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정지아
이 책은 정지아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소설이기는 한데 대부분이 사실에 바탕에 둔 자전적 소설이다. 추측건대 픽션이라고 볼 만한 요소는 소설 등장인물과 작가님을 포함한 실제 인물들의 이름이 다른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읽다 보니 소설 같은 느낌보다는 이 책은 부모님 전상서라고 해야 맞을 거 같다. 그럼에도 소설이니 만큼 간략하게 내용을 요약하고 왜 부모님 전상서 같이 느꼈는지 내 생각을 서술해보고자 한다.
소설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전개된다. 대표적 등장인물들은 '나'=아리, 아버지, 어머니 등등
어느 날 '나'는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에서 고향으로 전남 구례 반내골로 내려온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 아버지와 얽혔던 크고 작은 인연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에 방문한다. 그들로부터 내가 몰랐던 아니면 알고도 모른 척했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알게 되고, 그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 오해, 분노와 같은 감정으로부터 '해방'되는 내용이라고 간략하게 소개할 수 있겠다.
소설 속(실제로도) 아버지는 과거 사회주의 운동 즉 빨치산으로 행동했던 과거 전력이 있고 소설에도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꽤 자세하게 묘사된다.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에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이념 간의 갈등이지만, 이 '주의', '사상'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고자 한다. 작가님이 사상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인생을 다루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언급되었을 뿐...
아무튼 소설 속 아버지는 사회주의자였고 사회주의 운동을 했다. 그리고 해당 조직에 간부까지 할 정도로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에 사회주의자로서의 '색채'가 강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색채'가 강하다는 것의 단점은 필연적으로 타인들이 아버지에 '오해'또는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아버지의'색채'가 현실적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소설 속 P76 일부분을 직접 인용해 보면...
"다만 당하기로 따지자면 내가 더 당했다. 아버지는 선택이라도 했지, 나는 무엇도 선택하지 않았다. 나는 빨갱이가 되기로 선택하지 않았고, 빨갱이의 딸로 태어나게 선택하지도 않았다. 태어나보니 가난한 빨갱이의 딸이었을 뿐이다. 선택할 수 있다면 누군들 빨갱이의 딸을 선택하겠는가.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당연히 이부진이나 김태희의 삶을 선택했을 것이다"....(중략)
이렇듯 직접적으로 소설 속 '나'는 아버지의 사회주의 활동으로 인한 피해로 인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담겨 있다. 그 피해들은 소설 뒷부분에 보면 자세히 나오는데 간단히 언급해 보면... 공부에 어려서부터 재능이 있던 '나'였지만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출세길이 당연히 막힐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고3 때 학업을 등한시했다. 또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도 끝내 이루어질 수 없었다. 소설 속 '나'뿐 아니라 그 집안에 여러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피해를 입었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와 싸이가 썩 괜찮던 '나'였지만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조금씩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우연'적 때문에(위에서 언급했듯) 아버지와 관련된 크고 작은 인연들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모인다. 그 기억의 조각들이 조금씩 모이니... 철저히 사회주의자 같던 아버지는 남에게 한 없이 따듯한 휴머니스트 같은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혼혈 가정의 방황하는 아이에게 엇나가지 않게 도와주고, 여호와의 증인 믿다가 집에서 내쫓길 뻔 한 친척도 구해주었고,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 '처단'을 기다리고 있던 자본주의 순경을 구해주기도 했으며 아버지가 그리웠던 한 청년에게는 기꺼이 아버지의 품을 내어 주었다.
이런 기억의 조각들이 맞춰지고 나서야 아버지는 철저한 사회주의자의 '색채'로부터 '헤방' 될 수 있었고 '나'또한 사회주의주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오해 선입견으로 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야 지난 세월 동안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같은 감정들이 슬픔으로 바뀐다. 소설 속 내용이지만 실제로 겪었던 일이었을 것이고 실제로 작가님이 그런 과정의 감정들을 겪어기에 소설로써 얘기를 풀었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단순한 소설이 아닌 아버지에 대한 전상서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인식의 한계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즉 누군가를 온전히 그 사람 그 자체로 보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우리가 누군가를 완전히 합리적으로 판단하려면 독심술사이거나 시간의 제약이 없는 사람이어서 시종일관 내가 판단하고자 하는 사람과 붙어 다니면서 내가 수집한 정보들로 귀납적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다. 전자는 애초에 우리 능력 밖이고, 후자는 전자처럼 아예 불가능까지는 아니지만 실행하기에 매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선입견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우리는 불완전한 인식의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오해하기도 하고 오해받기도 쉽다. 그것을 결코 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가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진 존재이기에 타인이 나에 대해 가진 오해에 대해서 그것이 해소될 때에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조금은 남에게 더 관용적인 사람이 되어보면 어떨까 한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내가 읽은 소설 중에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재밌게 읽었고 생각할 여지를 주었다. 소중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작가님께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