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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Oct 14. 2024

함께여서 더 아름답네

네팔 카드만두에서 만난 만주



비행기 창가 너머로 바라본 네팔의 첫 이미지.


설렘을 가득 안고 네팔에 발을 딛는다.

어릴 적 TV 너머 바라본 네팔이 내 눈앞에 펼쳐진다.

순수한 미소를 가진 아이들,

웅장하고 위엄 있는 히말라야,

선한 네팔 사람들의 따뜻한 미소까지.


네팔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는

비행기 창가 넘어 보이는 네팔을 향해

쿵쾅거리는 두근거림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네팔 공항 앞 버스정류장

네팔 공항을 나서며

차가운 네팔 공기를 맡는다. 

분주하게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과 택시를 잡는 사람을 본다.


네팔 사람을 생애 처음 만난 나는

그들의 아름다운 외모에 감탄한다. 


동시에 


동남아시아 여행으로 다져온 경험을 활용해

능숙하게 호객꾼 무리를 지나친다.  


때마침 카우치서핑으로 연락한 호스트에게 문자가 온다.



"네가 원한다면 공항으로 데리러 갈게."



"데리러 온다면, 나는 너무 감사하지."



"당연하지. 나는 오토바이가 있어. 

나도 데려올 수 있다고."








카트만두 호스트, 만주


오토바이가 없다고 무시한 것처럼

느껴지게 말을 한 건 아닌지 고민하는 사이

호스트 만주는 공항에서 나를 만나자마자 말한다.


"너 아름답다."


당황해하며 나도 만주에게 너도 아름답다고, 

네팔 사람들은 다 잘생기고 예쁜 것 같다고 말한다.


"네팔사람들이 잘생기고 예쁘다고? 

(피식) 고마워"




만주(왼쪽)와 디바이낸시(오른쪽)

본인을 변호사라고 소개하며 인사를 건네는 만주는

친구 디바이낸시(이하 디바) 집에서 함께 산다.


만주와 디바는 이혼한 뒤 딸과 함께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둘이 쌓아온 오랜 시간은 겹겹이 쌓여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우정을 느끼게 한다.


배낭을 내려놓으며 디바이낸시에게 인사한다.

그는 차를 내오며 첫 만남의 장을 연다.

밀크티를 부딪치며 우린 함께 네팔의 첫 밤을 보낸다.







다음 날 아침,


만주, 디바와 함께 카트만두 일대에 나선다.

네팔 수도의 청명한 하늘은 우리에게 인사하고,

가느다란 바람은 솔솔솔 내 피부를 간지럽힌다.


사진에 담은 카트만두의 풍경


어릴 적 TV로만 보았던 네팔 이미지 위에

나만의 색채로 네팔이 채워진다.


카트만두를 가득 채운 수많은 사람,

그들이 울리는 경적소리 오케스트라,

곳곳에서 보이는 매연과 오염물.


카트만두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 

모든 오염을 다 흡수하는 느낌이 들지만,


미디어가 포장한 네팔이 아니라

네팔이 가진 본연의 모습이기에,


네팔의 진짜 모습을 내 눈에 담을 수 있다는 사실에

배시시 웃음을 짓는다. 


오토바이에서 나오는 배기가스마저 내게 웃음가스가 된다.


마치 말괄량이 어린아이가 의젓한 어른이 되듯이

머지않아 네팔이 발전되어

지금 카트만두의 모습은 사라질 것이다.


사랑하는 자식의 어린아이를 사진에 수없이 담는 부모처럼

어린아이 같은 네팔의 모습을 내 눈에 열심히 담는다.



카트만두 거리 일대를 지키는 자카란다 꽃

눈에 담긴 여러 풍경 중,

유독 보라색 꽃의 카트만두 거리가 포위망에 잡힌다. 


"만주, 저 보라색 꽃은 뭐야? 거리에 엄청 많다!"



"자카란다(jacaranda mimosifolia)라는 꽃이야.

'화사한 행복'이라는 뜻이지."



카트만두 길에 만개한 '화사한 행복'은 내게 짙은 그리움을 새긴다.


경적 소리가 빵빵 울리는 카트만두 거리 위에서

보라색 꽃의 자카란다를 보면서도 

난 벌써 카트만두를 그리워하기 시작한다. 



디바이낸시의 딸(왼쪽)과 만주의 딸 사라(오른쪽)


교통 규칙은 존재하지 않은 듯한 도로 위

무법지대를 쏘다니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사이로

만주는 나의 팔을 이끌고 도로를 가로지른다. 


꽉 붙잡은 만주의 손길에 이끌려 건너며

그에게서 강인한 엄마의 모습을 엿본다. 

만주 팔에 새겨진 타투가 보인다.


'사라(Sarah)'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이혼한 뒤

딸의 이름을 팔에 새긴 만주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우린 호수에서 사진을 찍으며 카트만두 거리를 거닌다.

2015년 네팔 대지진 이후로 여전히 복구되지 못한 흔적이 보인다.

국가무형유산이 한순간에 쓰러져 파편이 된 돌을 보며,

네팔 사람들의 아픔을 느낀다. 



