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뽀로 3박 4일
아침 9:30 인천공항 미팅 약속시간이다
시간에 맞춰가기 위해 일찍 서둘렀다.
차를 몰고 수락 공항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아직
탑승시간이 남아있다. 기다려서 버스에 올랐다
얼마 만에 가는 외국 나들이인지 아마 코로나 이후로
한국에만 쭉 있었던 거 같다
하지만 소풍 가는 듯한 설렘보다 며칠 전 학원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먼 길 오르니 가슴엔
돌덩이하나 얹여놓은 기분이다
그래도 해결이야 되겠지 하는 맘으로 가서 맘껏 힐링하고 올 생각이다.
그제밤엔 오래간만에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를 세기도 했는데 열몇 마리 정도에 생각은 또 학원일에 맴맴이었다.
그렇게 그제밤을 지샌덕에 어젠 곤히 잠을 잘 수 있었다. 생각을 전환한다는 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정면을 바라보고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다
돌아선 뒷모습을 보며 그것이 겉모습에 불과했음을
깨달을 때도 있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그래서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더 아픈 건지도 모를 일이다.
불안과 힘듬의 시간들을 잠재우고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일은 생각의 전환이 아니라 마주한 대자연의 숲과 나무 구름 하늘 산과 호수를 바라보거나 위대한 예술 앞에 서는 일이다.
그렇게 대자연을 접하고 나면 자신의 분노와 불안 그것은 한낱 사소한 먼지에 불과해질 거라 믿어본다.
오늘 나는 한국이란 나라 서울에서 겪은 가슴아린 일들을 내려놓고 대자연 앞에 당당히 서서 자연 앞의 미미한 존재가 겪은 아픔들을 잊을 생각이다.
생각함이 아니라 자연이 그렇게 나를 만들어 줄거라 믿는다
설국에서 하얀 마음을 가져보고 이국의 정취에 깃들어 보고자 한다. 한 번도 문학기행이란 제목으로 여행을 떠나본 적 없지만 그동안 다녔던 여행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듯하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글을 쓰는 이 시간 마음은 이미 설국의 어느 눈밭 위를 거닐고 있는 중이다.
오늘은 커피를 한잔도 못했다 기내에서 커피를 판매하길래 한잔 마시려 했는데 체크카트는 결제가 안된단다. ㅠㅠ 이럴 수가.
결국 커피도 못 마시고 잠도 잘 오질 않고 말똥 말똥 있으려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오래간만에0 아무 준비 없이 급하게 떠난 여행이라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질 못했다. 오른쪽 앞 좌석 손님은 책을 읽고 있다. 왜 책 한 권을 넣어오지 못했는지 후회막심이다.
2시간 20분의 비행시간이라는데 그 시간마저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진다.
한국에서의 짐덩어리를 내려놓고 와야 하는데 머릿속엔 또 학원일 생각이 맴맴 돈다. 언제 내가 또 이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스스로 깜짝 놀라 다시 설원을 떠올린다.
비행기가 착륙하고 이국적 풍경을 마주하고 나면 머릿속 생각들이 리셋이 될까? 그러길 기대해 본다
게이트 앞에서 에어부산을 이용해서 삿뽀로로 가는 동행인들을 만나 잠시 목례로 인사를 나눴다. 하얀 머리의 할머니 한분도 보였다. 다행히 내가 제일 연징자는 아니다. 요즘엔 어딜 가나 내가 제일 나이 많은 축에 드니 늘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이번 문학기행에 총 20명이 함께하는데 그중 남자는 나 혼자이다. 원래 이런 분위기 그리 어색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조금 불편하긴 하다. 어쩜 나보다 다른 여성일행분들이 더 어색해 할거 같긴하다. 기행을 마치고 모여서 소회를 글로도 만날 건데 괜스레 미안해진다.
예교리 모임에 나가면 늘 남자는 나 혼자였다.
익숙한 모습이긴 하지만 3박 4일을 청일점으로 지내야 하는 건 조금 불편하긴 할 거 같다. 남자가 아닌 여성의 입장으로 일정을 함께 해야 할 거 같다.
내 인생 첫 해외나들이는 31세 때 미국 시애틀 여행이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배터리 화재라든지 테러의 위협이라는 것이 없을 때라서 당연히 라이터 소지는 가능했고 당시 담배를 피우던 나는 비행이 제일 뒤 약간의 공간에서 담배를 피웠던 기억이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 같지만 그땐 그게 가능한 시절이었다. 담배를 피웠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기내에 화기를 가지고 탑승을 해도 안전한 시대였다는 이야기이니 세상이 점점 위험하고 살기가 힘들어지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비즈니스 클래스 빡빡한 자리의 불편함이 오늘은 왠지 더 크게 느껴진다. 통로석 앞도 옆도 볼 수 없는 미지의 공간에 나는 앉아있다. 내가 살던 곳에서 이국의 땅으로 나를 날아다 주는 비행기의 매력이 느껴진다. 두 시간여의 여행이 다른 세상으로 나를 인도한다. 다른 세상에서의 색다른 경험을 기대하며 타국의 땅을 밟을 것이다.
예상하고 기대했던 설국이 아니다 실망이다
그래도 일본어를 보는 순간 이국의 모국어가 반갑게 다가온다.
입국장은 인산인해이다. 중국말과 한국말이 뒤섞인다
간혹 안내하는 일본어 이곳의 언어가 이국언어들에 파묻힌다.
벨트를 따라 왔다갔다하며 입국심사대에 다가간다.
심사를 마치고 도라에몽 앞에서 보기로 해서 기다리는데 다들 한 컷씩을 하는데 난 그냥 구경만
가이드를 만나고 버스를 타고 숙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공항에서 2:30을 달려가는 길에 벌써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다
사방은 하얀 눈으로 덮여있다. 이제야 북해도의 겨울에 온 거 같다. 아침을 공항에서 햄버거를 먹고는 아무것도 못 먹었더니 배가 고파서 휴게소에 들러 도라야끼 하나를 사서 먹었다.
내가 생각해도 난 팥을 나무 좋아하는 거 같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잠시 휴식한 후 로비에 모여 저녁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가이드의 설명으로는 신호등이 세로로 세워져 있고 건널목 신로등에 갓이 없는 것은 눈의 무게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란다. 기후에 맞게 적응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보는듯했다.
식당은 북해도 전통 숯불구이집인데 들어가기 전 심호흡을 몇 번 하란다. 이유는 들어가면 안다고 문을 열고 들어가니 연기가 자욱하다. 순간 왜 심호흡을 시켰는지 알 거 같았다. 부위별로 고기가 소복이 올려져 나왔다. 숯불에 굽자 연기가 피어올랐다. 생맥주에 곁들이는 안주로는 제격이다. 역시 술이란 가장 인간친화적 음료라는 생각이 든다.
서먹했던 벽이 사라지고 오래 만난 사람들처럼 이야기가 꽃핀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1층로비 옆엔 무료라멘을 주고 있어서 일행과 함께 라멘을 먹는데 양이 적어서 두 그릇 순삭했다.
저녁을 먹고 온사람 맞는지 모르게 라멘배는 따로 있는 듯..
건물 꼭대기층인 10층에는 대욕장이 있어서 몸을 담글 수 있었다. 사우나도 하고 하늘이 뻥 뚫린 야외 욕장에서도 몸을 담드고 피어오르는 수증기 속에 있으니 여행의 피로가 가시는듯했다
이렇게 하루의 일정이 끝났다.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탐방이 시작될 것이다. 기대를 안고 잠을 청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