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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무비판적 복종의 심리

by 채정완
빵_acrylic on canvas_80.3X116.8_2025.jpg 빵! Bang!, acrylic on canvas, 80.3X116.8, 2025

개는 더 이상 가축으로 분류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인간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단순히 집과 자산을 지키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삶에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가족 구성원으로 자리 잡았다. 개가 이런 존재가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지능이 높아 인간이 의도하는 대로 훈련이 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사냥하거나, 가축을 몰거나 지키는 데 특화된 훈련을 받았다면, 현재는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요건들을 주로 훈련받는다. 간단하게 손을 주거나, 앉고 기다리는 훈련, 배변 훈련, 짖지 않는 훈련 등이 그렇다. 이런 훈련들에 익숙해지면 주인들은 이런 잘 훈련된 개의 모습을 주변에 선보이며 자랑하고, 그런 영민한 개의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웃음 짓는다.


이런 간단한 훈련 중 '빵!' 훈련이 있다. 주인이 손으로 총을 만들어 개에게 '빵!' 소리를 내며 쏘는 시늉을 하면 개가 드러누우면서 죽은 척을 하는 훈련이다. '빵!'이라는 소리에 배를 뒤집으며 넘어지는 개의 모습은 참 귀엽고 신기하기는 하지만, 달리 보면 인간에게 복종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동물'로서의 위치를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아무리 한 가족이 되었어도 인간의 명령을 따라야만 하는, 결코 평등할 수는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개가 '빵!'하는 신호에 복종하며 쓰러지는 이유는 하나다. 명령을 따르면 보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이런 복종의 모습은 인간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 사회에서도 명령과 복종이라는 구조는 매우 익숙하기 때문이다. 가정, 학교, 직장, 군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은 특정 권위에 순응하도록 요구받는다. '빵!'이라는 총성을 모방한 무해한 소리가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 개에게 강력한 명령으로 변모하듯, 인간은 언어, 상징, 제도와 같은 추상적 개념을 통해 권위를 내면화한다.


복종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안정감을 제공한다. 권위자의 지시를 따르면 위험을 줄이고 사회적 조화를 이룰 수 있다는 믿음이 작용한다. 이런 복종의 심리는 역사적, 진화적으로 인간 사회의 중요한 생존 전략 중 하나였다. 복종의 대가로 안정감, 소속감, 보상을 얻음으로써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 주지만, 스스로 의견을 게재하고 선택할 자유를 제한받기도 한다. 그리고 복종이 가져다주는 달콤함에 속아 인간은 때때로 권위자의 지시에 따라 비윤리적인 행동도 불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무비판적인 복종은 독립적 사고와 자율성을 저해할 위험성을 안고 있다. '빵!' 작품은 이렇게 무비판적인 복종을 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한 작품이다.


윗글에서 '빵!' 훈련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기는 했지만 실제로 개는 이 훈련을 통해 보호자와의 신뢰와 유대감을 강화하고 개의 두뇌를 자극하는 즐거운 활동으로 여긴다고 한다. 이는 개와 보호자의 관계 속에 존중과 신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복종은 무조건 적이고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존중과 신뢰 속에서 이루어질 때 건강한 사회 시스템으로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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