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가 데이지 Jul 28. 2024

인도네시아Ⅰ짙어가는 석양 앞에서

데이지 버킷리스트 ④ 섬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다 보며 광합성하기


발리에서의 시간을 마치고 새로운 여정을 위한 길.

비행기를 기다리며 대기실에 있는데, 

은사님께서 내 여행 소식을 듣고 연락을 했다.


"너는 작은 시골 아이들의 희망이야."


강원도 시골 마을에서 자라오며 전 세계를 품던 나의 어린 시절.

설레는 마음으로 적은 버킷리스트를 갖고 세계를 향해 나선 이 순간. 

내가 누군가의 희망이라는 말을 들으니, 눈물이 핑 돌았다.


인도네시아에서 행복을 두 팔 가득 껴안으며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여행을 하고 있을까?

여행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누군가에게 조그만 힘이 되는 것이 감사하다.


은사님의 소중한 말과 더불어

발리에서의 소중한 기억들이, 

지금 나의 삶이 귀중하고 또 소중해서 

눈물이 뺨을 향해 마구 돌진한다.


발리에서의 이 순간이 그리울 것이다.

그리워 미칠 것이다.


그래서 눈물이 마구마구 난다.



내가 어찌나 울었는지, 옆에 앉은 분께서 조용히 내 옆에 휴지를 갖다 놓았다.

휴지로 눈물을 닦으며, 꾸깃한 버킷리스트 종이를 펼친다. 


섬에서 아무 생각 없이 바다 보며 광합성하기!


에메랄드 빛의 바다를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태양을 즐기는 사람들.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책을 읽으며 보내는 여유로움.


휴양지 한번 가본 적 없던 나는 그들의 여유를 동경했다.


그리고 지금, 눈물을 닦으며

동경했던 그 여유를 더없이 펼쳐낸 발리에서의 시간을 떠올린다. 


발리 사람들의 마음과 온화한 미소, 

꾸따해변의 야경과 덴파사르 도시의 풍경, 

꾸따 해변 밤바다를 걷던 순간, 

수없이 많이 새겨진 별을 보고 들었던 경외감까지.


달콤했던 발리에서의 모든 이야기를 시작한다. 





#1. 인도네시아 발리로 이동하는 페리 위에서


발리로 이동하는 페리에서 바라본 풍경


태평양 위를 수놓은 밤하늘의 별들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수없이 많이 새겨진 별을 바라만 봐도 울컥함이 밀려온다.

금방이라도 눈앞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별을 보며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어두워진 밤바다 위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두고

저절로 흐르는 이 눈물을 무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지난날의 이기적인 내 마음이 떠오르고,

지난날의 내가 행했던 잘못과 남들 가슴에 새긴 상처가 떠오르고,

중학교 잔디에 누워 언니와 함께 별을 보던 순간이 떠오르고,

이 순간을 공유하고 싶은 우리 가족이 떠오른다.


자바섬에서 발리로 가는 길,

지금껏 보지 못한 아름다운 장면 앞에서, 내 삶이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서

태평양을 가로지른 별들 앞에서, 작고 보잘것없는 내 삶이 너무 소중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물을 흘리는 일뿐이었다.







#2. 발리의 중심지, 덴파사르로 이동하며


발리 선착장에 도착해 안내원으로 보이는 이에게 버스를 묻는다.

안내자는 막 마지막 버스가 출발할 예정이라며 황급히 오토바이에 나를 태운다.


아슬아슬하게 버스에 오르니,

헐레벌떡 탑승한 동양 여자아이를 향해 일제 시선이 향한다.


살면서 한국인을 처음 본 발리 친구들은 쑥스럽게 사진을 요청한다.


순수하고 순박한 발리 사람들은 버스 안 이방인에게 무수한 관심을 쏟는다.

부끄러운 이는 힐끔 곁눈질하고,

용기 있는 이는 내게 사진을 제안하고,

사려 깊은 이는 저녁을 먹지 않은 내게 아얌(닭고기)을 건네고,

당찬 이는 아예 내 옆에 앉아 연신 질문을 한다.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당찬 이에게 이방인은 대답할 거리를 찾지 못한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겠어."


