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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 Dec 27. 2023

감정의 챕터, 마무리 하기


 저는 생각에 꼬리를 무는 작업을 좋아해요. 대상은 물건일 때도 있고 단어일 때도 있는데요.

지난해부터 올해 가을까지는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해서 사랑을 느끼는 지점, 사랑이 눈으로 보이는 순간들, 사랑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 등 이것저것 생각하며 한 뼘을 남겨두고 2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제 안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정립되었어요. 이건 언젠가 길게 풀어보겠습니다.

 

이번 겨울부터 시작된 생각은 바로 ‘외로움’입니다.

제 취미 중 하나가 콘서트 가기입니다. 좋아하는 가수의 단독 공연을 가기도 하고 여러 가수가 나오는 페스티벌 형식의 공연도 가요. 가수가 좋아서도 있지만 현장의 분위기가 좋아서 가는 것도 있습니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크게 울리는 음악소리, 이 무대가 마지막인 것처럼 모든 걸 태우는 가수, 그에 응하는 함성을 보내는 관객 그리고 그것들 사이에 서 있는 제 자신. 정말이지 한 번 맛보면 헤어 나올 수 없어요. 좋아하는 게 나오니까 말이 길어지네요. 오늘 주제는 이게 아닌데 말이에요.

 

무튼 그래서 이 단어를 왜 꺼냈냐면요. 여러 가수들의 공연을 가보면 그들이 말하는 소감에 공통된 점들이 몇 개 있어요. 우선 이 무대를 준비하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말하고요. 그다음엔 찾아준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이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께도 감사의 말을 전하고요. 그다음은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을 합니다. 대부분 직접 노래를 만드는 가수들이니 작업 과정 혹은 이 직업을 대하는 본인들의 속 얘기를 해요. 영원하지 않을 영감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말하기도 하고 숱하게 보냈을 혼자만의 고독하고 외로운 감정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는데요. 이 장면에선 저도 눈물이 나요. 혼자 보냈을 쓸쓸한 시간이 가늠이 돼서도 그렇고 그 무거운 마음을 전부 이겨내고 이 무대에 선 것이 대견하기도 해서요. 모두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창작은 외로움을 동반하는 작업이잖아요. 저도 창작이 필요한  일을 하면서 느끼는 거지만 행복할 때 나오는 작업물과 별개로 내면 깊숙이 깜깜한 바다로 내려갔을 때만 나오는 것들이 있어요. 뭐가 더 낫다고 할 순 없겠지만 아무래도 수심이 깊은 만큼 결과물 또한 깊어지긴 해요.

 

저 같은 경우는 작년 한 해가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처음 느껴보는 것들이 참 많았어요. 가장 겁이 났던 건 처음으로 ‘우울’을 느껴봤을 때입니다. 외로움을 동반하는 감정 중 하나죠. 물론 살면서 우울함을 느껴본 적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가볍게 넘길 수 있는 정도였거든요. 크기가 작을 땐 잠시 노래 한 곡만 들어도 사라질 수 있었고요. 그중 좀 크다 싶어도 일주일도 안 돼서 이겨낼 수 있었어요. 저에게 우울은 챕터의 시작과 끝이 분명한 장르였거든요. 그러나 그때 마주했던 우울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 같았어요. 그곳에 가면 항상 우울이 절 기다려요. 안 되겠다 싶어서 용기를 내 바깥으로 나가 일상을 보내고 돌아오면 어디 가지 않고 거기 기다리고 있어요. 불청객도 이런 불청객이 없죠. 그 불청객이 집에 있는 거예요. 집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가고 절 기다리는데 이런 적이 처음이라 당황스럽고 무섭더라고요. 하지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이럴 때 창작물이 참 잘 나와요. 아이러니하죠.

 

근데 지금의 제가 그 챕터를 다시 열어보면요. 제 스스로가 안쓰러워요. 얼마나 외로웠을까 짠해요. 물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조금 더 단단한 제가 될 수 있었지만요. 아마 가수의 소감을 들을 때면 그때의 제가 떠올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음악 작업으로 챕터를 마무리 짓고 그때의 전 기록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었어요.

 

스스로에게 다시 일어날 힘을 주는 게 어떤 건지 아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누구에게나 그런 존재가 하나씩은 있기 마련입니다. 없다고 해도 조급해할 필요 없어요. 묵묵히 일상을 보내다 보면 깨닫게 되는 날이 올 거예요. 이 글을 읽는 분에게도 외로움과 우울을 달랠 수 있는 나만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감정의 챕터를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생기길 바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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