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마음속 스노볼
#1. 어느 날, 저녁 식탁
건순 :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서 누구를 제일 사랑해?”
애비 : “아빠? 그야 당연히 엄마지. ”
애미 : “예~~”
2년 남짓 오십견 재활 중인 애미는 두 손 번쩍 들고 간택의 세리머니를 한다. 어라, 건순이 분위기가 어째…심상치가 않다.
건순 : “히잉. 아빠! ‘우리 가족’이라고 해야지. 나는 누가 물어보면 ‘나의 보물 1호는 우리 가족입니다! ’라고 답한단 말이야. “
건만 : “저도요! 저도 학교에서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모두 우리 가족이 최고의 보물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아빠 선수 옐로카드입니다! “
밥 먹다 말고 슬라이딩 태클을 하는 건만 군. 아드님, 식사예절을 어디에 말아 잡수었나요. 그대야말로 옐로카드.
애비 : “건순이가 가족 중에 누구냐고 물어봐서 한 명을 고른 거지. 아빠는 건순이, 건만이, 최고로 사랑해.
건순 : “엄마만 이야기하니까 우리는 안 사랑하는 거 같잖아. 불시에 긴급질문을 할 테니 잘 생각하고 대답해. 마지막 기회야. 한 번만 더 가족이라고 답 안 해주면, 나도 학교 가서 ‘우리 가족은 아빠 빼고입니다. ‘라고 이야기할 거야. 그렇게 알아요. “
건만 : “마지막 기회입니다! 한 번만 더 옐로카드 받으면 퇴장! ”
아드님의 몸은 식탁, 머리는 그놈의 축구장.
#2. 다음날, 퇴근한 애비 현관 입장
아빠 선수가 입장과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건순 : “아빠아빠, 아빠는 우리 가족 중에 누구가 제일 좋아? ”
애비 : ”아빠는 우리 가족!! “
건순 : “히히. 이제 됐다. 그런데 어제는 왜 엄마라고 했어? “
애비 : “그야 아빠는 엄마를 가장 사랑하니까 그렇지. ”
건순 : “으이잉?? 뭐야. 이제 끝이야. 완전히 삐졌어! “
으잉. 이쯤이면 눈치 없는 건만이도 꺼냈던 옐로카드를 숨긴다.
결국 건순이가 마음속 스노볼을 흔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애비가 알아줄 때까지, 눈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주려나보다. 평생.
건순 : “아빠, 진짜진짜로 마지막 기회야. 아빠 또 그러면 ‘우리 가족은 아빠 빼고입니다. 평생! ’이라고 말할 거야. “
+덧마디
겨울나무 스노볼 그림은 첫눈 내리던 날 그렸는데요. 실은 나무를 작게 여러 그루 그릴 생각이었어요. 하늘 배경을 칠하고 그림을 말리는 동안 책상 한편에 밀어두었죠. 덜 마른 그림 옆에 펼쳐져있던 파일이 포개지면서 하늘이 뭉개졌어요. 어쩌나 고민하다가, 얼룩지게 마른자리에 큰 나무를 그려 넣고 눈이 쌓인 듯 하얀 붓질을 더했습니다. 마음에 차지 않아도 그림이 남았습니다. 글감까지 떠오르다니요. 작가의 마음이란.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마음을 몰라 주어도 반짝이게 고민한 작은 결정들이 하나씩 쌓여갈 거예요. 각자 마음속에 품은 크리스털 스노볼을 흔들어도 보고 내려놓고도 바라보는 거지요. 나와 나를 둘러싼 세상을 믿고 잠잠해지길 기다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