카트만두 거리를 거닐면 

힌두사원과 불교 절이 같은 공간에서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한국에서 절과 교회가 함께 있던걸 본 적이 있는지 떠올리며 

종교가 함께 어울리며 공존하는 모습에 종교의 가치를 느낀다.


네팔의 에펠탑 앞에서 한 컷


"카트만두에도 에펠탑이 있어. 짠!"

···

"파슈파티나트 힌두교 사원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원이야."


카트만두 곳곳을 소개하는 만주의 말에는

카트만두를 사랑하는 냄새가 짙게 배어난다.


누군가 만주와 디바이낸시에게 묻는다. 

"저 동양 여자아이의 관광가이드요?"


만주와 디바는 대답한다. 


"우린 친구예요."


파슈파티나트 힌두교 사원

신께 숭배하는 사람들의 경건함,

잔치를 벌인 뒤 음식을 나누어 먹는 모습,

사원을 지키며 살아가는 빨간 엉덩이의 원숭이,

사원을 이루는 다양한 냄새와 에너지를 힘껏 들이마시며

사원 주변 마을을 바라본다.



파슈파티나트 힌두교 사원을 둘러본 뒤, 사원 전망대에 앉는다.

카트만두의 전경과 함께 드러나는 석양에 취한다. 


"정말 아름답다."


붉은빛이 내려앉은 카트만두를 바라보며 만주는 답한다.


"우리가 지금 함께여서 더 아름답네. 

고마워 데이지."








함께하는 소중함을 일깨우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기 때문일까.


괜스레 파슈파티나트의 석양에 

더욱 진하게 취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파슈파티나트는 매일 저녁 7시에 힌두 의식을 시작한다.


저녁 어스름이 하늘을 감싸며 힌두교 의례가 시작한다.


사람들은 경건하게 무언가를 웅얼거린다.

웅얼거림을 배경음악으로

신도들이 흔드는 방울 소리가 절에 울려 퍼진다.



찰랑찰랑



만주와 디바도 눈을 감고 웅얼거린다.

저들은 신에게 무엇을 빌고 있을까.


파슈파티나트 사원에 가득 찬 수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소망할까.


눈을 감고 나직이 웅얼거리는 기도 소리는

사원을 흐르는 강물 소리 위를 지난다.


사뭇 경건함을 느끼며 나 또한 속으로 나직이 웅얼거린다.



'만주와 디바이낸시의 바람이 이루어지게 해 주세요.

소중한 이 인연들이 행복하게 해 주세요.

한국에 있는 나의 소중한 인연들도 행복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감사함을 잊지 않게 해 주세요.'



살며시 눈을 뜨니 

다음 순서를 알리는 방울이 은은하게 울린다.

나는 기도를 마친 만주에게 살며시 삶의 이유를 묻는다.



디바이낸시(왼쪽)와 만주(오른쪽)
내 삶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어. 

우리는 삶에서 관계(relationship),
양상(aspecting),
사랑(love),
그리고 유대(bond)의 사슬에서
벗어나지 못해. 

나는 자극(impetus)의 사슬에서도 벗어나지 못하지. 
목표, 꿈 혹은 동기는 부차적인 거야. 
때로 우리는 감정을 위해 삶을 살아가지. 

가령, 나는 내 딸 사라를 위해 죽음도 이겨낼 수 있어.
이건 감정이야. 
우리는 여러 가지 사슬을 이유로 삶을 살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야. 



이런 사슬을 사는 이유, 
내 삶의 이유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카트만두의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카트만두 탐방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밝게 뜬 보름달을 보고 만주는 노래를 흥얼거린다.

"Chandrama jhain raamri chhau… 

jun bhanda ni pyari chhau. "

(Here chandrama and  Jun are moon �)

"만주, 노래 정말 좋다. 무슨 의미야?"

You are beautiful like moon and lovely than moon light.

"당신은 달처럼 아름답고 달빛보다도 사랑스럽군요.

달이 뜨는 밤이면 종종 이 노래를 부르곤 해."


집으로 돌아온 우리를 반기는 귀염둥이 친구들


집으로 돌아와

만주 딸 사라와, 디바 아들, 딸과 함께 테라스에 나온다.

밝고 동그랗게 뜬 보름달을 다 함께 바라본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라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수화로 무언가 말한다.

"만주, 사라가 지금 뭐라 하는 거야?"

"네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저 멀리 한국에서 어떻게 왔냐고, 멀지 않냐고 묻고 있어."

휘둥그레 놀라는 사라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말한다.

"거리는 멀지만, 

우린 평생 같은 보름달을 바라보았는 걸."


만주와 디바이낸시 가족들과 함께

노랗게 뜬 보름달 앞에서

다 함께 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빈다.

거칠고, 어리광스러운 네팔의 거리를,

무엇보다 순수한 네팔 사람들의 모습을,

무엇보다 따뜻한 만주와 만주 가족의 모습을

보게 되어 달에게 감사함을 고백한다. 

카트만두의 밤이 흐르고 있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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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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