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피렌체에서 만난 발레리아
"예진아! 너는 인간관계를 어떻게 다뤄?"
"내가 좋은 사람이려고 노력해.
좋은 사람을 만나려면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하니까.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토가 있어.
나에게 중요한 이들을 놓지 않되,
모든 사람을 붙잡지 않을 것.
스쳐갈 인연은 스쳐가게 두고
원하는 인연은 머무르게 할 것.
좋은 인연이 되기 위해 나를 가꿀 것.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할 것.
가족이 내 삶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줬거든.
후회하지 않도록 가족들에게 표현하려고 노력해."
로마에서의 휴식을 끝으로 피렌체로 향한다.
르네상스 문화가 발현한 곳인 피렌체는
거리 곳곳에 예술과 사랑을 품는다.
피렌체 호스트이자 33살의 바이올리니스트 발레리아는
무거운 배낭을 이끌고 찾아온 여행객을 친절하게 맞이한다.
창가에 앉아 담배를 물곤 하던 그는
냄비에 파스타 면을 얹어 간단히 파스타를 만든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는 은밀한 우리 만남의 촉매제가 된다.
발레리아는 7살 때 본 연주회 이후,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17살 즈음 잠시 바이올린을 그만두었지만,
다시 시작해 바이올린 전공과
법학을 부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했다.
"이탈리아는 매우 부패한 나라여서
권력에 따라 법이 움직이더라.
내가 가진 이상이 법을 공부하면서 현실에 부딪히면서 법 분야를 관뒀어."
이탈리아에 횡행한 마피아와 같이
사회적, 범죄적 문제를 해결하는 프로파일러를 꿈꿨던 순간도 있지만,
그는 바이올린 연습으로 하루를 보내며 삶을 지낸다.
어려서부터 동양 문화에 끌린 그는
2022년 일본과 한국 여행을 마친 그는 자신의 여행기를 들려준다.
"한국 여행하면서 무언의 끌림을 받았어.
'나, 이곳에 살아야겠다'라는 끌림 말이야."
피렌체로 돌아온 그는 링크드인을 통해 일본이나 한국에서 일할 방법을 찾고 있다.
바이올린을 이용해 관련 오디션과 시험을 준비 중이다.
"혹시 알아?
우리가 같은 언론사에서 일하게 될 수도"
저널 쪽에 관심 있다는 나에게
그는 본인도 음악 관련 글을 신문에 기고한다고 말한다.
법학을 전공한 뒤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면서도
훗날 저널사에서 만날 수 있다고 장난스레 미소 짓는 그를 바라본다.
동시에 한국에서 친구가 한 말이 떠오른다.
법을 공부해 왔다는 이유로 본인의 미래를 자기가 걸어온 길에 맞추던 친구.
"지금까지 법 쪽 학위를 받았으니 어쩔 수 없지."
끌리지 않은 마음은 그에게 확신을 주지 못하지만,
그가 쌓아온 시간은 그를 끌고 있었다.
친구의 모습이 스치며 발레리아를 바라본다.
지난 자기 길에 묶여 살지 않고
앞으로 가능성만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이 보인다.
미소에서 드러나는 그의 자유분방함은 내게 말한다.
"내가 지난 시간 법을 공부했고, 바이올린을 연주했다고,
앞으로도 억지로 법과 바이올린 관련 일을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지난 시간 때문에 앞으로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이야.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이 무엇인지에 초점 삼고
나아가는 모습을 가져."
바이올린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발레리아는 얼굴이 피곤으로 수척하지만,
나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을 위해 나갈 채비를 한다.
"발레리아, 피곤하면 쉬어도 돼."
"아냐, 나도 크리스마스 마켓에 가고 싶은걸!"
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첫 크리스마스 마켓을 맞이하는 나는
빠알간 산타 옷을 입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낸다.
설렘을 가득 안고 두오모 성당에 이른다.
마치 만화 속 세상에 온 듯한 두오모 성당은
성당의 이미지를 탈피한 외관을 통해 한순간에 우리를 이끈다.
웹툰 작가가 펜으로 쓱싹 그리듯이
한순간에 이차원 존재가 불쑥 현실 세계에 튀어나온듯하다.
피렌체를 감싸는 크리스마스의 따뜻한 분위기도 생기를 더한다.
삼삼오오 모인 아이들,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연인들,
장난치며 웃는 친구들
거리를 이룬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을 보내며 크리스마스 마켓을 채운다.
독일식 샌드위치를 먹으며
우린 사랑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발레리아, 사랑에서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사랑에 있어 내게는 '자유(freedom)'가 가장 중요해.
데이지 너는?"
"미래의 나는 다른 답을 분명히 가지겠지만, 지금은 ···
나는 무엇보다도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어.
서로를 향한 뜨거운 마음 있잖아. (웃음)
사랑하고 성장하고 싶어.
