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넬리스 기스브레히츠
1. 작가 소개
코르넬리스 기스브레히츠(Cornelis Gijsbrechts, 활동 시기: 17세기 중반)
코르넬리스 기스브레히츠는 17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로,
트롱프뢰유(Trompe-l’œil, 눈속임 회화) 기법을 전문적으로 구사한 작가이다.
그는 실제 사물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실적인 묘사를 통해
회화의 재현 능력과 시각적 인식을 실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스브레히츠는 덴마크 코펜하겐 궁정에서
프레데릭 3세와 크리스티안 5세의 후원을 받으며 활동했으며,
편지, 악보, 그림 도구, 캔버스 등 일상적 사물을 주제로 한
트롱프뢰유 정물화를 다수 제작했다.
그의 작품은 17세기 바로크 미술에서
트롱프뢰유 회화의 정점 중 하나로 평가받으며,
오늘날에는 회화의 본질과 시각적 착시에 대한
초기 개념미술적 성격을 지닌 작업으로도 연구되고 있다.
2. 작품 설명
그림의 뒷면
(The Reverse of a Framed Painting, c. 1670)
이 작품은 액자에 끼워진 회화의 뒷면을 정면에서 묘사한 트롱프뢰유 회화이다.
나무 프레임, 캔버스를 고정한 쐐기, 천의 질감,
작품 번호가 적힌 작은 종이까지 세밀하게 그려져 있다.
작품에는 일반적인 회화에서 기대되는 이미지나 서사가 없으며,
관람자는 그림의 전면이 아닌 구조적 뒷면을 보게 된다.
이로 인해 실제 오브제가 벽에 걸려 있는 듯한 시각적 착시가 발생한다.
이 작품은 회화가 재현하는 대상과
그 재현 방식 자체를 드러내는 사례로 평가되며,
17세기 트롱프뢰유 회화의 기술적 완성도와
시각 인식에 대한 실험을 보여주는 대표작으로 간주된다.
3. 나의 감상.
뒷모습이 증명하는 것들
세상은 우리에게 ‘진격’을 명령한다.
앞을 향해 걷고, 뛰고, 끝내 달려가야만 낙오되지 않는다고 재촉한다.
속도가 곧 발전이며, 앞서 나가는 것만이 성공의 유일한 이정표라 믿으며
우리는 매일 숨 가쁘게 전진한다.
그러나 눈부신 목표를 향해 전력질주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가끔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걸어온 길,
먼지 날리는 발자취를 가만히 응시할 때
비로소 ‘진짜 나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어디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쏟아왔는지는
내가 무엇을 사랑했고
무엇에 생의 절반을 헌신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정직한 증표다.
앞으로도 이 길을 고집하며 달려갈 것인지,
아니면 이제는 다른 인연과 일에 마음의 자리를 내어줄 것인지는 오직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사람을 마주할 때도 우리는 대개
그 사람의 ‘앞모습’만을 소비한다.
미소 짓는 입매, 상냥한 눈빛, 정돈된 언어들.
하지만 그 얼굴이
사회라는 무대 위에서 정교하게 깎아 만든 가면이라면,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이면에 속고 만다.
그래서 때로는
한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꼿꼿이 세우려 애쓰지만
끝내 처진 어깨 위에 내려앉은 세월의 무게를 가늠해 보는 일,
꾸며낼 수 없는 뒷모습에서 배어 나오는
고유한 분위기를 읽어내는 일.
그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풍파를 견뎌왔는지
조금은 짐작하게 된다.
미술관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우리는 늘 벽에 나란히 걸린
그림의 앞면만을 본다.
화려한 색채와 기교가 넘실거리는 화면 앞에서
감상을 나누지만,
그 캔버스의 뒷면을 들여다볼 생각은
좀처럼 하지 못한다.
오늘 마주한
코르넬리스 기스브레히츠의 작품은
그런 고정관념에 서늘한 경종을 울린다.
화가는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아니 정확히는 그림의 ‘등’을 그려놓았다.
거친 나무틀과 세월에 바랜 천,
그리고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작은 번호표.
그 삭막하고도 정직한 뒷면을 마주하는 순간,
나는 문득
사람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우리가 화려한 앞모습만을 보고
판단해 왔던 수많은 존재들.
어쩌면 우리는
그들의 가장 얕은 단편만을 보고
다 안다고 자만했던 것은 아닐까.
캔버스의 앞면이
화가의 의도된 연출이라면,
뒷면은 그 작품이
묵묵히 견뎌온 시간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가며
마주하게 될 무수한 얼굴들 앞에서,
나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질 때면
화려한 언변보다는
조용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앞모습은 속일 수 있어도,
뒤척이는 등과
고독한 발꿈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진실은 언제나,
우리가 보지 않기로 선택했던
‘뒷면’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느리게 바라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