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5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세탁기를 샀다.

- 찌질 점빵 치과원장에게 예상치 않은 지출은 늘 힘들다. 

by 점빵 뿅원장 Mar 11. 2025

  어제 오전에 직원이 "원장님, 세탁기에 물이 새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A/S 부르세요."라고 답했고, 오후에 A/S 기사님이 오셨다. 참고로 우리는 예전에 사용하던 건조기에 미니워시 세탁기를 아래에 붙여서 사용하고 있다. 치과가 작고 세탁물이 많지 않으니, 최대한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제품을 사용하려고 한다.  

  기사님은 여기저기를 뜯어보더니 뚜껑을 연결하는 힌지 부위가 깨져서 새는 것 같다며 부품을 받아서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늘 그렇듯이 교체해 달라고 했고, 한 시간쯤 뒤에 부품을 받아서 다시 오신 기사님은 힌지부위도 문제인데 뚜껑부위도 문제란다. 아까까지 6만 원이던 수리비용이 15만 원 정도로 올라갔다. 그래도 우선 교체를 해달라고 했더니 조금 더 살펴보다가 뚜껑을 교체해도 본체와 뚜껑이 연결되는 부위 자체에서 그동안 물이 새서 내부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 다시 추가로 20만 원이 넘게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갑자기 짜증도 나고 의심이 생겼다. 어지간하면 이런 것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아서 기사님의 진단대로 수리해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계속 말이 바뀌고 수리 범위가 늘어난다. 처음에는 힌지, 그다음에는 뚜껑, 그다음에는 본체부속까지. 이 기사님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그냥 새로 사라고 하고 싶은 걸까? 아니면 수리를 하고 나서 다시 문제가 생겼을 때를 대비하기 위한 방어를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리를 해야 하는 원인을 잘 모르는 것일까... 답답한 마음에 "그러면 새로 사는 게 더 나을까요?"라고 물었더니 "그건 또 아니고..."라는 답이 왔다. 


  우선 뚜껑과 연결부위는 균열이 있는 게 보여서 교체를 요청했고 본체 쪽 부속은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부속이 없어서 2~3일 이내에 배송을 받아서 교체해 준다는 약속과 함께 기사님은 돌아가셨다. 혹시 새로 구매를 하게 되면 연락을 드린다는 말씀도 드렸다. 


  구매시기를 보니 건조기는 먼저 산 거여서 좀 오래되었고, 공간을 줄이기 위해 추가로 사서 아래쪽에 붙인 미니워시는 5년 정도 되었다. 건조기는 한 번도 문제가 있었던 적이 없는데 미니워시는 벌써 몇 번이나 수리를 한 것 같다.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세탁기는 용량이 적어서 매일 돌리기도 하고, 이전에 수리할 때마다 작은 용량에 많이 담지 말라고 해서 적게 담아 세탁을 하다 보니 불편하단다.

  아이고... 드디어 새로 때가 되었나 보다. 건조기와 세탁기를 바라보니 "그래, 너도 고생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계속 수리해서 사용하다 보니 이번까지 고치고 나면 수리비만 세탁기 가격을 넘어설 것 같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져버렸다. '이건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인터넷으로 세탁기와 건조기가 둘 다 있고 우리 치과에 맞을만한 작은 사이즈가 있나 찾아본다. 생각보다 많이 비싸다. 게다가 큰 사이즈와 가격차이가 많이 나지 않으니 더 망설여진다. 가격을 보고 결정하려고 이것저것 알아보다 보니 그냥 아래쪽에 붙이는 미니워시만 새로 살까 하는 고민도 된다. (이럴 때면 내가 지나치게 쪼잔한 것 같아서 나 자신에 대한 회의마저 든다.)

  고민하다 고민에 지쳐 그냥 병원의 상황에 가장 맞는 - 세탁기와 건조기, 작은 크기, 가장 단순한 색깔 - 것으로 결정했다. 가격은 내가 어쩔 있는 게 아닌데 어쩌겠는가... 다시 벌어야지... 


  경제가 어렵고, 사람들이 지갑을 닫다 보니 치과에 와서도 아픈 것만 해결해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도 요즘 주머니 사정상 세탁기의 아픈 부분만 해결해주고 싶지만, 이젠 너무 오래되고 병들어 버린 것 같아 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결제를 해놓고 나니까 마음은 편하다. 당분간은 다시 고장 날 걱정이나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지. 

  

  단군 이래로 경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지만, 그래도 좀 좋아지면 좋겠다. 아껴 쓰고 고쳐 쓰는 건 좋은 일이지만, 너무 오래된 물건은 억지로 수명을 연장해서 사용하기보다는 적절한 시기에 교체를 하면 좋겠다. 그리고 환자분들도 아픈 것만 해결하는 것보다는 더 잘 먹고, 더 잘 말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꼭 필요한 치료는 편안하게 받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혹시 예상치 않은 지출이라도 말이다. 


  그나저나 새로 구입한 세탁기는 언제 오려나... 빨리 와야 할 텐데... 


 


  

작가의 이전글 학회에 간 이유.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