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주택 살아보자. 지금!

우리를 꽃피울 집은 어디에

by 예지

30년을 살면서 줄곧 아파트에 살았다. 결혼을 앞두고 이혼이나 사별을 하지 않는 한 앞으로 혼자 살 일은 없을 것 같아 빌라 원룸에 따로 나와 살았던 적은 있다. 산 아래 있었던 원룸은 여름에 유독 습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잊을만하면 도마뱀이 출몰하는 바람에 기겁을 하고 본가로 돌아가곤 했다. 그래서 월세만 꼬박꼬박 내고 절반은 본가인 아파트에 와서 살았더랬다. 그러니 내 인생 대부분은 아파트에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주택이냐, 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남편은 결혼 전부터 주택에 살고 싶다고 얘기해 왔다. 남편은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다. 가구도 만들고 싶고, 울창한 나무도 키우고 싶고, 첼로도 클라리넷도 색소폰도 연주하고 싶어 한다. 남편은 나름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했다. 구축 아파트 베란다에서 손으로 톱질해서 의자를 비롯한 이것저것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남동향집에서 1년 넘게 말라깽이 올리브나무를 키우고 있으며, 오피스텔의 좁은 드레스룸에 콕 들어가서 약음기를 끼운 첼로를 조심조심 연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였다.


나는 사회초년생 때 부동산 투자를 배워보겠답시고 이 강의 저 강의를 몰려다니며 듣고 다녔다. 그때 내린 결론은 재개발이 아니면 주택 같은 건 사면 안된다는 것. 나에게 집은 '돈'이었다. 투자가 아닌 우리의 필요로 주택을 매매해서 거주한다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 이런 생각이 신혼여행지였던 그리스에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그리스 시내의 작은 4층 건물이었는데, 멀리 파르테논 신전이 보였다. 소담한 옥상 곳곳에 올리브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새가 놀러 왔다 가기도 했다. 그곳에서 조식도 먹고, 노을도 보고,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도 했다. 그리스 여행 내내 그곳에서 보내다가 문득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도 나중에 주택 살자."


그 나중은 원래 지금으로부터 적어도 1년~3년 뒤였다. 부동산에 묶인 돈이 돌아오는 시기를 기다려 그동안 얌전히 아파트 전셋집을 전전하며 살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남편의 퇴사와 함께 떠난 여행 후에 당장 지금으로 훅 당겨져 온 것이다. 돈은 부족하지만, 그리고 손해는 좀 나겠지만, 지금 우리 주택에 살아보자고.


생각해 보면 갑작스러운 게 아니라 여태껏 일렁이던 생각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뿐일지도 모른다. 딸을 낳고 나서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딸과 자연스럽게 만나기 위해서 자연주의 출산을 공부했고, 가족의 건강을 위해 채식을 시작했다. 딸이 마음이 튼튼한 아이로 자라게 하고 싶어서 3년간 가정보육을 하기로 남편과 의견을 모았다. 딸이 좀 더 자라면 함께 숲에 가고 그림책을 읽으려고 차근차근 알아보고, 배우고 있다. 어쩌면 이런 흐름에 아파트보다는 주택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세 가족이 떠난 여행에서, 숲에서 3박 4일을 보낸 후 남편에게 다시 말했다. "우리, 그냥 지금 주택에 살아보자."


지금으로 당겨온 이유는 돈보다 시간을 선택하기 위함이다. 계획대로 1년~3년 후에 주택에 가게 되면 부동산 비과세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지금보다 넉넉한 자금으로 집을 알아볼 수 있을 테지만, 그때가 되면 딸과의 시간은 훌쩍 지나버린다. 휴직을 마치고 직장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다시 전셋집을 선택한다면 딸이 벽에 낙서를 하는 걸 쫓아다니며 말려야 한다. 아파트를 선택한다면 흙장난 좋아하는 아이를 달래서 흙이 있는 놀이터를 찾아 데리고 나가야 한다. 어차피 나중에 주택으로 갈 거라면, 돈보다 주택에서 딸과 보내는 시간을 선택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에서 그랬던 것처럼, 계절을 듬뿍 느끼면서 살고 싶었다. 우리의 마당에서.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꽃필 수 있는 집을 찾아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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