발리에 도착했지만, 발리에서 무엇을 할지, 어디 숙소에서 묵을지 정해진 게 하나 없다.

휴대폰은 배터리 방전을 앞두고 있고,

연락이 닿을 누군가도 없다.

선착장에 발을 딛자마자 마지막 버스가 출발한다고 하여 탑승하긴 하였으나,

어디로 향하는 버스인지도 모른다.


"이 버스는 어디로 향하는 거야?"


대책 없는 동양 여자아이가 신기하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당찬 이는 말한다.

대화를 살며시 듣고 있던 옆 사람들도 어느새 대답에 참여한다.


"덴파사르로 가는 버스야. 

덴파사르는 발리의 중심지이니, 거기서 묵을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버스는 자바섬에서 넘어온 발리 현지인과 농산물 상자를 가득 실은 채

포장도로와 비포장도 구분 없이 덴파사르를 향해 구불구불 달린다.

어느덧 깜깜해진 창문 바깥을 보며 스르륵 단잠에 빠진다.

꺼져버린 폰과 어둑한 밤은 여행자를 겁주지 못한다.


나누어준 아얌(닭고기)을 먹다 보니 어느새 날은 껌껌해진다.


눈을 뜨니 시곗바늘이 12시 자정을 가리킨다.

중심가에 가까이 온 버스는 한두 번씩 정거장에 멈추어 사람들을 토해낸다.

뒷좌석에 나와 나란히 앉은 발리 가족은 나를 걱정한다.


덴파사르로 오는 내내, 그들은 짧은 영어로 내게 질문한다.


내가 사과를 물으면 포도를 답하셨지만,

모두의 언어, 미소를 갖고 있기에  언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를 걱정하며 함께 종점에 내려서도 묵을 곳을 알아봐 주신다.

끝내 오토바이로 한 숙소 앞에 나를 데려다준다.


"Terima Kasi(떼리마 까시; 감사합니다)"


짧은 인도네시아어로 감사 인사를 전하니,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드는 가족들.

이름도, 얼굴도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 그들이지만,

그들이 지은 미소와 내게 흔든 손은 여전히 내 마음에 짙게 남아있다.


덴파사르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나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나에게 쏟는 관심을,

배고픈 나를 위해 저녁을 나누어주는 나눔을,

늦은 밤을 걱정하며 끝까지 함께해 준 마음을,

가슴 깊이 간직하며 발리의 첫날밤을 보냈다.




#3. 발리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된다면


우여곡절 발견한 발리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직원과 함께 이야기 나눈다.


기진맥진한 몸으로 짐을 풀고 샤워를 한다.

널찍한 침대에 사지를 뻗고 누우니, 하루가 주마등처럼 스쳐 간다.

발리로 넘어오며 하늘에 수놓은 별을 보고 내가 느낀 감정을 곱씹는다.

여전히 형용될 수도, 정의될 수도 없는 그 감정.

피곤함에 눈꺼풀이 내려와도 생생한 그 감정만은 내 마음에 짙게 남아있다.


반딧불이가 울리는 새벽 2시,

내일 계획을 짧게나마 세우고자

인터넷 연결이 되는 라운지로 나가 자료를 찾는다.

차를 건네며 호스텔 직원이 다가온다.


명품 마사지샵, 수영장 있는 리조트, 전통 투어 ···

다양한 검색 결과 앞에서 머리를 싸매다 직원에게 질문한다.


"차 잘 마실게요. 감사해요. 내일 발리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 중인데,

당신은 발리에서 무엇이 가장 좋으세요?"


그는 고민 없이 번역기에 손을 올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앉아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일몰을 보는 거야."














#4. 그저 순간을 사는 거야


힌두교의식으로 쓰이는 꽃들. 발리 거리 곳곳에서 발견된다.


다음날 아침, 


무거운 배낭은 호스텔에 둔 채, 가뿐한 마음으로 선글라스만 챙겨 나온다.

