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연속 방문하다.
어제는 오후에 쉬는 날이어서 일찍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책을 읽다 보니 문득 커피 한잔이 생각났다. 집에 있는 카누나 마실까... 팩에 들어 있는 커피빈 액상커피를 마실까... 캡슐은 안 쓴 지 오래고, 드립 내리기는 귀찮기도 귀찮지만 원두도 오래된 것 밖에 없고, 그냥 참을까... 하다가 산책도 할 겸 '출근길을 바꾸게 만들 것 같은 커피'집에 나가보기로 했다. 걸어 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가한 평일 오후를 즐기면서 천천히 커피집까지 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서 주문을 하면서 "마시고 갈게요"라고 했더니, 숫기 없는 사장님은 '평일 오후에 무슨 일로...?'라는 당황스러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사장님 : "아... 로스팅해야 해서 시끄러운데 괜찮으시겠어요?"
나 : "괜찮습니다. 잠깐 앉아있다가 갈 거예요."
(오! 로스팅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군!)
좁은 가게의 절반은 커피 로스팅 머신이 차지하고 있어서 앉을만한 자리가 딱 네 개 있다. 창가에 간신히 붙여서 만든 긴 테이블에 세 자리, 카운터 바로 앞에 사장님을 마주 보며 앉을 수 있는 한 자리. 사십 대의 아저씨가 숫기 없는 젊은 남자 사장님을 마주 보고 앉을 수는 없어서 창가 자리에 앉았다. 그마저도 옆에 원두 포대가 가까이 쌓여 있어서 많이 좁다. 잠시 후에 커피가 나왔다. 따뜻하게 데운 머그잔 위로 올라온 크레마가 예쁘다. 향도 좋다. 한 모금 마셔보니 깔끔하고 고소하지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맛이 좋다. 역시 나오길 잘했다.
숫기 없는 사장님은 아무 말없이 로스팅 머신 옆에 노트북을 켜고 앉았다. 뭔가 시끄럽게 기계를 움직이는 건 줄 알았는데 로스팅 머신과 연결된 노트북 화면 속 그래프 같은 것을 유심히 보고 있다. 주식은 아닌 거 같은데... 요즘은 로스팅을 저렇게 하는 건가... 궁금한 게 많지만 사장님이 부끄러워할 것 같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다. 내가 있든지 말든지 화면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잠시 후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기계가 돌아간다. 지금은 없어진 우리 치과 위층에 있던 커피 로스팅하던 곳은 커피만 볶기 시작하면 위아래층 복도가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찼었는데, 여기는 소음만 조금 있을 뿐 구수하니 좋다. 머그잔 바닥이 보일 때까지 커피 맛이 좋다. 마음에 들었다.
삼십 분쯤 앉아 있다가 "잘 마셨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일어났다. 수줍은 사장님이 뭐라고 말하며 "안녕히 가세요."라고 하는데 앞에 말은 잘 못 들었다. 웃으면서 말하는 거 보니 나쁜 말은 아니었을 텐데... 다시 물어보면 부끄럽겠지? (저 청년 웃을 줄도 아는구먼...)
오늘 아침. 아이들과 아내가 먼저 등교와 출근을 하고 집을 정리하고 출근하려 하니 평소보다 시간이 조금 늦었다. 어제 그곳에서 커피를 사서 살까? 병원 밑에 있는데서 사갈까? 스타벅스에 들를까? 그냥 가서 캡슐로 마실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차를 몰고 나와 평소 가던 길과 카페로 향하는 길이 나뉘는 곳까지 오도록 고민스럽지만 결국 카페로 향한다. 사장님은 나를 알아보는 것 같았지만 아는 척하지 않는다. 텀블러를 건네고 주문을 한다. 카드 결제를 하며 첫 포인트 적립을 했다. 나는 이제 이 카페의 단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