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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 선 Nov 05. 2023

완치하려 하지 말기!

힐링조차 지칠때

우린 나를 미워하는 잘못된 방식으로 아주 오래 살아왔어요.

이건 습관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바로 내 탓으로 돌리는 습관적 생각방식.

버림받는 게 두려워서 나를 먼저 버리고 남을 택하는 생존방식에서 비롯된 습관적 선택.

내가 날 미워하는 만큼, 남 역시 미운 눈과 비릿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통찰력의 습관적 필터.


우리가 날 사랑하는 방법을 통해 하려는 건 이 모든 습관들을 끊고, 새로운 습관으로 덮는 것이에요.

나를 위한, 사랑에 의한 새로운 습관들로.


오랜 이 악습을 버리는 건 그저 술, 담배 끊는 것처럼 무조건 참는 것관 다릅니다. 왜 나한테 이런 악습이 생겨났는지 이해해야 하고, 악습 때문에 밀린 감정을 몰아서 느끼고, 나와의 화해를 통해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을 나를 사랑하는 방법들로 채워가야 합니다.


2009년 ' 유럽사회심리학저널'에서는 특정한 행동을 매일 같은 시간에 행동하도록 한 결과, 습관이 몸에 배기까지(그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더욱 힘든 상황) 평균 기간은 12주였다. 새로운 습관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총 3개월 정도가 걸린다는 얘기다


매일매일 같은 행동을 해도 단순한 행동을 습관들이기까진 12주가 걸립니다.

우린 아주 여러 가지 악습을 끊어내고 프로세싱하고, 새로운 습관과 관점 몇십 개를 다시 나에게 프로그래밍해야 해요.


자기 사랑, 힐링, 트라우마에서 치유, 우울증과 불안장애 치유 중엔,

나에 대한 이해가 되고 나면 번쩍이는 것처럼 "아! 이거구나!" 하는 깨달음이 몇 번 찾아오게 돼요. 마치 베일에 싸인 것처럼 답답했던 무언가가 확 벗겨지는 느낌이 나면서 "아, 내가 이래서 이런 행동을 했던 거구나!" "이 기억이다!" 이런 순간들. 그 카타르시스가 얼마나 감동적인지. 얼마나 시원하고 희망적인지.

하지만 몇 번을, 수백 번을 이 카타르시스를 느껴도 다음날 자고 일어나면 또 예전의 생각방식으로 돌아가고, 또 똑같은 불안은 찾아옵니다. 그러면 깨달음의 순간 느꼈던 고도만큼, 곤두박질치는 실망감이 덮쳐옵니다. 아니, 더 암담할 수도 있어요. 아 - 그렇게 강렬했던 순간에도 불구하고 난 제자리인 걸까? 내 목을 옥죄는듯한 이 감정들과 생각방식들에서 난 도망치지 못하나?


힐링을 하면 할수록, 카펫 속에 대충 밀어 넣어 숨긴 먼지를 하나하나 털어낼수록, 점점 이 카타르시스적인 깨달음의 순간 역시 줄어요. 웬만한 건 다 이해하고 털어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들의 흔적들은 훨씬 느리고 체감하기 어려운 속도로 내 안에서 소멸되거든요.

내가 느끼기엔 한 발자국은커녕 새끼발톱만큼도 전진하고 있지 않다고 느껴질 수도 있어요.


아픔은 있을 땐 너무 크게 느끼는데 사라지면 그 빈자리가 크게 티 나지 않더라고요. 스멀스멀 사라지거든요. 그리고 그 빈자리를 우리가 언제나 행복, 극락으로 채울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빈자리 그대로 남겨둬야 할 때가 많아요. 그게 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트라우마틱했을지언정, 그 자리는 언제나 자극적인 감정들로 채워졌었으니까요. 근데 그 빈자리 공석으로 둬도 괜찮습니다. 가끔은 익숙한, 혹은 새로운 슬픔이 그 자리에 앉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 그 자리는 더 이상 슬픔만의 것이 아니에요. 빈자리가 되었으니 행복도 찾아와 앉아갈 수도 있고, 그 빈도수가 슬픔보다 많아질 것입니다. 평화로워요. 더 이상 슬픔의 지정석이 아니에요.


힐링은 그래서 새끼발톱만큼 진행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아직 자신과의 화해를 진행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고, 아픔으로 가득 차있는 세상이에요. 우리는 월세도 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원치 않는 경쟁에 언제부턴가 목숨을 다하고 있어요.

매일매일 힐링에만 집중하면서 자기 사랑의 습관을 들여도 오래 걸리는데, 이런 "방해" 가득한 곳에서 나를 돌볼 여유가 언제나 있진 않겠죠. 그럼 나의 진전은 점점 더디고 지치게 다가올 거예요.


그래도 계속하세요.

생각날 때마다 하세요.


딱 하나를 약속할 수 있다면, 제자리걸음 같아서 좌절스러운 날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포기하지 않는 날들이 모이면서 내가 나를 믿게 돼요. 아 - 나는 나를 포기 안 한다. 우린 계속 앞으로 나아가겠구나. 뒤로 한발 물러나도 언젠간 두 발자국 나아가니까 괜찮겠다.


완벽한 힐링이란 게 존재할까요?

부정적인 감정이 아예 없는 삶이란 얼마나 무미건조할까요.


전 어느 순간 힐링까지 무슨 레이스 하는 것처럼 치열하게 하고 있더라고요.

내 마음의 치유가 무슨 경력인 것처럼, 마치 실적인 것처럼,

우울하고 익숙한 패턴에 빠지면 "하.. 너 또 왜 그러냐 이거 이미 해결했잖아!!!" 이러면서 자책하고,

내가 힐링을 해서 아직 안 한 사람들보다 우월하단 착각에 빠져서,

점점 본질을 벗어났어요.

내 치유는 나를 치유하려는 게 아니라 나를 치장하는 또 다른 무언가가 돼있었어요.


근데 우리가 어떤 지점에 도달했다고 "됐다! 이제 끝!!" 하면서 이 습관들을 그만둘 건 아니잖아요. 끝을 정해놓으면 이 치유의 여정을 내가 나아갈 때마다 도착선이 그만큼 멀어지는 것처럼 느껴져요.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걸 내려놓는 것 역시, 치유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우리가 지치지 않았으면 해요.

나의 치유가, 나를 또다시 증명하려는 것에 오용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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