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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온 May 18. 2024

임산부에게 마지막 달이란

행복이를 기다리며

  인생에 마지막이라는 이름이 붙는 것들. 마지막 등교, 마지막 시험, 마지막 출근, 마지막 여행, 마지막 식사, 마지막 이별.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붙으면 왠지 비장하기도 하고, 쓸쓸한 느낌도 든다.

  이제 막달이 되었다.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와 통화를 하다가 나온 막달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게 들렸다. 마지막 달. 행복이를 뱃속에 품고 있는 마지막 달이다.
  아가를 품고 있는 마지막 달이라는 단어는 앞에서 떠올려본 것들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사람에 따라 비장할 수도 있지만(?) 쓸쓸하지는 않다.


  담당 의사 선생님이나 가족들, 주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막달의 의미는 언제든지 아기가 나와도 문제 될 것 없는 때를 뜻하는 것 같다. 37주가 넘으면 아기는 모든 장기가 자란 상태라 미숙아라는 이름표를 달지 않아도 되고, 세상에 나와 스스로 폐호흡을 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마지막 달이라는 단어는 안도감과 감사함이다. 이제까지 잘 왔다는 안도감, 그리고 이제까지 건강하게 있어주어 고맙고 감사한 마음.

  어느 임산부에게나 그렇겠지만 나에게 마지막 달의 의미는 특히 소중하다. 초기 계류유산을 겪어 보니 아가를 품는다는 건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며, 쉬운 일도 아니라는 걸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더구나 유산과 함께 자궁내막증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자궁내막증은 보통 불임과 난임이라는 꼬리표가 함께 따라다니는 끈질긴 질병이라 다시 임신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마음을 많이 졸였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행복이가 찾아와 주었지만 임신 기간 동안에는 혹시나 다시 유산되지 않을까 마음 한편이 불안했다. 안정기를 훌쩍 지난 29주에도 자궁내막증 혹이 말썽을 일으켜 아가가 조산되거나 잘못될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매체를 통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임신의 이미지는 "욱" 하는 입덧으로 시작해서 "악" 하는 비명과 함께 출산으로 끝나는, 별 탈 없이 순탄하게 흘러가는 과정인 줄 알았는데 웬걸 장애물 달리기 같은 것이었다. 장애물 하나를 넘으면 끝나는 줄 알았는데 계속 계속 나온다. 그런데 그 지난한 과정을 어찌어찌 지나 마지막 달이라니.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쓸쓸하기는커녕 반갑고 고맙다.

  37주에 접어드니 확실히 몸이 이전과는 다르다. 가진통이라고 하는 불규칙한 자궁수축이 있고, 가끔은 깜짝 놀랄 정도로 치골이 찌릿찌릿하기도 하다. 아가가 엄마 자궁 입구에 자기 머리를 갖다 대어 보면서 세상 밖으로 나올 연습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증이긴 하지만 기특하고 사랑스러운 통증이다.
  본격적인 통증을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 거겠지만, 아직은 출산의 고통에 대해 두렵거나 무서운 마음이 크지는 않다. 내가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아픔이겠지만 질병으로 아픈 것이 아니고, 나 못지않게 (실제로 아기는 출산 과정에서 1분에 한 번씩 찾아오는 질식 상황을 견뎌낸다고 한다) 고통을 온몸으로 겪으면서 엄마와 아빠를 만나는 여정을 견뎌내는 아기와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단단해진다.
  엄마가 아프다고 용을 쓰거나 울거나 소리를 지르면 아기에게는 충분한 산소가 가지 않아서 더 힘들어한다고 한다. 파도처럼 통증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쉽지 않겠지만 담대하게 몸의 힘을 풀어보려 노력은 해봐야지. 이제 엄마니까. 좁은 산도에서 힘든 과정을 기꺼이 이겨내고 있을 아기와 함께니까 말이다.

  아가와 뱃속에서의 마지막, 세상에서의 처음을 가득 찬 마음으로 맞이하고 싶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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