝나는 거고, 당신이 이기면 결승 한게임을 더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내가 이기자 완전히 끝났다면서 게임 전 내가 한 말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늘 일 대 일이었으니 이 게임이 결승이라는 것이다.


나는 억울해하면서 아내가 또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하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못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정사정 안 봐주는 아내에게 화가 나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오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아내가 계속 흥분하지 말고 조용히 말하라며 진정시켰기에 망정이지, 아내도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면 큰 싸움이 날 뻔한 상황이었다. 아내가 그럼 자신에게 30점을 주고 100점 내기 결승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나는 그것도 안 된다며 20점만 주겠다고 하면서 또 한 번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20점만 주고 게임을 다시 시작하는데 아내가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무슨 금은보화를 사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까짓 10점 더 달라고 하는데..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니냐"라고 툭 던지는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백수 남편하고 이렇게 재밌게 놀아주고 있는데 무슨 큰 일 난 사람처럼 핏대를 올리고 있는 나 자신이 한심해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방금 전까지도 잡아먹을 듯이 설전을 벌이다가, 갑자기 미정이 한마디에 둘 다 배꼽을 잡고 웃느라 한참 동안 고스톱을 시작할 수 없었다.


그렇게 언제 싸웠냐는 듯이 즐겁게 고스톱을 치고 결국 승리를 거머쥐며 기뻐했다. 자정쯤 돌아온 아이들과 새벽 1시까지 TV를 보다 잠이 들고 다음 날 아침 승리를 만끽했다. 이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면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더 욕망하며 불안해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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