이슬람교를 믿는 대부분의 인도네시아인과 달리, 발리인은 힌두교를 믿는다.


발리 토착 문화와 힌두가 어우러져 발리 고유의 종교는 발리를 더욱 특별하게 만든다.


발리 힌두력의 새해인 

녀피(Nyepi)가 곧 다가오는지, 

거리 위는 새해맞이로 분주하다.






휴양지에 온다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을 정도로

발리의 분위기는 무엇이라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


자연의 힘, 선과 악의 카르마, 영혼을 믿는 발리인들의 자취를 깊이 들이마신다.

숨결은 혈관을 타고 온몸의 세포로 전달된다.


흰색 두건을 두른 채 발리인의 힌두 의식은 종소리가 되어 청명하게 울린다.

햇빛은 파도 수면 위에 은빛 잔향을 만들어 응축된다.

나도 그 빛의 일부가 된다.


그곳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순간이다.


발리 꾸따해변을 바라보며 하루종일 멍을 때린다.

달달한 초콜릿 라떼가 가진

동남아시아만의 싸구려 달달함에 취한 채

시원한 코코넛 음료가 가진

해변의 강렬함을 뚫는 사원함에 취한 채


잠시 바다에 뛰어들기도

잠시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기도

잠시 노래를 들으며 파도를 느끼기도 한다.


발리에 와서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마음이 편안한 이유는 '발리' 그 자체 덕분일까


햇살과, 바람과 파도와 

그 파도를 즐기는 사람들과 여유들…. 



천국이라는 말로 밖에 형용될 수 없는 순간이다. 


어젯밤 호스텔 직원의 말을 떠올린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앉아서 커피 한 잔과 함께 일몰을 보는 거야."


"그리고, 네가 그것을 좋아하는지 확인해야 하지.

너와 가까운 이들과 함께라면 더욱 흥미진진할 거야."


그의 말은 간단한 원리지만, 깊은 울림을 준다.


호화로운 마사지를 받는 것보다

싸구려 커피 한잔과 함께 지는 일몰의 소중함,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소중하다는 것.


발리는 내게 말한다. 


"그저 사랑하는 사람과 커피 한잔 하며 지는 해를 바라보는 순간은 정말 소중한 일이야."



조금씩 저무는 하늘,


발리 바닷가 앞에 앉아 

그저 지는 해를 바라보는 이 순간.

평화롭다.


멍을 때리며 지나가면 증발할 상상을 시작한다.


레스토랑 직원은 

매일 아침이 되면 파라솔을 열고,

날마다 멋진 바다를 보고 휴양객을 맞이하며, 

식당을 운영하겠지?


이들에게 삶의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을 할까?



어쩌면, 매일 휴양객을 맞이하며 

행복하게 순간을 사는 거겠지.


각자가 자기 삶에서 주위를 행복해하고

지나가는 햇살에 웃고 살랑이는 바람에 몸을 실으며

내일을 준비하며 옅어지는 석양에 짙어지겠지.


레스토랑 직원 에릭과의 첫 만남


한참 일몰을 바라보며 석양에 젖어가는 나에게 

레스토랑 직원이 말을 건다. 


"발리는 녀피(Nyepi)를 맞이해. 

우리 마을에서도 내일 녀피를 맞아 오고 오고(Ogoh Ogoh) 행사가 있어.

관심 있으면 보러 오지 않을래?"


오고 오고는 발리의 새해인 녀피 전 날에 진행되는 축제이다. 사람들은 오고 오고라는 거대한 인형(악령)을 짊어지고 징을 치면서 마을을 줄지어 행진한다. 거대한 악령 인형은 각 마을마다 만들어져 행해진다. 
[출처 I 네이버 지식백과]





#5. 광활한 우주 앞에서


에릭의 집에서 우린 이야기를 나누다 오고오고 행사에 참여했다.


다음날, 교환한 연락처로 받은 주소에 찾아간다. 


다양한 과일나무를 키우던 에릭은 나무에 올라 딴 코코넛으로 즉석 음료를 만든다.


