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이 놈아
갓 떨어진 낙엽을 그린 책갈피를 넘긴다.
HELLO LEAVES
금세 가을이 추위에 철들어 간다.
HE LEAVES
갈 님은 간다.
갈은 가을이기도 하고
님은 놈이기도 하다.
갈 놈은 갈 거다.
언제 물러날 바를 몰라 헤매나.
날이 이랬다저랬다 갈피를 잡기 어렵다.
뭐를 입지 우물쩍주물쩍 하더라.
아들놈 똥짤막해진 내복이나 주문해야지.
브런치와 인스타로 소통하고 있는 공림작가님께서 홍디 피드의 이 사진을 보시고 ‘매달려 있는 잎들이 참새 같다’고 하셨다. 신박한 시선으로 바라보니 오동통한 이파리들이 짹짹거리더라. 완성하고도 볼수록 달리 보이는 디자인이다.
일이 술술 풀리다가 턱 막힌 적 있는가. 있다. 사실 자주 그러하다. 이 엽서 디자인도 그러했다.
가을을 열기에는 여전히 덥던 9월, 원데이클래스 가을시즌을 준비하면서 여러 그림을 그려보고 있었다. 나뭇잎을 붓으로 슬렁슬렁 뚝딱 물들였는데, 글씨 디자인을 하기 전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한참(실제로 일주일 이상) 동안 책상에 낱장이 굴러다녔다. 가로 세로 애매한 비율의 종이에 낙엽을 다섯 개나, 그것도 지나치게 살이 오르게 그린 느낌. 글씨를 쓸 공간도 마땅치 않고 그림만으로 완성하기에는 아쉽고 포기하긴 싫고 미간에 골이 깊어졌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에는 읽다 보면 한 줄, 한 마디라도 떠오르더라. 그림 진도가 안 나갈 땐 집 밖을 나가 걸으며 사진을 찍어댄다. 아직 푸르렀던 나무들 틈에서 가을을 끄집어내어 나도 모르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러다 떠오른 문구.
HELLO LEAVES
이파리 참새들 부리와 궁둥이 사이로, 언발란스하면서 엉뚱(엉덩이 뚱뚱) 하지 않은 폰트를 덧대어 디자인을 완성했다. 막힌 것을 뚫리게 해주는 것들은 한 발 떨어졌을 때 보이는 엉뚱한 것일 수 있다. 정이 안 가던 놈도 달리 두고 까보면 양파 같은 매력이 눈을 자극하기도 하지.
HE LEAVES
가을노무시키 그렇게 오라 할 땐 우물쭈물하더니 벌써 도망갈라칸다. 아들노무자슥 쫄쫄이에 패딩이나 서둘러 대령해야겠어요. 갈피를 잡기 힘든 초4춘기, 님의 다리에 내복을 통과시킬 방도나 궁리해야지. 어차피 갈 놈은 갈테지요홍홍.
+덧마디
이 글을 쓰는 내내 학창 시절 읊조렸던 한용운 시인의 ‘님의 침묵’이 입가에 맴돌았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그것이 가을님이든 아들놈이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