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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가 데이지 Oct 10. 2024

단순히 나이가 든다고
어른이 되지 않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만난 양

* [너의 데이지 2]는 작가의 이전 브런치북 [너의 데이지1]과 이어지는 브런치북 입니다.    
      
        ▶[너의 데이지 1 : 동 · 동남아시아] 다시보기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를 배경으로 사진찍는 아이들과 어른

여행하며 만난 이들의 삶에 대해 듣는 게 좋다.


그저 일상에 불과하다고 하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하다고 하지만,

형편없다고 하지만,


그 삶도 소중하다는 사실을,

모든 삶은 저마다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너도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고 싶다.


사람들에게서 삶을 듣는 이유는

어쩌면, 그들에게 말하는 나의 몸짓이다.


너의 삶도 가치가 있다고,

모든 삶은 가치 있다고 말하는 나의 몸짓이다.







캄보디아를 찌를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앙코르와트를 찾은 관광객은 더위를 뚫고 버스에 내린다.


하루 종일 앙코르와트를 투어할 사람과 가볍게 인사를 나눈다.

말괄량이 가이드는 모두에게 자기소개를 시켜 돌아가며 이름과 국적을 밝힌다.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12세기 초 비슈누 신에게 봉헌된 앙코르유적 대표 힌두교 사원이다. 
앙코르 왕조가 전성기를 이룩한 수리야바르만 2세가 수만 명을 동원해 조성했다. 
오늘날 캄보디아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세계적 문화유산이다. 
<연합뉴스>



앙코르와트를 채운 수많은 사람들.

함께 가족사진을 찍으러 온 인도 대가족,

웨딩의 순간을 고대 유적지와 함께 남기는 신혼부부,

깃발 든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는 관광객의 행진.


앙코르와트를 이루는 오늘날 발걸음 앞에서

나 역시

세계적 문화유산을 두 눈으로 생생하게 보고 있다는 사실에 연신 감탄한다.


동시에 눈앞의 소중한 순간을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를 꺼낸다.



"감사해요. 저도 찍어드릴까요?"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간직하게 해준 이에게

으레 감사의 인사로 물어보니

본인은 괜찮다며 손사래를 친다.


잠시, 아까 자기소개를 하며 그가 대만에서 왔다는 사실을 기억나 말을 덧붙인다.


"혹시 사진 필요하면 말해요.

참, 저도 최근에 대만에 갔었는데,

대만 길거리 음식을 사랑했어요."


그는 대만 이야기를 꺼내는 한국인을 보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대만에서 온 양은

올해 26살로, 휴가를 맞아 캄보디아 여행에 왔다.


학력이 전부는 아니지만,

농담으로 웃으며 대만에서 제일 좋은 대학교를 나왔다며 본인을 소개한다.


우리는 함께 앙코르와트를 걷기도,

서로의 순간을 담아주기도,

잠시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힌두 사원의 웅장함을 느끼기도,

함께 경이로움을 나누며 앙코르 와트를 음미하기도 한다.



앙코르와트를 둘러보며 양이 찍어준 사진들


양은 본인이 겪은 경험을 공유한다.


대학교에 다니며 경험한 해외 인턴 이야기,

졸업 후 일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사회에 발을 디딘 이야기 등


앞으로 내가 갈 길에 대해 먼저 간 사람의 조언도 곁들인다.

양의 발자취의 흔적을 보며 나의 발걸음을 그려본다.


양이 남몰래 담아준 추억 한장


투어가 이루어지는 내내

양은 내게 말을 걸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이끈다.

나아가

그는 내가 알아채지 못하게 나의 모습을 담는다.


나의 순간을 포착하고,

추억을 만들어주려는 그의 마음에 괜스레 감동한다.


투어 점심시간, 우리는 영국 부부와 함께 밥을 먹는다.


점심시간.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무더위를 뚫고 식당에 들어선다.

식당 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바람은 투어 여행객을 달랜다.


양과 나는 우연히 자리에 함께 앉은 영국 부부와 대화를 시작한다.


영국에서 왔다는 부부와 자기소개를 마친 뒤,

양은 영국 정부에 대해 알고 있는 이야기로 대화의 장을 연다.


영국 정부와 관련한 최근 이슈를 능숙하게 말하며 농담까지 던지는 양.


매번 사람들과 내면에 대해서, 삶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온 나는

세계적인 시각으로 정치, 과학 등

분야를 막론해 본인의 주장을 펼치는 양의 모습을 본다.


'멋지다.'


국경에 넘나드는 지식을 겸비한 그.


예리하게 본인의 의견을 말하면서도 

적절하게 유머를 섞으며 대화를 이끌어간다.



양이 내게 보여준 본연의 모습은, 

내가 꿈꾼 미래의 모습이라는 윤곽을 그려준다.




"양, 어떻게 그렇게 대화를 잘 이끌어가는 거야?"


양은 웃으며 사실 자신은 내성적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보이지 않겠지만,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야.