"데이지, 우리 마을에 와줘서 고마워. 

매년 이루어지는 행사지만, 너 덕분에 이번 오고 오고는 더 특별해질 거 같아."


에릭은 자신의 집과 마을, 친구들을 소개해준다. 

거리 곳곳에 보이는 오고 오고(거대한 인형)와 

행사 준비로 분주한 사람들을 보니 설레는 마음이 요동친다.


마을 단위의 퍼레이드가 있기 전,

각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을 지켜본다. 



에릭의 가족은 생 대나무를 태우고, 불 붙인 나무를 갖고 집 안에 연기를 뿌린다. 

집 안 신전에 물을 뿌리며 세 바퀴 도는 에릭을 따라 돈다. 

냄비와 냄비 뚜껑으로 큰 소리를 만들어 집안을 돈다. 

악령을 내쫓는 그들의 조금만 의식조차도 내겐 특별함으로부터 행복을 가져다준다.



이후 마을 단위의 행진을 준비한다.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 찬 거리는 마을별 단위로 행진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도 대열에 합류해 함께 행진한다. 



발리의 새해 행사를 발리친구들과 함께


순수하고 친절한 발리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춤을 추고,

미소를 나눈다. 


오고 오고 가 부서져도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하는 

발리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덩달아 소리 지르는 나를 발견한다.


'행복하다.'


특별하고, 소중한 이 순간은 어느덧 새벽 2시가 맞아 마무리된다.


오고 오고 행사를 마무리하면서도 잔뜩 신난 에릭과 나



다음날, 

짙어진 석양은 사라지며 발리는 새해 녀피(Nyepi)를 맞이한다.

침묵과 고요를 뜻하는 녀피(Nyepi)는 새해를 조용하게 맞이하는 발리인의 풍습이다.


녜삐(Nyepi)’는 침묵과 고요를 뜻한다. 세계 여러 문화권에서 새해를 기념하여 떠들썩한 축제를 보내는 것과 대조적으로 힌두교 문화권에서는 새해를 조용하게 맞이하는 풍습이 있다. 침묵과 단식아 함께 진행되며 즐거운 것, 밝은 것, 먹는 것, 이야기하는 것이 제한된다. 거리나 텔레비전, 라디오에서조차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심지어 외부 출입이 통제되는 곳도 있으며 공항마저 폐쇄된다. 묵은 악귀를 떨쳐 보내기 위해 귀신 인형을 들고 행진하며 이를 불에 태우기도 한다.
[출처] 두산백과



시끌했던 행진은 온 데 간 데 없이 고요한 거리만이 남아있다. 

1년 중에 단 하루동안 공항조차 폐쇄되어 아무 소리를 듣지도, 지나가는 누군가를 보지도 못한다.


출처: folkative instagram


별을 보러 잠깐 밖으로 나왔는데, 경이로움에 무서움을 느낀다.

내가 보아온 별 중에 가장 최고로 많은 별들이다.

지구 천장을 바라보며 뇌세포를 보는 것 같다.

하늘 위에 수놓아진 수많은 하늘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광활한 우주의 극도로 작은 일부분만 본 것뿐인데,

뇌세포 사이사이를 횡단하는 수많은 별과 별똥별을 보면서

형용할 수 없는 두려움에 오랜 시간을 우주만을 쳐다볼 수밖에 없다.


내게 본 것은 하늘이 아니라 우주였다.

우주를 본 내 가슴이 세차게 쿵쾅거린다.


나는 지금 인도네시아라는, 그중에서 발리라는 섬에서 수없이 많이 새겨진 별들을 바라보고 있다.


실로, 가슴이 쿵쾅거려 두려움이 생기는 감정이다


더욱, 더 뜨겁게 지구를 느끼고 하나의 작은 생명체라는 마음을 잊지 않으며 살아야지.


녀피의 선물을 받았다.

온 마을의 불이 꺼졌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lc2ACW8FN4&t=581s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유튜브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전 04화 인도네시아Ⅰ두려움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