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가 데이지 Aug 25. 2024

말레이시아Ⅰ전기가 통하는 폭포에서 우리는

데이지 버킷리스트 ⑦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트윈빌딩 앞에서 사진 찍기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며

지나가는 바람을 있는 그대로 지나칠 수 있는 용기,


나를 둘러싼 평가 앞에 전전긍긍하지 않으며

옳은 평가는 인정하되 잘못된 평가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는 용기,


남들에게 잘 보이려는 용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보여줄 용기.


내게 여행은 그런 용기를 준다.


싱가포르 플라워 돔에서 '희망'이란 꽃말을 가진 데이지 꽃과 함께.




싱가포르를 벗어나 말레이시아로 넘어오니

키 큰 야자수밭이 창문 너머로 말레이시아를 알린다.


대한민국 최북단에서 살아온 나는

국경을 통해 대한민국 북쪽 너머를 육로로 가본 적이 없다.

분단국가라는 이유 아래에서

해외로 나가는 건 언제나 비행기를 타는 걸 의미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비행기가 아닌 버스로 국경을 지난다.



생애 처음으로 육로 국경에 들어서는 순간,

국경에 있는 강이 태양에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기분과 같다.

만지고 보면 시원한 그 기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국경에서


짐과 여권 검사 만으로 5분도 채 되지 않아 국경 검사가 끝난다. 

싱가포르 국기는 어느새 말레이시아 국기로 바뀌어 바람에 펄럭인다. 

차창 너머 보이는 말레이사를 보면서 어릴 적 적은 버킷리스트를 떠올린다. 


쿠알라룸푸르 트윈빌딩(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앞에서 사진 찍기


크고 화려하게만 보인 트윈빌딩은 어린 시절 상상한 그대로의 모습일까. 

부푼 가슴을 안고 버스에 다시 올라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로 향한다. 


말레이시아의 첫 이미지.  차창 너머로 말레이시아 야자밭이 보인다.


헤드셋 너머 흘러나오는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

멍하니 유리창 너머 스쳐 가는 풍경을 바라본다.

도로를 따라 줄지어있는 초록빛의 야자수가 인사한다.


햇살이 창가를 비출 때마다

얼핏 설핏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보인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밤 버스.

어둑한 바깥 너머 유리에 비친 지난날의 내 모습이 보인다.

도로를 따라 서 있는 주황빛의 가로등이 인사한다.


현재의 초록빛 야자수와

과거의 주황빛의 가로등이

중첩되며 비치는 내 뺨에는 눈물이 흐른다.


어릴 적부터 간절히 꿈꿔온 그 순간,

지금 내가 그 순간에 있다는 사실에


뛰는 가슴을 움켜잡으며 잠들지 못한 그 순간,

뜨거운 가슴 한가운데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여전히 뛰는 뜨거운 가슴을 갖고

세계를 무대로 밟고 있다는 사실에.


주책없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주체할 수 없는 감사함은

눈물을 친구로 만들 수밖에 없게 한다.


나빌라의 소개로  만난 로저

"로저! 우리 함께 트윈빌딩 보러 가지 않을래?"


인도네시아에서 만난 나빌라가 말레이시아 친구 Roger(아래 로저)를 소개해 주었다.

'옳다, 로저와 함께 트윈빌딩에 가야겠다.'


쿠알라룸푸르를 함께 여행하기 위해

로저는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집 앞에 온다.


그는 팔이 타는 걸 막는다며 잠바를 거꾸로 입은 채로 내게 인사한다.


여분의 헬멧이 없지만,

경찰에게 돈을 쥐여주며 된다며 웃는 모습은 

마치 학창 시절 "선 넘으면 다 내 거야!"라고 말하는 말괄량이 짝꿍 같다.



헬멧 없이 오토바이에 오르니,

머리카락 사이를 스치는 바람이 세포 하나하나에 전달된다.

세포는 차가운 공기에 뚫려 시원함을 느낀다.


이따금 경적을 울리며 질주하는 오토바이는 요금소를 지나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조금씩 떨어지는 가랑비를 맞으며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옆을 아슬아슬 스쳐 가니

위험 한가운데 서 있는 내 모습이 보인다.


불과 며칠 전 처음 오토바이를 타며 낯설어한 모습이 스친다.

헬멧도 없이

비를 맞으며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내 모습이라니.


인생은 참으로 알 수 없구나.


말레이시아 칸칭폭포(kanching falls)에서


우린 함께 칸칭폭포에 오른다.

하나같이 키가 큰 나무는 정글의 위엄을 드러낸다.