세일즈에서 일을 하다 보면 수많은 인터뷰를 해야 하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야 하면서 말을 잘하는 법을 배우게 돼."



그와 대화를 나눌수록,

그와 함께 앙코르와트를 거닐수록,

그에게서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을 느낀다.



"데이지 너는 꿈이 뭔데?"


"음…. 나는 한 때 저널리스트를 꿈꾸긴 했어."


"저널리스트에서 뽑을 수 있는 능력 중 여러 분야에 다 적용 가능한 능력을 길러.

나아가 네가 잘할 수 있는 능력인지도 살펴."


"나는.. 인터뷰하는 걸 잘하고,

영상이나 미술, 음악 등 예체능에도 감각이 있고,

친화력과 적응력이 좋은 거 같아."


"맞아. 객관적으로 너의 능력을 파악하고,

훗날 직업적으로 능력을 어떻게 녹일지를 생각해 봐.

왜 너여야만 하는지의 이유를."



현실적이며 핵심적인 조언은

그가 어떠한 삶을 살아왔으며

어떠한 생각으로 삶을 대하는지 알려준다.



내게 필요한 말이자,

필요한 시기에,

그가 해준 조언은

보이지 않게 분투해 온 

그의 노력을 드러낸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책상에 앉아 씨름했을 그의 모습이.



나 역시 그런 순간이 있었기에,

나 역시 그럴 순간이 또 올 것이에,


훗날 양이 했던 고민, 도달할 결론에 

나의 방식으로 도달할 것이기에

경험을 바탕으로 다져진 양의 조언을 힘껏 들이마신다. 



일몰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보이지 않는 지식의 무게를 본다.



앙코르 와트의 마지막을 장식할 일몰을 준비한다. 

이미 명당자리를 꿰고 앉은 사람들을 피해 조그만 그늘 아래로 자리를 잡는다.

일몰을 기다리는 핑계로 우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나는 사실 요리사를 하고 싶었어."


능숙하게 양복을 입고 경영 전략을 짤 것 같은 그에게서

뜬금없는 고백을 듣고 놀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요리보다 다른 일이 맞겠다고 생각해서, 

요리는 취미로만 하게 되었지."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팽팽한 줄다리기이자

나의 오랜 고민인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국 좋아하는 것만을 쫓을 수는 없어. 

그렇다고, 잘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하는건 슬픈일이야.


나도 지금 일을 하면서 지루함을 느껴 이번 연말에 그만둘거야.

후에 남아메리카 여행을 가고 싶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서


나는 그에게 더 좋은 삶으로 바꾸지 못해

껴온 무력감에 대해 토로한다.


"더 좋은 삶으로 바꿀 거라고,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겠다고 말해오지만,


사실 내가 이걸 한다고 전체적 구조가 바뀌는 게 아니잖아.


가령 환경을 보호한다고 우리가 물티슈 한 장을 덜 쓰는 것 보다

실질적으로 기업의 친환경 정책이 더 효용성이 있는 거잖아.

그런 부분에서 종종 나는 무력감을 느끼는 거 같아.


물론 조그만 인식 변화의 힘을 믿어.


믿지만, 가끔은,

여행하면서 빈부격차를 가까이서 볼 때

가끔은, 무력한 마음이 들기도 해."



양은 내 말에 깊이 공감하며 말한다.


"나도 젊은 시절, 세상을 더 좋게 만들고 싶던 꿈이 있었지.

학교 졸업 후 일을 시작하고 어느새 1년 반이 되니,

이제는 나의 삶을 더 낫게 하는 게 목표가 되더라."


"젊은 시절이라니,

사실 나랑 별로 나이 차이도 안 나면서!

너도 여전히 어린걸 (웃음)"



웃으며 말하면서도 나는 알고 있다.

단순히 나이가 드는 게 늙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나이가 들면서 생각도 함께 늙어야 한다는 사실을.


단순히 성인이 되는 것과,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다르다는 사실을.



어느새 붉은 어스름으로 앙코르와트를 덮친 석양을 보면서

양을 바라본다. 


시간이란 여행 속 

경험을 농축시켜 나온 생각과 함께 

늙어가는 사람.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내 삶의 이유라, 삶은 게임과 같아.
혹은 펼쳐진 지도 위의 탐험과 경험을 모으는 게임 같은 거지. 
인생에서 주어진 걸 경험하는 거 같아.
기쁨이나 슬픔이나 고통의 모든 순간 같은 거 말이야. 
목표라고 한다면, 간단해.
나와 내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도록 노력하는 거지.



일몰이 어스름 지게 앙코르 사원을 감싸안으며

하루 종일 하늘이 내뱉은 뜨거운 열기는 주춤 시원한 바람이 되어 찾아온다.


곧 껌껌해질 기미를 눈치채며

양과 함께 앙코르와트의 언덕을 내려와 숙소로 돌아가는 차에 오른다.






데이지 (신예진)

enjoydaisypat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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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 


브런치 외에 인스타그램블로그와 오마이뉴스를 통해 더 자세한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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