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금

by 시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지 벌써 엿새째였다. 정확히는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집 안에 '감금'되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일주일 정도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무리는 없었다. 한 번 글을 쓰기 시작하면 일주일이 무어랴, 한 달까지도 집에만 머물렀던 적도 있었다. 손가락 몇 번만 까딱하면 식재료부터 필요한 물건은 뭐든 집에서 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나의 거취가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결정되는 경험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했다. 잠시 담배를 사러 편의점에 가려는데, 문이 열리지 않았다. 달칵 소리만 반복되고 문이 열릴 생각을 안 했다. 문이 고장 났다고 생각했다. 집주인은 대부분 해외에 나가있었고, 결국 열쇠수리공에게 전화를 걸기로 했다. 귀찮은 일이 생겼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네이버에 뜨는 순으로 다섯 번째까지 전화를 걸어봤지만 모두 부재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한두 통화면 연결이 되었을 텐데 이상했다. 여섯 번째, 일곱 번째까지 걸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열 번째 전화까지 모두 부재중이었을 때야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우연의 일치로 생각하려 했다. 모두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우리 집 문이 고장 난 날 우리 동네 열쇠수리공들이 단체여행을 떠났을 수 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동료 작가인 B마저 전화를 받지 않을 때부터였다. 평소에 통화를 자주 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그나마 집 근처에 사는 유일한 지인이었다. 원고 마감에 쫓길 때면 편집자의 전화를 피하려고 전화를 꺼두기도 한다는 소릴 듣긴 했지만, 지금은 마감 시즌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역시도 한 번 글을 썼다 하면 두문불출하는 사내이니, 이 역시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건 상대는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우리 집에 오려면 한 시간이 넘게 버스를 타야 하지만 별 수 없었다. 내 전화를 목 빼고 기다리는 유일한 사람, 내 얼굴 한 번 보기 위해서라면 한 시간이 아니라 그 곱절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신호음이 한 번, 두 번, 세 번... 컬러링도 없이 투박한 신호음이었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아..."


오늘 열두 번째 듣는 목소리였다.

몇 번을 걸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의 목소리 대신 기계적인 안내음이 반복되자, 가슴 한편에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는 듯했다. 지난주 허리가 좀 아프다며 말끝을 흐리는 어머니에게 나이 들면 다 그렇다, 내 허리도 아프다는 말로 퉁명스레 대꾸한 게 마지막 통화였다.

살갑지 못한 자식에게 어머니는 늘 먼저 안부를 물어오시곤 했다. "밥은 챙겨 먹고 사니.", "글 쓴다고 잠도 안 자는 거 아니냐."는 말들과 함께. 이번 주에는 어머니로부터 온 전화가 한통도 없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방해 없이 일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고작 3분, 180초를 넘지 않는 통화를 그리도 귀찮아했다. 담배를 피우는 데는 하루에 그 몇 배를 썼는지 모른다.

이대로 영영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면 어떨까. 그 생각이 목구멍을 조여왔다. 어떤 가정을 해보아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이 더 흘렀다. 시간감각이 무뎌져갔다. 나는 문 앞에서 하루를 보내기 시작했다. 손잡이를 잡고 흔들어보고, 문틀을 두드려보고, 경첩 부분을 살펴보기도 했다. 힘만 빠질 뿐 성과는 없었다. 포기는 쉬웠다. 냉장고에는 냉동식품이 그득했다. 문을 열려는 시도도, 전화를 거는 일도 모두 멈췄다. 그저 책상 앞에 앉았다.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갇힌 몸,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이것뿐이었다.

평소 같은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어두운 이야기. 세상의 이면, 인간의 추악함, 절망적인 현실. 그런 것들이 내 전문 분야였다.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맴돌았지만 글이 써지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온통 어머니 생각뿐이었다. 어머니가 내 나이쯤 되었을 때는 어땠을까. 갓난아기인 나를 안고 밤새 잠을 못 이루셨을 텐데, 그때도 이렇게 막막하셨을까.

문득 어머니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졌다. 나의 어머니, 그리고 모두의 어머니. 나는 홀린 듯 글을 써 내려갔다. 소설의 형식을 취했지만 실은 그녀의 입장에서 써 내려가는 수필이었다. 원고가 완성되는 동안 나는 그녀의 아들이면서, 동시에 그녀 자신이기도 했다. 나에 대한 사랑과 원망, 대조적인 감정이 복잡하게 얽혔다.

긴 원고를 완성하고 나서야 문을 열어 본 지 오랜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저 평범한 문, 저 문으로 가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손에 묻은 땀을 닦아내며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렸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아무 소리도 없이, 마치 처음부터 고장 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부드럽게.

밖으로 나가니 세상은 그대로였다. 거리도, 사람들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첫 번째로 향한 곳은 어머니 댁이었다. 한 시간이 넘는 버스 여행이 달갑게 느껴졌다. 바람, 햇살, 사람소리 같은 것들이 오랜 갈증 뒤에 마시는 냉수처럼 온몸에 스며들었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혹시나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익숙한 집냄새와 함께 어머니는 그 자리에 계셨다. 더없이 나를 반가워하며 바쁘게 밥차릴 준비를 하는 뒷모습을 보자 온몸을 감싸고 있던 긴장이 그제야 풀렸다. 오로지 나의 입맛에 맞게 차려진 밥상은 며칠간 먹었던 냉동식품 때문인지 끝없이 입을 즐겁게 했다. 위장이 항복선언을 하고 나서야 어머니에게 물었다.


"전화는 왜 안 받으셨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갸웃하셨다.


"언제?"


핸드폰 통화기록을 보여드렸지만 어머니 번호로 걸었던 전화는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어머니는 내 말을 믿지 않으셨다. 술에 취하기라도 한 건지 걱정하시는 모양이었다. 잠을 못 자서 그런 것 같다고 서둘러 변명했지만 여전히 그녀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어제도 네가 전화했잖아. 밥 잘 먹는다고. 엄마는 네가 어쩐 일로 살갑게 전화를 다거나 했는데."


내가 갇혀 있던 며칠의 시간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누군가 나를 대신해서 내 인생을 살고 있기라도 했던 것 같았다. 후에 들어보니 편집자도 내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피곤한 몸과 지친 정신이 만들어낸 꿈이었을까? 아무것도 알아낼 수 없지만 한동안 나는 문을 살짝 열어놓은 채로 잠에 들었고, 눈을 뜨자마자 문이 잘 열려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마침내 문을 닫고도 잠들 수 있게 되었던 어느 날, 감금되었던 시간 동안 썼던 어머니에 대한 원고를 출판사로 전달했다. 책의 첫 독자는 어머니가 될 것이었다. 그 원고 속에는 자식을 사랑하면서도 원망하고, 무한히 베풀면서도 때로는 서운해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그런 어머니를 뒤늦게 이해하게 된 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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