뻘뻘 흐르는 땀은 계곡에 발을 담그는 순간 말끔히 씻긴다.


폭포 물이 깨끗한지 의심할 필요 없다며

닥터피시는 연신 내 굳은살을 뜯는다.


칸칭 폭포를 담은 계곡은 수려함을 뽐내니,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하다.


살포시 폭포에 몸을 넣으니 찌릿 전기가 통한다.

계곡 안에서 듣는 소리는 전기가 흐르는 소리와도 같다.


물에 닿는 촉감은 근육 세포 하나하나에 만져진다.

격하면서도 아프지 않게

둥둥둥.


낯선 청각과 촉각은 물이 되어 나를 감싼다.

"로저! 여기 폭포에 전기가 있나 봐. 찌릿찌릿해!"


쿠알라룸푸르 바투동굴에서

로저는 쿠알라룸푸르 일대 이곳저곳을 소개한다.

탈탈 도로 위를 달리는 흰색 오토바이는

헬멧 없는 여행자에게 잊지 못할 양탄자가 된다.


우린 쿠알라룸푸르를 함께 걷고,

서로가 쌓아온 세계를 공유한다.

걸음을 멈추어 로저는 벤치에 앉아 잠시 머무름을 준다.

라마단 기간의 쿠알라룸푸르 거리는

단식 종료의 초침 소리를 기다리는 무슬림 침샘 소리로 가득하다.


문득 광장 벤치에 앉아

째깍 소리에 무슬림 가족이 옹기종기 저녁 식사 준비를 하는 소리에 귀 기울인다.


'생각해 보니, 매번 거리를 걸으며 벤치에 앉은 적이 있었나?'


도시 거리를 걸으며 멈추는 법을 몰랐던 나는

머무름이 가져다주는 색다른 소리와 공기에 집중한다.

머무르기에 볼 수 있는 풍경을

마음껏 음미하며 안온한 거리를 들이마신다.


안온한 공기를 반주로 로저와. 이야기 나눈다. 


말레이시아 9개 술탄의 역사,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중 옳은 제도는 무엇일지,

말레이시아에서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쿠알라룸푸르 차이나타운 거리에서


우리는 차이나타운을 걷는다.

빨간 조명은 은은하게 보행인의 불빛이 되어준다.

불빛에 얼굴 일부가 불그스레 물든 로저는 싱가포르인에 대해 말한다.


"싱가포르 사람은 로봇처럼 살기로

프로그래밍되어있는 안타까운 로봇 같아.

동아시아의 일본 같은 거지."


리콴유(싱가포르 설립자)는 중국계는 유전적으로 규율을 지키지 않는다는 근거로

국가 질서를 위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길거리에 쓰레기 하나 없고, 껌도 먹으면 안 되는 싱가포르가 규제의 결과이다.


"싱가포르 사람은 말레이시아에 오면

누구보다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사람들이야.

(싱가포르에서는 90km/h가 최대)

싱가포르에서 그들이 하지 못한 욕망을

말레이시아 와서 푸는 거지."


싱가포르에 대한 열변을 토하는 그에게 묻는다.


"그렇지만, 싱가포르 정부는 부패가 없기로 알려졌지.

규율적으로 산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결국 잘살고 있는데,

그게 잘못된 걸까?"


로저는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며 말한다.

"너무 많은 규제이기에 자유가 필요해."


그의 대답은 우리를 '자유란 무엇인가'라는

새롭고 끝없는 길로 안내한다.



"우리가 횡단보도, 신호위반을 하는 건 예술가이기 때문이야.

우린 우리만의 예술을 하는 거지. 자유롭게."


자신을 예술가라고 표현하며

자유롭게 도로를 건너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온다.


자유롭게 무단횡단을 하는 그의 몸짓을 따라

나도 힘껏 춤을 추며 도로를 횡단한다.


밤거리를 걸으며

지나가는 자동차를 피해

요리조리 몸짓하는 우리의 예술은


쿠알라룸푸르의 밤을 특별하게 한다.


"로저 나 너무 떨려!"


차이나타운 거리를 끝으로 마지막 장소로 향한다.

나의 오랜 버킷리스트, 트윈빌딩을 향해.


로저 덕분에 편안하게 이동하며 

몸은 무엇보다도 안정적이지만,

트윈빌딩에 가까워지면서 내 가슴은 고동친다. 

설렘에 젖은 나를 보며 로저는 말한다. 


"트윈빌딩은 말레이시아 4번째 수상의 업적으로 여겨지기도 해. 트윈타워 건설에 많은 노고를 보였거든. 그 수상의 상징이자 유산인거지.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4번째 수상처럼 6번째 수상은 트윈빌딩보다 더 높은 타워를 건설하려 하지. 우리의 세금을 써가면서 말이야. 돈 낭비야."