서로에게 성장이 되어주는 사랑을 원하기에
'성장'이라고 말할 수 있겠네."
그는 서양과 동양 남자의 차이점을 말한다.
"서양 남자(대게 이탈리아)는 본인이 우쭐하며 과시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동양 남자는 상대방에게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거 같아.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아니라 '너'와 이야기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다면 이탈리아 남자는 바로 키스를 하겠지만,
동양 남자는 부끄러워하며 번호를 물어볼 거야."
"상대방도 내게 관심이 있는지
조심스레 살피는 문화이긴 하지."
"침묵에 있어서도 달라.
서양에서 데이트할 때 침묵이 있는 건,
성공적이지 않았다는 의미지만,
동양에서 침묵은 서로의 긴장감을 만들고,
서로를 살필 때 쓰이는 거 같아."
경험을 기반으로 명확하게 관찰한 그의 분석을 들으며
놀라면서도 한참을 웃는다.
숨김없이 드러낸 그의 비유는
생생함을 넘어 수줍음과 외설 사이를 횡단한다.
"동양 남자는 고양이 같아.
버튼을 누르면 드래건으로 변신했다가 끝나면 꽃으로 변해."
( = 처음에는 고양이처럼 매우 수줍어하지만,
성적으로 버튼이 눌려지면 드래건처럼 변하며,
관계가 끝나면 꽃처럼 보듬어주는 따뜻함을 가졌다는 뜻.)
아슬아슬 횡단하는 그의 말에 배꼽을 잡으며 웃기도,
몰랐던 세계를 탐험하듯 새로운 정보로 배우기도 하며
왁자지껄 크리스마스 마켓 분위기에 취한다.
마켓에서 팔던 동부 유럽의 따뜻한 와인을 손으로 감싸며 집으로 돌아온다.
따뜻하게 거리를 데우는 와인은
달달함까지 더해져 피렌체를 달콤하게 만든다.
우피치 미술관 주위를 걷는다.
예술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후원한 메디치 가문의 흔적,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내로라하는 천재들의 동상을 본다.
"나는 단테를 좋아해.
당시, 다른 시인은 시를 통해 젊은 여자에게 구애하기 바쁜데,
단테는 자기 시를 통해 늙은 아내에 대한 사랑을 녹여냈거든."
르네상스가 시작된 피렌체 거리는
걷는 것만으로도 예술적인 느낌을 물씬 받는다.
발레리아는 각 동상을 설명하며
자기 예술관을 말한다.
그의 모습을 보며
교양 있는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는다.
문화를 알고,
자기만의 예술을 갖는 게
참으로 멋진 일이라는 걸 알려준다.
우리는 프랑스 쿠키와 따뜻한 차를 끼고 대화를 이어간다.
"데이지,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해.
즐기는 거야."
조심스레 삶의 조언을 묻는 내게 발레리아는
여행이 끝나서도, 즐기는 삶을 살라고 말한다.
희망이 없는 곳이, 꿈이, 비전이 없는 곳이 지옥이다.
-단테
우린 단테의 말을 시작으로
피렌체를 예술의 도시로 만든 이들의 철학을 공유한다.
발레리아의 삶과 철학을 흡수하며
인생을 풍부하게 만드는 지혜를 배운다.
사랑의 기술,
예술적 교양,
그리고,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법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다.
우리의 데이지는 공통점이 많지.
계속해서 여행하려는 데이지,
계속해서 문화와 장소를 발견하려고 하는 데이지.
사람과 좋은 추억으로 함께 행복하고자 하는 데이지.
이 외에도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은
예술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야.
나는 언제나 예술과 연결되고 싶어.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지.
예술은 우리의 감정을 공유시키니까.
자유, 감정, 사람들이 예술을 통해
감정적인 삶(emotional life)을 살아갔으면 좋겠어.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눈꺼풀을 두드리는 얕은 피곤을 받아들인다.
꿈나라에 곧장 빨려들 것 같은 순간
발레리아는 말한다.
"맞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걸 까먹었네.
사랑도 내 삶에 있어 매우 중요해."
"동의해.
내 삶에 있어서도 사랑의 형태가 무엇이든
사랑은 중요한 가치 중 하나야."
"단테는 자신의 책 마지막 문구에 이렇게 말했어.
'사랑은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인다.'
(amor che move il sole e le altre stelle
love that moves the sun and the others stars)
실제로,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등장하기 전에
단테는 이미 태양을 중심으로 별이 움직인다고 생각한 거지.
나아가 그 태양을 움직이는 건 사랑이라고 말이야."
그의 말을 끝으로
우린 끝없이 달콤한 잠으로 빨려간다.
단테의 마지막 문구를 품은 채.
데이지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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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데이지]는 21살 신예진(데이지)이
대학교 휴학 뒤, 1년 간 전 세계 45개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에게 '삶의 이유'를 묻는 여행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