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식단풍
무르익는 늦가을 어느 날, 어르신들의 말씀을 들었다.
올해는 단풍이 영 별로야.
아는 만큼 보인다지. 그러고 보니 더운 날씨에 단풍이 곱게 물들 틈이 없이 마른 모양새다. 왜 이리 메말랐니. 가을에 막 발 디딜 무렵에 보았던 촉촉한 잎사귀가 흔치 않다. 막 내려앉은 생생한 이파리를 주워다 그릴 때에는 발걸음 아래에서 조용히 소리 없었지.
보이는 만큼만 보았었구나. 미쳐 몰라봐 미안하다. 단풍을 살피고 그리면서 가을을 나름 즐겨왔다. 계절이 따스하게 제법 오래 머물러 다행이라 여겼다. 이상 고온에 나무들이 예전 같지 않음을 눈치채지 못하였구나. 메말라 구불한 잎사귀들이 더운 기운에 물기 없이 간신히 나뭇가지를 부여잡고 있다. 찬기가 닥치니 살며시 부는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지네. 알고 나니 마른 잎이 눈에 가득하다.
#2. 습식단풍
보아도 보아도 또 보고 싶은걸. 첫눈으로 묵직하게 습설이 내린 후, 무게를 못 이겨 꺾인 나무들이 안타깝다. 집 앞 도로의 가로수가 쓰러져 경찰차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복구를 하더라.
오늘 낮에야 잠시 햇발이 뻗치고 나뭇가지와 지붕에 힘차게 내려앉았던 눈발이 가벼이 뚝뚝 흘렀다. 세찬 눈보라와 두툼한 얼음찜질을 이겨내고 나뭇가지에 매달려 반짝이는 단풍이 대견하다. 허연 얼음팩을 걷어낸 발간 피부가 유난히 눈부시더라. 메말랐던 단풍이 스노우보습 되었네.
놀이터 매니저로 덜덜 떨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미끄러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서인지 유난히 발걸음이 고단했다. 땅만 보고 걷다가 보이는 것만 보인다. 습기 녹녹한 단풍의 유려한 붉은빛에 손이 이끌렸다. 건순이와 신나게 줍다 보니 단풍잎도 가지가지다. 6갈래, 7갈래, 8갈래 잎사귀를 하나씩 주워왔다. 거실 입구의 북타워에서 손에 집히는 오프라윈프리 책 사이에 축축한 가을을 넣어 말려본다. 반나절만에 제법 바삭해졌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싶은 것
하루하루 길을 찾아가며, 하나의 계절을 지나가며, 듣고 보고 배운다. 세상이 예상 밖으로 이탈하면 그런대로 끌려가기도 한다. 오르막에 부풀어 올랐다가 내리막에 바람을 탄다. 오늘이 궁금하여 유난히 살핀다.
보고 싶은 것만 보면 어떤가. 길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