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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작가 나혜옥 Oct 17. 2024

인생 2 막 슬기로운 부부생활

두근두근 설레게 하는 기타

남편이 기타 가방을 메고 하고 현관을 나선다.

"학교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서는 막내아들처럼 뒤통수가 신이 났다.

20대 연애시절 남편이

기타 치며 노래하는 모습이 좋았다.

음치에 박치인 내가 보기에는 기타를

곧잘 치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은 중2 때 작은누나가
사준 기타로 책을 보고 배운 게 전부였다.
결혼 후
전문가에게 지도를 받고 싶어 해서
기타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을 해 줬다.
일주일에 두 번 강습받는 걸로는 실력이
늘지 않았다. 집에서 꾸준한 연습 대신
주말이면 남편은 모자란 잠을 잤다.

​그 후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 테니스장이 있어
테니스 레슨을 받고 한동안 테니스가 얼마나
재미있던지, 남편은
새벽에 나갔다 새벽에 들어왔다.

​몇 년의 세월이 흐른 후,
남편은 수영을 하고 싶다고 했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못 들어주랴 하는 마음에
경쟁률이 센 청소년 회관 새벽반에
등록을 해 줬다.
남편은 새벽마다 수영을 하고 출근했다.
아이들에게 아빠의 멋진 수영 폼을
보여주기 위해 여름이면 동네 풀장을 자주 갔다.

​남편은 테니스도, 수영도 폼은 국가대표급이다.
나도 인정한다.
폼과 실력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오랜 경험을 통해 마주한 진실이다.

​그 후 여러 번의 사업 실패로 남편이
의기소침해 있을 때 재난지원금이 나왔다.
나는 재난지원금으로 남편의 기타를 샀다.
그리고 또 기타 학원을 알아보고 등록을 해 줬다.
처음에는 뭐 하러 학원을 다니냐,
혼자 집에서 슬슬 치면 된다고 하던 남편이
기타 학원에 갔다 오더니,
아내 몰래 애인이라도 만나고 온 사람처럼

실실 미소를 흘린다.

​'아! 이 사람이 살아났구나!'

'그래 뭐라도 재미있는 일이 있어야 살지'

그렇게 1년 넘게 기타 학원을 다녔다.
가끔 집에서 보면대를 펴놓고 배워 온
곡을 연주해 주면 나는 갸우뚱
그 노래가 이 노래 맞나?
하고 남편을 쳐다보면 남편도 웃음을 터트린다.
새로운 곡이 탄생하는 순간이니
웃는 게 마땅하다. 한바탕 웃고 나면 학원비가
아깝지 않았다.

​오늘은 기타 학원을 그만둔 지 서너 해 만에
다시 문화원에 기타를 배우러 간다.
머리 허연 아저씨가 나름대로 멋을 부린
청바지에 카키색 바바리를 입고
기타 가방을 멨다.

역시 폼은 멋있다.
이 가을 최백호 아저씨는 못 되더라도
나의 아저씨 정도는 된다.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어도
입은 거지는 얻어먹는다고 했다.
깔끔하게 하고 가서 웃는 낯빛으로 인사하면,
선생님은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겠지.
나에게는 오선지에 콩나물 대가리가
남편에게는 멋진 음표로 살아나
두근두근 마음을 설레게 할 것이다.

오늘은 또 어떤 멋진 곡을 배워올지
오후에 있을 남편의 학예회를 기다리며
남편이 좋아하는 만두를 빚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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