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맞는 걸까?
오랜만에 글을 쓴다. 이전 글이 4월 21일 발행이니, 거의 2달쯤 되었다. 2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남편과 내가 자란 곳은 부산이다. 시의 슬로건이 Dynamic Busan 인 곳. 슬로건 대로 역동적이긴 하다. 해안선 따라 해수욕장이 즐비하고, 이런저런 축제들이 열린다. 여름이면 전국에서 바다를 찾는 사람들이 몰려온다. 부산하면 떠오르는 것들, 넘실대는 파도와 펄떡이는 활어들, 해운대의 화려한 야경과 밤거리에 어울리는 술집들. 그리고 부산에 살아본 사람이라면 떠올릴 만한 것들, 한국전쟁 때 몰려온 피난민들을 꾹꾹 눌러 담듯 산 중턱까지 들어찬 하꼬방(판잣집)들, 그 사연 많은 집들을 둘러둘러 만들어진 복잡한 길들, 그 모든 역사를 깡그리 들어내고 여기저기 하나같이 비슷한 모습으로 들어서는 아파트들, 그리고 그 아파트들이 만들어 내는 단절. 오랜 시간 이곳에 쌓인 역사를 다듬기보다 들어내고, Dynamic 한 Busan이 되기 위해 밖에서 좋아 보이는 걸 가져와 이것이 우리의 역동성이라는 듯 드러내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에게 부산은 남 주긴 아깝고 내가 갖자니 꼭 마음에 들지는 않은, 그런 곳이다.
그래서 이곳을 떠나보고 싶었다. 이 역동적인 도시는 우리에게 맞는 옷이 아닌 것 같았다. 10년 전 대학을 핑계 삼아 떠나고자 했던, 그러나 떠나지 못했던 이 도시를 지금에서야 떠나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마침 나는 휴직 중이고, 남편은 이직을 해야 하며, 아이는 아직 기관에 가기 전이니 떠난다면 지금이 적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아파트를 떠나 새로운 주거형태인 주택에 살아보겠다 말을 하면서도 관성의 법칙처럼 부산의 주택들을 찾아보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우리가 가진 예산으로는 부산에 괜찮은 주택을 살 수 없었다. 예산에 들어오는 집이면, 하나같이 뭔가 이유가 있었다. 덕분에 주택에서 살겠다면, 더구나 부산에 남겠다면, 여기서는 답이 없겠구나 알게 되었다. 그리고는 우리 세 가족의 삶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보이지 않는 안갯속에 남아 근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을 보내었다. 오랜만에 글을 쓰려고 앉게 된 건 마음이 동하는 곳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맞는 걸까 의심스럽다.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남편과 내 마음속에 일렁이는 도시는 부여이다. 백제문화권에 가보고 싶다는 남편의 의견을 따라 공주에 가게 되었다가, 여행의 마무리쯤 얼떨결에 부여에 가게 되었다. 700년 백제의 역사에서 120년간 마지막 수도로서 역할을 다한 곳. 한 나라의 불꽃이 타올랐다 조용히 식어간 쓸쓸함이 남은 도시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백제인의 여유로움과 개개인들의 자치적인 힘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5만 9천 명이 안 되는 작은 인구의 도시이다 보니 모든 관공서나 시설이 읍내에 도보권으로 모여있는 것도 좋았다. 부여에선 백마강이라고 부르는 금강이 폭 감싼 동네에는 궁남지와 부소산성, 정림사지가 모여있다. 부소산성 안의 백제연못에 소박하게 핀 수련에서는 '검이불루 화이불치(검소하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나 사치스럽지 않다)'한 백제의 멋이 느껴졌다. 국립박물관에는 백제가 꽃피운 문화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있다. 백마강 너머 규암마을에는 부여가 좋아서 터를 잡은 외지인들도 있었다. 이곳에 연고는 없지만 부여가 좋아서 터를 잡고 카페, 책방, 공방을 차리고 일궈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연고 없는데도 부여가 좋아서 터를 잡게 만드는 이곳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경험해보고 싶어졌다.
남편도 나도 무계획형 인간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철저히 계획형 인간인 축에 속한다. 그런 우리가 한 번 여행으로 다녀온 곳에, 우리의 느낌을 믿고 무작정 떠나도 될까. 의심스럽고 두렵고 불안하다. 더구나 우리 둘만 건사하면 될 것이 아니라 우리만 바라보는 아이가 있다. 그곳에서 잘 살 수 있을까, 잘 살기는 고사하고 별 탈 없이 살 수 있을까. 부여군 유일한 소아과가 작년 말 폐원하고 부여군의 고초 끝에 건양대 부여병원에 소아과나 올해 신설되었다고 한다. 과거 이력을 살펴보니 건양대 부여병원 의사 수급 문제로 소아과가 있었다 없었다 했다고 한다. 인구 5만 9천의 소멸위기인 지역으로 떠나도 될까.
일단 이 모든 게 김칫국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일자리를 알아보던 남편은, 여러 통의 거절 전화를 겪어내고 한 곳의 면접 자리를 얻었다. 부여로 인연이 닿을지는 두고 봐야 할 문제이다. 우리가 살고 싶다 해도 부여가 안 받아준다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그리고 한 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삶에서 살아보고 싶은 곳을 만나, 마침 그곳에서 살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 말이다. 모든 걸 흘러가는 파도에 맡기련다. 나의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도 파도에 맡긴다. 그리고 이번만은 흘러가는 대로 살아보겠다고 읊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