정권의 자랑이자 권력자의 돈 낭비라 말하는 그의 말을 끝으로 

저 멀리 시야에 트윈빌딩이 보인다. 

권력자의 돈 낭비라고 생각하면서도 압도적 크기의 빌딩을 보니 입이 쩍 벌어진다. 


조금씩 걸어가며 트윈빌딩에 가까워져 오니 

오랫동안 보물을 찾던 양치기 소년이 보물을 발견한 느낌이 든다. 


트윈빌딩은 두 빌딩이 구조적으로 대칭을 이루어 

도시를 밝히는 주위 불빛과 함께 반짝인다. 



"로저! 내가 트윈빌딩 앞에 있어!

그토록 꿈꾸던 트윈빌딩에 왔다니!" 


고개를 뻣뻣히 올려 들어 몇 번이고 트윈빌딩을 바라본다. 

연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나를 보며 로저는 말한다. 


"데이지, 너에게 이 빌딩을 보여줄 수 있어 기뻐.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피땀눈물이니까."


로저의 설명과 유머는 트윈빌딩의 순간을 더욱 유쾌하게 만든다. 

그의 말에 한참 웃음 짓고, 

내가 트윈빌딩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잔뜩 신이 난 채 웃는다. 


관현악기가 어우러진 오케스트라에서

유창하게 목소리를 울리는 오페라 가수처럼

도시 야경이 만드는 빛의 오케스트라에서 

트윈타워는 자신의 빛을 울린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피땀 눈물이자,

한국 시골에서 지내던 어린 소녀의 꿈 앞에서

나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안녕 나의 버킷리스트!"





버킷리스트의 생생한 이야기는 아래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데이지 버킷리스트 ⑦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트윈빌딩 앞에서 사진 찍기

https://www.youtube.com/watch?v=WNxt4TPMFo4&t=642s






#Epilogue. 말레이시아 여행을 마치며


쿠알라룸푸르에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지금까지 한 달 동안 여행하면서 깨달은 게 있어?"


"음, 나에 대해 많이 깨달은 거 같아.

생각보다 적응력이 빠른 나의 모습, 친화력이 좋은 나의 모습을 깨달았어.

확실히, 온전히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 놓으니, 내가 몰랐던 내 모습을 알게 되는 거 같아.

이 외에도 내가 몰랐던 새로운 삶을 보니까 내 세계가 넓어지는 게 느껴져."


여행의 맛은 언제나 간지러우면서도 짜릿하다.





말레이시아에서 지내는 고모와 고모부를 만났다.

고모부는 내게 말레이시아에 대해서, 말레이시아 한인 삶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말레이시아는 마치 물과 기름처럼 기름이 둥둥 떠 있는 것처럼 잘 융화되는 것 같으면서도 틈이 존재해. 억지로 섞이지 않는 거지."


"정치계는 말레이계가, 경제는 중국계가 잡고 있어.

중국계가 경제를 잡고 있는데 (중국계가) 정치를 하고 싶으면 

나머지 무슬림은 어떻게 되겠느냐는 거지.

같이 섞여서 살지만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은 여기까지라고 말하며 살아가는 거지."


"같은 히잡을 쓰고 있으면서도 

콘도 화장실 청소하는 분은 인도네시아, 

제과점이나 몰에서 일하면 말레이시아 사람이야.

같은 히잡이 같은 히잡이 아닌 거지."


"말레이시아는 천연자원으로 먹고

살고, 싱가포르는 무역과 관광 산업으로 먹는 거야.

경제 산업 모델 자체가 달라서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된 거지.

집약적 가성비적인 산업으로 펜대만 돌려서 돈을 버는 것과 

온 힘을 다해 몸을 써서 일하는 것이 같으면서 다른 거지."


나는 고모부에게 물었다.

"그걸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고모부는 대답했다.


"모두가 잘살고 평등한 건 공산주의잖아. 차등은 분명히 존재해야 하는 거야.

그곳에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베풀어야지 좋은 사회인 거지."


좋은 사회는 무엇인가.

자신이 한 것에 대해 대가를 받는 사회, 

약자가 보호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 같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the_daisy_path : 인스타그램

https://blog.naver.com/daisy_path : 블로그


[나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어릴 적 꿈인 세계여행 버킷리스트 100가지를 

이루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유튜브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이전 07화 싱가포르Ⅰ나조차도 모르는 내 모습을 기꺼이 사랑하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