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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야 하는 길

by 라구나 Jan 17. 2025


'온라인 명함'


협상가의 말이 맞았다.
회사에서 회사 밖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지만 회사 밖에 나가는 순간 나는 평범한 '아저씨'가 돼버린다.
내가 빨간 옷을 입고 있으면 '빨간 옷 입은 아저씨' 검은 모자를 쓰면 '검은 모자를 쓴 아저씨' 아무도 나를 모른다.

"그럼 결국 회사에서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동안 회사 밖의 나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협상가는 기분 좋은 미소를 보이며 싱긋 웃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돈 좀 더 벌어보겠다고 하고 있는 블로그도 '온라인 명함'이 될 수 있는 것일까?
"온라인 명함이라는 것이 아직 저도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필요하긴 한 것 같아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온라인 명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 지금까지 온라인 명함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잖아요."
"제가 그랬나요?"
"예, 지금까지 그 이야기만 하셨거든요."
"하하하, 온라인 명함은 수단일 뿐입니다. 온라인 명함에 들어갈 '가치'가 중요한 것이지요."
"가치요?"
"옙, 가치 말입니다.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좋아하는 것을 가치 있는 일로 만들라고요.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그때, 잣나무 사이의 따사로운 햇살이 내 눈을 비췄다.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걸음을 멈췄다.




순간 내 머릿속에 번개가 내리치는 듯했다.


글을 쓰는 것이다.

책을 만드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알고 있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이다.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매일 같이 글을 쓰고 있지만 책을 쓸 생각은 하지를 못했다.

'내가 작가가 될 자격이 있나?'

공대를 나온 나에게는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글은 누구나 쓸 수 있고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사랑한다.

책. 결국 내가 쓰는 글을 길게 쓰면 책이 될 수 있다.
책으로 만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내 경험을 나누자. 대기업 직장인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았는지, 대기업 직장인이 되어서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대기업 직장인을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그 이야기를 하자.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쓰자.
6명의 직장인을 만나서 얻은 깨달음을 책으로 쓰자.

"협상가님, 잠시만요."
꽤나 멀리 떨어진 협상가가 걸음을 멈춰 뒤를 돌아봤다.
"인생 연봉 협상, 꼭 해야 하는 것인가요?"
"뭐라고요? 잘 안 들립니다."
"인생연봉 협상, 그거 꼭 해야 하는 것이냐고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아니에요 제가 뛰어갈게요!"

붉은 흙길을 뛰는 걸음이 가벼웠다.
붉은 흙길에 밞는 기분이 푹신했다.

"협상가님, 인생연봉 협상 지금 꼭 해야 하는 것인가요?"
협상가는 아빠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60억 원으로 하시려는 것 아니었나요?"
"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더 높게 부르시려고요?"
"아, 아니요. 전 인생연봉 협상을 하고 싶지 않아서요."
"갑자기 왜 그러시나요?"
"돈, 돈이 중요한 것 같지 않아서요."
"그럼 무엇이 중요합니까?"
"말씀하셨잖아요, '가치'가 중요하다고."
"가치라..."
"옙, 전 가치만 생각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인생연봉 협상은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놀았다고 혼날 수는 없지요."
"그러면, 백지수표로 해주세요."
"아무 숫자도 쓰지 않겠다는 것인가요?"
"옙, 전 어떤 숫자도 적지 않겠습니다."
"무슨 생각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요?"
협상가의 질문에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답을 했다.




"책을 쓸 거예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걸 오래 할 수 있는 것이 책을 쓰는 것이잖아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쓸 거예요. 직장생활, 부동산, 이직 등등 제가 경험한 것들을 책으로 쓸 거예요. 읽은 사람들은 분명히 도움을 얻을 거예요. 가치가 있을 거라고요"
"오, 좋아하는 것을 가치 있는 일로 만들었군요."
"옙, 책을 쓰면서 그 과정을 블로그로 공개를 할 거예요. 제가 성공하는지 실패하는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그 과정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지요. 책을 쓰는 대기업 직장인 아빠로 명함을 뿌리는 것이지요. 온라인 명함을요."
"오호, 그것도 좋은 생각이네요. 아무리 맛있는 초밥집도 간판이 없으면 아무도 찾아올 수가 없지요."
"옙, 그래서 저는 인생연봉 협상을 지금 할 수가 없어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요."
"하하하, 아까까지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어디 가고 새로운 사람이 되셨군요. 이제 제 역할은 여기까지인 것 같습니다. 저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저는 어디로 가야 돌아갈 수 있나요?"
"저에게 길을 물어보신 것인가요?"
"아, 그래도 이제 돌아가야 하니 알려주셔야지요."
"길은 두 개뿐입니다. 저랑 함께 걸어온 길, 저랑 걷지 않은 "
하얗고 아무것도 없던 협상가의 사무실. 그곳에는 돌아가는 길이 없음이 확실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하나뿐이었다. 끝없이 잣나무가 이어진 붉은 흙길.


"앞으로 가야 하는군요..."
협상가는 내 어깨에 자기의 오른손을 올렸다.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치고 힘들고 괴로운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길을 갈 건가요?"
"그게... 제 길이잖아요."
협상가는 비어있는 다른 어깨에 왼 손을 올리고 내 눈을 지그시 쳐다봤다.
"전 당신을 응원합니다. 다음에 다시 협상을 하시지요. 그날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대신, 너무 늦지는 마세요. 제가 젊어 보여도 나이가 좀 있습니다."
협상가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양손에 힘을 쥐고 내 어깨를 토닥였다.
마치, 내가 자신의 과거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듯이...
"옙, 협상가님, 다시 또 만나러 오겠습니다."
"예, 저는 사무실로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여기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제가 책을 쓰면 꼭 읽어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죠, 많이 기대됩니다.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한 번에 성공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옙, 제가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협상가는 세상 인자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그리고 몸을 돌려 지금까지 같이 걸었던 길을 돌아갔다. 한걸음 두 걸음 세 걸음...

나도 몸을 돌려 걷지 못한 길을 쳐다보았다.
저 끝이 어디일까?
저 끝에 무엇이 있을까?
저 끝에 도착하면 나는 행복할까? 자유로울까?
결국, 끝까지 걸어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날씨는 좋다. 바람도 좋다. 햇살도 좋다.
비가 와도 좋을 것 같고 눈이 와도 좋을 것 같다.
'해보자, 해보는 거다'
붉은 흙내음과 전나무 회색바람이 섞이어 내 몸을 가볍게 만들었다.
나는 길을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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